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적에 난이도가 있을 것이라는 너의 주장은 단지 네가 진리에게 주지 않으려는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너는 진리가 그것을 잘 다룰 수 없다고 믿는데, 그 이유는 단지 네가 그것을 진리에게 감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히 말해, 모든 고통을 치유하는 권능에 대한 너의 불신은 실재의 어떤 측면은 판타지를 위해 간직하겠다는 너의 소망에서 발생한다. 이것이 전체에 대한 너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네가 깨닫는다면! 무언가를 너 혼자만을 위해 남겨둘 때, 너는 그것을 너를 해방하고자 하는 성령으로부터 빼앗는 것이다. 그것을 성령께 돌려드리지 않는 한, 실재에 대한 너의 관점은 교정되지 않은 채 뒤틀려 있을 수밖에 없다.
4 네가 그렇게 원하는 한, 기적에 난이도가 있다는 환상은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 너는 실재의 일부는 한 교사에게 주고 다른 일부는 다른 교사에게 줌으로써, 실재에 이런 등급을 매겼다. 따라서 너는 진리의 일부는 이런 식으로, 다른 부분은 저런 식으로 다루는 법을 배운다. 진리를 조각내는 것은 진리를 무의미하게 만들어서 파괴하는 것이다. 실재의 등급이란 실재에 대한 이해가 없는 관점으로서, 그러한 기준틀에 실재를 견주어볼 수는 없다.
5 너는 과연 진리를 판타지로 가져가서 진리의 의미를 환상의 관점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진리는 환상 속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진리의 의미에 대한 기준은 진리 자체라야 한다. 진리를 환상으로 가져가려는 것은 환상을 실재화하고 환상에 대한 믿음을 정당화하여 환상을 간직하려는 것이다. 반대로 환상을 진리에게 주는 것은, 진리로 하여금 환상은 실제가 아님을 가르치게 하여 너 자신이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아이디어도 진리 바깥에 간직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실재에 등급을 매기는 것이며, 그것은 너를 가둘 수밖에 없다. 실재에는 등급이 없다. 실재의 모든 것은 참이기 때문이다.
6 그러니, 진리 바깥에 간직한 모든 것을 성령께 드리겠다는 용의를 내라. 성령은 진리를 알며,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은 진리로 보내진다. [분리로부터의 구원은 완전하거나, 아니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단지 이것이 성취되게 하겠다는 너의 용의에만 관심을 두고,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말라. 네가 아닌 성령이 그것을 성취할 것이다. 단지 다음을 잊지 말라: 다른 사람이 판타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을 보고 너의 마음이 동요하고 평화를 잃는다면, 너는 그와 똑같은 시도를 한 것에 대해 너 자신을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너와 상대방 둘 다를 진리와 구원으로부터 떼어놓는 것이다. 네가 그를 용서할 때, 너는 두 사람 모두가 부정했던 것을 진리로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네가 용서를 준 곳에서 용서를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