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몸은 스스로 치유될 수 없다. 몸은 그 자신을 병들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은 치유가 필요 없다. 몸의 건강과 병은 전적으로 마음이 몸을 어떻게 지각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려 하는지에 달려있다. 마음의 한 조각이 스스로를 보편적인 목적과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몸은 그 마음 조각의 무기가 되어서, 분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 목적에 반하여 사용된다. 이렇게 몸은 환상의 도구가 되어, 그에 따라 행동한다. 몸은 없는 것을 보고, 진리가 결코 말하지 않은 것을 들으며, 정신 나간 행동을 하고, 정신 이상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
4 앞에서 믿음 없음은 곧장 환상으로 이어진다고 했던 말을 간과하지 말라. 믿음 없음은 어떤 형제를 몸으로 지각하는 것인데, 몸은 연합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 형제를 몸으로 본다면, 너는 그와의 연합이 불가능한 조건을 설정한 것이다. 그에 대한 믿음 없음은 너를 그로부터 분리하였으며, 두 사람 모두를 치유로부터 떼어놓았다. 따라서 너의 믿음 없음은 성령의 목적을 반대했고, 몸에 중심을 둔 환상을 가져와서 너희 사이에 세워두었다. 그러면 몸은 반드시 병든 것처럼 보일 것이다. 네가 몸을 치유의 "적"이자 진리의 반대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5 믿음이 믿음 없음의 반대임을 깨닫는 것은 어려울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작동하는 방식의 차이는, 그것들의 정체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깨닫기가 어렵다. 믿음 없음은 항상 제한하고 공격하려 하며, 믿음은 제한을 전부 거두고 온전하게 만들려 한다. [믿음 없음은 파괴하고 분리하려 하며, 믿음은 연합하고 치유하려 한다.] 믿음 없음은 하느님의 아들과 그의 창조주 사이에 환상을 끼워넣으려 하며, 믿음은 그 둘 사이에 솟은 듯한 장애물을 전부 제거하려 한다. 믿음 없음은 전적으로 환상에 헌신하며, 믿음은 전적으로 진리에 헌신한다. 부분적인 헌신이란 불가능하다. 진리는 환상의 부재고, 환상은 진리의 부재다.
6 둘 다 함께 있을 수도 없고, 같은 곳에서 지각될 수도 없다. 둘 다에 헌신하는 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그 목표의 한 측면은 몸을 통해 추구되는데, 여기서 몸은 공격을 통해 실재를 구하는 수단이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측면은 치유하려 하며, 따라서 몸이 아닌 마음을 이끌어낸다. 이에 따른 불가피한 절충안은 바로, 마음이 아닌 몸이 치유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렇게 갈라진 목표는 몸과 마음 둘 다에 동등한 실재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마음이 몸에 제한되어 있고, 각자 온전해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 작은 부분들로 갈라져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것은 몸을 해치지는 않겠지만, 마음 안에 반드시 망상적인 사고체계를 존속시킬 것이다.
7 그렇다면 바로 이곳이야말로 치유가 필요한 곳이며, 바로 이곳이야말로 치유가 있는 곳이다. 하느님은 병과 떨어진 곳에 치유를 주지 않으셨고, 병이 있을 수 없는 곳에 치료법을 확립하지도 않으셨다. 병과 치유는 같이 있다. 그리고 병과 치유를 함께 볼 때, 진리와 환상을 둘 다 (그것들이 있는) 마음 안에 간직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환상에 대한 헌신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진리로 가져가면, 그 어떤 측면이나 방식으로도 진리와 양립할 수 없음을 보게 되어 포기하게 된다.
8 진리와 환상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그 둘을 아무리 연결해 보려 해도, 이것은 영원히 참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와 마찬가지로 환상들도 항상 연결되어 있다. 각각은 통합되고 완성된 사고체계지만, 서로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곳에는 분리가 완전할 것이다. 이것을 지각하는 것은, 분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서 치유되어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결과는 결코 그 근원과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라는 아이디어가 몸을 만들어내고는 계속 몸에 연결되어 있으면서, 자신을 몸과 동일시함으로 몸을 병들게 만든다. 너는 이러한 연결을 감춤으로써 몸을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은폐는 너의 정체를 진리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9 이런 이상한 은폐로 인해 너의 마음이 얼마나 심각하게 해를 입었고, 너의 정체에 대한 혼동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네가 이해할 수만 있다면! 너는 너의 믿음 없음이 얼마나 극심한 황폐화를 초래했는지 보지 못한다. 믿음 없음은 그 결과로 정당화되는 듯이 보이는 공격이다. 믿음을 거둬들임으로써, 너는 믿을 가치가 없는 것을 보고, 장벽 너머로 눈을 돌려 너와 결합된 것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10 믿는 것은 곧 치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였으며, 따라서 속죄를 공유하려 한다는 표시다. 믿음을 통해, 너는 과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선물을 네 형제에게 준다. 그것은 곧 네가 받은 선물이다. 너는 네 형제가 과거에 행한 그 어떤 것도 지금 그를 정죄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너는 그의 잘못을 간과하기로 흔쾌히 선택하며, 너의 자아와 그의 자아 사이에 놓인 모든 장벽을 지나쳐 그 둘을 하나라고 본다. 그 하나 안에서, 너는 너의 믿음이 충분히 정당하다는 것을 본다. 믿음 없음에는 정당한 근거가 전혀 없지만, 믿음은 항상 정당하다.
