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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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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31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9분

제31장 구원의 단순성

Ⅰ. 서문

1 구원은 얼마나 단순한지! 구원은 단지, 결코 참이 아니었던 것은 지금도 참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아니라고 말할 뿐이다. 불가능한 것은 일어나지 않았고, 어떤 결과도 낳을 수 없다. 이것이 전부다. 이것이 참이기를 원하는 자가 과연 이것을 배우기 힘들어 할 수 있겠는가? 오로지 이것을 배우려는 용의 없음만이 그렇게도 쉬운 레슨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거짓인 것은 참일 수 없으며, 참인 것은 거짓일 수 없음을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너는 더 이상 거짓과 참의 차이를 전혀 지각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다. 너는 이 둘을 어떻게 구별하고, 혼동될 때는 단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정확하게 들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것을 배우지 않겠다고 고집하는가?

2 이유는 과연 있다. 하지만 그 이유를 구원이 너에게 배우라고 요청하는 단순한 것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혼동하지 말라. 구원은 아주 명백한 것만 가르친다. 구원은 너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한 단계에서 또 다른 단계로 부드럽게 인도하는 쉬운 단계들을 거쳐가면서, 하나의 분명한 레슨에서 다음의 분명한 레슨으로 옮겨간다. 이것은 혼란스러울 수 없지만, 너는 정녕 혼란스러워한다. 웬일인지 너는 완전히 혼란스러운 것을 배우고 이해하기가 더 쉽다고 믿는다. 너희가 그동안 너희 자신에게 가르친 것은 대단한 학습 성과기에, 과연 믿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너희는 그것을 성취했다. 왜냐하면 너희는 그것을 성취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이 배우기 어렵다거나 이해하기에 너무 복잡하다고 판단하면서 조심스레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3 네가 그동안 무엇을 배웠고 그것을 얼마나 철저히 배웠는지,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형식으로 그 레슨을 끊임없이 연습하고 반복하려고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이해한다면, 너의 학습 능력이 가진 힘을 의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힘은 없다. 세상은 바로 그 힘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지금조차도 단지 그 힘에만 의존한다. 네가 너 자신에게 가르친 레슨들은 너무도 과잉으로 학습되고 굳어져서, 마치 두꺼운 커튼처럼 솟아올라 단순하고 명백한 것을 가린다. 단순하고 명백한 것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너의 배우는 힘은, 너의 뜻이 너 자신의 것이 아니고, 너의 생각도 너에게 속하지 않으며, 너조차도 다른 어떤 존재라고 너에게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4 그 누가 이런 레슨이 쉽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너는 그동안 이보다 더한 것도 배웠다. 너는 마음에 드는 세상을 하나 세울 때까지 아무리 어렵더라도 전혀 불평하지 않고, 모든 단계를 다 밟으며 계속 나아갔다. 세상을 지어내는 모든 레슨은 배움의 첫 번째 성과로부터 생겨난다. 그 성과는 너무도 대단해서, 그 규모 앞에서 성령의 음성은 작고 조용한 것 같다. 세상은 하나의 이상한 레슨에서 시작되었다. 그 레슨은 너무도 강력해서 하느님이 망각되게 만들고, 그분의 아들은 그 자신에게 생경한 자가 되어 하느님이 그를 두신 집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동안 자기 자신에게 하느님의 아들이 유죄라고 가르친 자여, 이제 구원이 가르치는 단순한 것을 배울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5 배움은 너희가 만들어서 너희 자신에게 준 능력이다. 배움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뜻이 반박될 수 있고 그와 다른 뜻이 훨씬 더 실재적이라는 소망을 떠받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배움은 바로 이것을 입증하려 했고, 너는 배움이 가르치게 되어있는 것을 배웠다. 이제 너의 오랜 과잉 학습은 진리의 음성 앞에 완강히 버티고 서서, 그 음성의 레슨은 참이 아니고, 너무 배우기 힘들고, 너무 이해하기 어려우며, 정말로 참인 것에 너무도 배치된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너는 반드시 그 레슨을 배울 것이다. 성령은 그것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온 세상에서 너의 학습 능력이 가진 유일한 목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용서에 대한 성령의 단순한 레슨은 너의 레슨보다 더 강력한 힘이 있다. 그것은 너를, 하느님과 너의 자아로부터 부르기 때문이다.

6 과연 이것이 너무 약하고 조용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의 무분별한 소음을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음성인가?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당신을 잊기를 뜻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하느님 뜻의 권능은 그분을 대변해 말하는 음성에 있다. 너는 어느 레슨을 배우려 하는가? 어떤 결과가 불가피하고, 하느님만큼이나 확실하며, 모든 의심과 질문 저 너머에 있는가? 그 결과가 이상하고 그 어려움이 믿을 수 없을 정도인 너의 보잘것없는 배움이, 시간이 시작되고 배움이 만들어진 이래 매일 매 순간 너에게 가르쳐지는 이 단순한 레슨을 견뎌내겠는가?

