• 텍스트
    • 오늘의 텍스트
    • 워크북
    • 교사용 지침서
    • 공지사항
    • 기적의 향기 책 구매
    • 기적수업 첫걸음
    • 기적수업 핵심 주제
    • 용서와 치유 나눔
    • 기적수업과 함께하는 여정
    • 자주 묻는 질문과 답
    • 기적수업 용어설명
    • 내 서재
피드백 보내기
  • 카페
  • 유튜브

Contact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테마 색상
다크 모드

기적수업

서문1. 하느님의 교사들은 누구인가?2. 하느님의 교사의 학생들은 누구인가?3. 가르침의 수준들이란 무엇인가?4. 하느님의 교사들의 특성은 무엇인가?5. 치유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6. 치유는 확실한가?7. 치유는 반복되어야 하는가?8. 난이도를 지각하는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9. 하느님의 교사는 생활 환경에 변화를 요구받는가?10. 판단을 어떻게 포기하는가?11. 이 세상에서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가?12. 세상을 구하려면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교사가 필요한가?13. 희생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14. 세상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15. 각 사람은 결국에 심판을 받을 것인가?16. 하느님의 교사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17. 하느님의 교사는 학생의 마법 생각을 어떻게 다루는가?18. 교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19. 정의란 무엇인가?20. 하느님의 평화는 무엇인가?21. 말은 치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22. 치유와 속죄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23. 예수는 치유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가?24. 환생은 참인가?25. “심령” 능력은 바람직한가?26. 하느님께 직접 도달할 수 있는가?27. 죽음이란 무엇인가?28. 부활이란 무엇인가?29. 그 밖의 주제에 대해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3분

22. 치유와 속죄는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

1 치유와 속죄는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 둘은 똑같다. 기적에 난이도가 없는 이유는, 속죄에 정도가 없기 때문이다. 속죄는 이 세상에서 가능한 유일하게 완전한 개념이다. 속죄는 온전하게 통합된 지각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부분적인 속죄란 무의미한 아이디어다. 그것은 마치 천국에서 지옥이라는 특별한 영역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속죄를 받아들여라. 그러면 너는 치유된다. 속죄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과연 무엇이 남아 병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모든 기적이 이미 성취된 것이다. 용서하는 것은 곧 치유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교사는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이는 것을 자신의 유일한 기능으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그가 치유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에게 어떤 기적이 주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하느님의 교사의 발전은 그가 속죄의 포괄성을 인식하는지, 아니면 어떤 문제 영역은 당분간 속죄에서 제외하는지에 따라 느릴 수도 있고 빠를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속죄 레슨을 모든 상황에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갑작스럽고도 완벽한 인식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비교적 드물다. 하느님의 교사는 어쩌면 하느님이 주신 기능을 받아들인 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 기능을 받아들인 결과로 주어지는 그 모든 것을 배울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결말뿐이다. 걸어가는 길의 어느 지점에서든, 그는 포괄성에 대한 필수적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갈 길이 멀어 보이더라도 그로 하여금 만족하게 하라. 그는 걸어갈 방향을 이미 결정했다. 그에게 더 이상 무엇이 요구되었던가? 그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을 이미 했거늘, 하느님이 나머지를 주지 않으시겠는가?

3 하느님의 교사가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용서가 곧 치유임을 이해해야 한다. 몸이 병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에고 사고체계에서 중심이 되는 개념이다. 이런 생각은 몸에게 자율성을 주고, 몸을 마음으로부터 분리하며, 공격이라는 아이디어를 신성불가침한 것으로 유지해 준다. 만약 몸이 병들 수 있다면, 속죄는 불가능할 것이다. 몸은 자신이 적절하다고 여기는 것을 행하라고 마음에게 명할 수 있으며, 이제 하느님의 자리를 가뿐히 차지하고 구원이 불가능함을 증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치유할 것이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몸이 마음의 주인이 되었다. 몸이 죽임을 당하지 않는 한, 마음을 어떻게 성령께 돌려보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누가 이런 대가를 치르고서 구원을 원하겠는가?

4 병은 하나의 결정이지만, 확실히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 누구도 자신이 병들기를 원한다고 정말로 믿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이 아이디어를 이론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은 물론 모든 이를 지각할 때, 병의 모든 구체적인 형식에 이 아이디어를 일관되게 적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하느님의 교사가 바로 이 수준에서 치유의 기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그는 마음과 몸을 모두 간과하고, 자신 앞에서 빛나고 있는 그리스도의 얼굴만 봄으로써, 모든 잘못을 교정하고 모든 지각을 치유한다. 치유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자가 참으로 누구인지를 하느님의 교사가 인식한 결과다. 이런 인식은 특정한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에 해당된다. 그러한 인식 안에서, 모든 환상이 치유된다.

5 하느님의 교사가 치유에 실패한다면, 그것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자가 참으로 누구인지 잊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병은 교사 자신의 병이 된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할 때, 그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에고와 동일시함으로써 그를 몸과 혼동한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는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이며, 따라서 그의 형제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속죄를 제공할 수 없다. 사실상 그는 그의 형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몸을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따라서 그는 그의 형제 안에서 실제가 아닌 것만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수는 실수를 교정하지 않고, 왜곡된 지각은 치유하지 않는다. 하느님의 교사여, 이제 뒤로 물러서라. 네가 틀렸다. 너는 길을 잃었으니, 길을 인도하지 말라. 서둘러 너의 교사에게 의탁하여, 너 자신이 치유되게 하라.

6 속죄는 보편적으로 제공된다. 속죄는 모든 상황에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그리고 속죄 안에는 모든 사람의 모든 형식의 병을 치유할 권능이 들어있다. 이를 믿지 않는 것은 하느님께 불공평한 것이며, 따라서 그분께 신실하지 못한 것이다. 병든 자는 자신이 하느님과 분리되었다고 지각한다. 너는 그가 너와 분리되었다고 지각하려는가? 그를 병들게 만든 분리의 느낌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너의 과제다. 그가 그 자신에 대해 믿는 것은 진리가 아님을 그를 대신해 인식하는 것이 바로 너의 기능이다. 그에게 이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바로 너의 용서다. 치유는 아주 단순하다. 속죄가 받아지고, 이어서 제공된다. 이미 받아졌기에, 속죄는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바로 이러한 받음에 치유가 놓여있다. 다른 모든 것은 이 유일한 목적에 뒤따라 일어날 수밖에 없다.

7 그 누가 하느님 자신의 권능을 제한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 누가, 어떤 사람은 어떤 병을 치유받을 수 있고, 어떤 것은 하느님의 용서하는 권능 너머에 남아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정녕 제정신이 아니다. 하느님께 한계를 지우는 것은 그분의 교사의 몫이 아니다. 그분의 아들을 판단하는 것은 그의 몫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을 판단하는 것은 그의 아버지를 제한하는 것이다. 둘 다 같은 정도로 무의미하다. 하지만 하느님의 교사가 그것들이 같은 실수임을 인식하기 전에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한 인식을 통해, 그는 속죄를 받는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에게서 판단을 거둬들이고, 그를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더 이상 하느님과 떨어져 서서 치유가 어디에 주어져야 하고 어디에는 주어지지 말아야 하는지 결정하지 않는다. 이제 그는 하느님과 함께, "이는 완벽하게 창조되었고 영원히 완벽한 나의 사랑스러운 아들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21. 말은 치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23. 예수는 치유에서 특별한 역할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