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는 신경을 쓰거나 걱정할 것이 전혀 없고, 불안해 할 것도 전혀 없으며, 항상 지극히 평온하고 조용하게 있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더도 말고 단지 이것을 배우는 것, 이것이 바로 시간의 목적이다. 이것이 네가 배우는 전부가 될 때까지, 하느님의 교사는 자신의 가르침에 만족할 수 없다. 네가 아주 일관된 학습자가 되어서 오로지 그 교사로부터만 배울 때, 그의 가르치는 기능이 비로소 완수된다. 이것이 일어났을 때, 너에게는 더 이상 교사도 배우기 위한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2 네가 좌절감을 느끼는 원인 가운데 하나는, 그렇게 되려면 시간이 걸리며, 성령의 가르침은 그 결과가 먼 미래에 있다는 믿음이다. 그렇지 않다. 성령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용하며, 시간에 묶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은 성령의 가르침을 돕는 친구다. 시간은 너를 피폐화하듯 성령을 피폐화하지 않는다.] 시간이 야기하는 듯한 그 모든 피폐화는 단지 네가 에고와 동일시하기 때문인데, 에고는 파괴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떠받치려고 시간을 사용한다. 성령처럼 에고도 가르침의 목표와 결말의 불가피성을 너에게 확신시키려고 시간을 사용한다. 에고에게 가르침의 목표는 죽음이며, 죽음은 가르침의 결말이다. 그러나 성령에게 가르침의 목표는 생명이며, 생명에는 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