11 믿음은 두려움의 반대로서, 두려움이 공격의 일부듯 사랑의 일부다. 믿음은 연합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이를 지극히 자애로우신 아버지의 아들로 너그럽게 인정하는 것이며, 그들이 너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따라서 너 자신처럼 너의 사랑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야말로 너희를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너는 그 누구도 너의 사랑에서 떼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각 사람은 거룩한 순간에 지각되는 것과 똑같이 나타나며, 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한 너의 목적 안에서 연합되어 있다. 너는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그들은 치유되었다. 모든 이 안에서 믿음을 영원히 정당화하는 근거를, 네가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12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하느님이 네게 주신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믿음 없음은 하느님의 아들을 보고는 그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통해 보면, 하느님의 아들은 이미 용서받아서 그 자신에게 부과한 모든 죄책에서 자유롭다. 믿음은 하느님의 아들을 오로지 지금 본다. 믿음은 그를 판단하기 위해 과거에 기대지 않으며, 오로지 네 안에서 보고자 하는 것만을 그 안에서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몸의 눈을 통해 보지 않으며, 믿음을 정당화할 근거를 몸이 제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믿음은 새로운 지각의 메신저로서, 그것의 도래를 증언할 자들을 끌어모아 그들의 메시지를 너에게 되가져 오라고 파견된다. 믿음은 실재세상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앎과 맞바꿔진다. 믿음은 성령의 지각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네가 그 지각을 성령과 공유한다는 표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네가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에게 제공하는 선물이며, 그는 물론 그의 아버지께도 아주 흡족한 선물이다. 따라서 그 선물은 너에게도 제공된다.
13 새로운 목적을 가진 너희의 거룩한 관계는 너희가 서로에게 줄 믿음을 너희에게 제공한다. 그동안 너희의 믿음 없음은 너희를 서로 떨어져 있도록 내몰았으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안에서 구원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믿음은 너희를 너희가 보는 거룩함 안에서 연합한다. 그 거룩함은 몸의 눈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와 결합하였고 너희가 그 안에서 연합된 성령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은혜는 몸이 아닌 마음에게 주어진다. 은혜를 받는 마음은 즉시 몸 너머로 눈을 돌려, 자신이 치유된 거룩한 곳을 본다. 그곳에 은혜가 주어진 제단이 있고, 그 안에 마음이 서있다. 그러니 서로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라. 너희는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은혜가 놓인 똑같은 제단에 서있기 때문이다. 은혜를 통해, 함께 치유받아라. 그럼으로써 너희는 다른 이들을 믿음을 통해 치유하게 된다.
14 거룩한 순간에, 너희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과 너희 두 사람에게 바쳐 세우신 제단 앞에 서있다. 믿음 없음을 내려놓고, 함께 그 제단으로 가라. 그곳에서 너희는 믿음을 통해 다시 맺은 너희 관계의 기적을 보고, 믿음이 용서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어떤 잘못도 믿음의 고요한 눈길을 방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 모든 잘못에 치유의 기적을 똑같이 쉽게 가져다준다. 사랑의 메신저들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들이 파견된 제단 앞에 함께 서있는 너희에게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기쁜 소식을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15 믿음 없음이 너희의 작은 왕국들을 불모의 외딴곳으로 남겨두듯, 믿음은 성령이 그 왕국을 가지고 만들 가장 거룩한 정원을 위한 땅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믿음은 평화를 가져다주며, 따라서 진리를 불러들여 이미 사랑스러워질 준비가 된 것을 사랑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리는 믿음과 평화를 뒤따라와서, 그것들이 시작한 사랑스럽게 만드는 과정을 완성한다. 믿음은 여전히 배움의 목표로서, 레슨을 다 배우고 나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16 그러니 너의 헌신을 영원한 것에 바치고, 그것을 방해하여 시간의 노예로 만들지 않을 방법을 배워라. 너는 네가 영원한 것에 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 자신에게 행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로 창조하신 자는 그 무엇의 노예도 아니다. 그는 그의 창조주와 더불어 만물의 주기 때문이다. 너는 몸을 노예로 만들 수 있지만, 아이디어는 여전히 자유로우므로, 아이디어를 생각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아이디어를 어떤 식으로든 감옥에 가두거나 제한할 수 없다. 아이디어는 여전히 자신의 근원과 결합되어 있으며, 그 근원은 아이디어가 자신의 목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따라 아이디어의 간수가 되거나 해방자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