7 배워야 할 레슨은 단지 둘뿐이다. 각 레슨의 결과로 서로 다른 세상이 나온다. 그리고 각 세상은 확실히 그 근원에서 비롯된다. 하느님의 아들이 유죄라는 레슨의 확실한 결과는 네가 보는 세상이다. 그것은 정녕 공포와 절망의 세상이다. 그 안에는 행복의 희망도 없다. 네가 세울 수 있는 안전을 위한 계획 중에 성공할 가망이 있는 것은 없다. 네가 여기에서 추구하여 찾기를 바랄 수 있는 기쁨이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너의 배움이 낳을 수 있는 유일한 결과가 아니다. 네가 아무리 스스로 선택한 과제를 심각하게 과잉으로 학습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레슨이 훨씬 더 강력하다. 너는 반드시 하느님 아들의 순결을 배워서 또 다른 세상을 볼 것이다.

8 하느님의 아들이 무죄라는 레슨의 결과는, 두려움이 없으며 모든 것이 희망으로 빛나고 따뜻한 우정으로 반짝이는 세상이다. 모든 것이 너를 부르면서 너의 친구가 되게 해달라고, 너와 결합하게 해달라고 부드럽게 간청할 뿐이다. 단 하나의 부름도 결코 듣지 못하거나, 오해받거나, 그 부름과 똑같은 언어로 응답받지 못한 채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세상 안의 모든 이와 모든 것이 항상 불러온 부름이었지만, 너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지 못했다. 너는 이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제 너는 네가 잘못 생각했음을 안다. 너는 그 부름을 감춘 형식에 속았다. 따라서 너는 그 부름을 듣지 못했고, 항상 너의 일부기를 원했던 친구를 잃었다. 하느님 창조물의 각 부분이 전체를 부르는 이 부드럽고 영원한 부름을, 이 두 번째 레슨이 가져오는 세상 곳곳에서 듣는다.

9 살아있는 것은 모두 온전해야 하며, 너는 그들의 부름을 듣지 않은 채 버려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뜻이다. 살아있는 것 중에 이 뜻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없다. 너의 응답이 없다면 그들은 죽게 된다. 마찬가지로, 네가 그들의 부름을 생명으로 부르는 태곳적 부름으로 듣고는 그것은 단지 너 자신의 부름일 뿐임을 이해했을 때, 그들은 죽음에서 구원된다. 네 안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아는 그 모든 확실성으로 하느님을 기억한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순결할 경우에만 사랑이실 수 있다. 하느님이 순결하게 창조하신 아들이 죄의식의 노예일 수 있다면, 하느님은 정녕 두려움이시리라. 하느님의 완벽한 아들은 자신이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기억한다. 그러나 죄의식 속에서, 그는 자신이 참으로 누구인지 잊었다.

10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순결을 배울 때 그분의 사랑을 기억할 수밖에 없듯이 확실하게, 그가 유죄라는 레슨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증오는 반드시 두려움을 낳고, 자신의 아버지가 자기 자신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죽음을 부르는 듯한 모든 부름 너머로 울려 퍼지고, 모든 살인적인 공격 뒤에서 노래하며, 죽어가는 세상을 회복해 달라고 사랑에게 탄원하는 부름을 듣지 못하다니, 너는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 모든 형식의 증오 너머에서, 전쟁으로의 모든 부름 너머에서 누가 너를 부르고 있는지,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에게 그가 부르는 언어로 응답함에 따라, 너는 그를 알아보게 될 것이다. 네가 그에게 응답했을 때 그가 나타날 것이며, 너는 그의 내면에서 하느님은 정녕 사랑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11 네가 배우려는 것에 대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겠다는 소망이 바로 유혹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네가 원하지 않는 마음 상태라는 인식이야말로 그 선택을 재평가하고 다른 결과를 선호하게 만들어주는 수단이다. 네가 재난과 분열과 고통을 원한다고 믿는다면, 너는 속았다. 너 자신 안에서 이런 것을 부르는 부름을 듣지 말라. 그 대신 그 너머에서 평화와 기쁨을 간청하는 더 깊은 부름을 들어라. 그러면 온 세상이 너에게 기쁨과 평화를 줄 것이다. 너는 듣는 대로 응답한다. 그리고 보라! 너의 응답은 네가 배운 것에 대한 증거다. 그 결과는 바로 네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12 우리 한순간 고요해져서 그동안 배운 모든 것, 생각했던 모든 생각, 어떤 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그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지녔던 모든 선입견을 잊자. 세상의 목적에 대한 우리 자신의 아이디어도 기억하지 말자. 우리는 알지 못한다. 모든 이에 대해 붙잡고 있던 모든 이미지가 우리 마음에서 느슨해져 씻겨나가게 하자. 판단에서 벗어나, 누구든 너의 마음을 스쳐지나간 자에 대한 악한 생각도 선한 생각도 모두 잊자. 이제 우리는 그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너는 정녕 그에 대해 자유롭고도 새롭게 배울 수 있다. 이제 그는 너에게 다시 태어나고, 너도 그와 너에게 사형을 선고한 과거 없이 그에게 다시 태어난다. 이제 네가 자유롭듯이 그도 자유롭게 산다. 오랜 배움이 사라지면서, 진리가 다시 태어날 자리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제30장 새로운 출발 - Ⅸ. 변함없는 실재제31장 구원의 단순성 - Ⅱ. 적이라는 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