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죄의식의 매력은 잘못이 아닌 죄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매력으로 인해, 죄는 반복될 것이다. 두려움이 너무 극심해져서 죄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수는 있지만, 죄의식에 매력을 느끼는 한 마음은 고통받을 것이며, 죄라는 아이디어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죄의식은 여전히 마음을 불러대고, 마음은 그것을 듣고는 죄의식을 갈망하면서 자신을 그것의 병적인 매력에 낚인 자발적인 포로로 만든다. 죄는 교정될 수 없고 영원히 탐나는, 악이라는 아이디어다. 너는 에고가 너의 정체라고 생각하는 것의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죄를 언제까지나 원할 것이다. 그리고 너의 마음과 다른 마음을 가진 복수하는 자만이 두려움을 통해 죄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다.
26 죄가 실제로 요청하는 것은 두려움이 아닌 사랑이며, 사랑은 항상 응답한다. 하지만 에고는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에고는 죄를 두려움으로 가져가서는 처벌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처벌은 단지 죄의식의 보호를 위한 또 다른 형식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처벌받아 마땅한 것은 분명 실제로 일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벌은 언제나 죄의 위대한 보호자로서, 존경심을 가지고 죄를 대하면서 그 악독함을 찬양한다. [처벌받아야만 하는 것은 분명 진짜일 것이다. 그리고 진짜인 것은 분명 영원할 것이며, 끝없이 반복되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네가 실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여 보내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잘못은 매력적이지 않다. 너는 네가 분명하게 실수라고 보는 것이 교정되기를 원한다.
27 때로 어떤 죄는 명백히 고통스러운 결과를 낳으면서도 그 매력을 잃지 않은 채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다. 그런데 네가 갑자기 그 지위를 죄로부터 실수로 바꾼다면, 이제 그것을 반복하지 않고 그저 멈춰 보내버릴 것이다. 너에게 죄의식이 남아있지 않다면 말이다. 만약 죄의식이 남아있다면, 너는 단지 죄의 형식만 바꿔서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교정될 수는 없는 것으로 간직할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지각의 변화가 아니다. 처벌을 요청하는 것은 잘못일 수 없으며, 분명 죄일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은 죄를 처벌할 수 없다. 성령은 실수를 인식하여 하느님이 위임하신 대로 전부 교정할 것이다. 하지만 성령은 죄를 알지 못하며, 교정될 수 없는 실수도 인식하지 못한다. 교정될 수 없는 실수라는 것은 성령께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28 실수는 교정을 위한 것이며, 다른 어떤 것도 요청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처벌을 요청한다면, 그것은 분명 무를 요청하는 것이다. 모든 실수는 분명 사랑의 요청이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인가? 그것은 단지 네가 감춰두고 싶어 하는 실수, 들리지 않게 해서 응답받지 못하게 하려는 도움의 요청이 아니겠는가? 시간 안에서, 성령은 하느님의 아들이 실수를 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본다. 이 점에 있어서 너는 성령의 비전을 공유한다. 하지만 너는 시간과 영원의 차이에 대한 성령의 인식은 공유하지 않는다. 교정이 완성되었을 때, 시간은 곧 영원이다.
29 시간은 길고 끊긴 데가 없는 선에서 다른 차원을 따라 밑으로 내려오는 듯이 보이지만, 결코 그 선을 끊지도 않고 그 선의 원활한 연속성을 방해하지도 않는 하향의 나선과도 같다. 나선을 따라가며 보면, 그 선은 끊긴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 선에서 보면, 그것이 온전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나선에서 보는 것들은 전부 잘못 지각되지만, 그 선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네가 잠시 다른 차원으로 빠져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어떤 영향을 받지는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차원에서 보면, 선은 연속적이지 않다. 이것은 단지 마음 안에서 쉽게 교정될 수 있는 지각의 오류에 불과하다. 비록 몸의 눈은 아무런 변화도 보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몸의 눈은 마음이 교정하는 많은 것을 보며, 너는 눈의 환상에 반응하지 않고 마음이 교정한 것에 반응한다.
30 너는 그 선이 끊겼다고 보며, 네가 나선의 다른 측면으로 이동함에 따라 그 선은 다르게 보인다. 하지만 너의 마음 안에는 그 선이 끊기지 않았고 영원히 변함없음을 아는 성령이 있다. 성령은 시간을 달리 보고 시간 너머를 보는 법을 가르쳐줄 수 있지만, 네가 죄를 믿는 한 그렇게 할 수 없다. 하지만 네가 잘못을 믿는다면, 그것을 가르쳐줄 수 있다. 그것은 마음에 의해 교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라는 것은, 너의 지각이 바뀔 수 없으며, 마음은 지각이 알려준 것을 참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마음은 정신 이상이라고 판단받는다. 따라서 지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무력화되어서, 마음과 하나인 마음의 교사가 가져오려는 변화된 지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에 묶여있게 된다.
31 죄가 실제라고 믿으려는 유혹을 느낄 때마다, 죄가 만약 실제라면 하느님도 너도 실제가 아님을 기억하라. 창조는 확장이므로, 창조주는 당신 자신을 확장하셨을 것이며, 따라서 그분의 일부가 나머지와 완전히 다를 수는 없다. 죄가 만약 실제라면, 하느님은 당신 자신과 전쟁 중에 계실 것이다. 하느님은 분열되고 선과 악으로 찢어져서, 부분적으로는 제정신이고 부분적으로는 정신 이상이실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을 파괴하려 뜻하고 그럴 힘을 가진 것을 창조하셨을 것이다. 이를 믿는 것보다는, 네가 잘못 생각했다고 믿는 편이 더 쉽지 않겠는가?
32 너의 실재나 네 형제의 실재가 몸에 묶여있다고 믿는 한, 너는 죄를 믿을 것이다. 몸들이 연합할 수 있다고 믿는 한, 너는 죄의식에 매력을 느끼고 죄가 소중하다고 믿을 것이다. 몸이 마음을 제한한다는 믿음은, 분리의 증거가 사방에 널린 듯한 세상에 대한 지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과 그분의 창조물은 갈기갈기 찢겨 전복된 듯이 보인다. 왜냐하면 죄는, 하느님이 거룩하게 창조하신 것이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의 권능 앞에서 그 자체로 남아있을 수도 없음을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죄가 하느님보다 더 강력하다고 지각되며, 하느님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당신의 창조물을 그 정복자에게 바치셔야 한다. 이것이 과연 겸허인가 광기인가?
33 죄가 만약 실제라면, 죄는 영원히 치유의 희망 너머에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권능을 넘어서는 어떤 권능이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공격해서 이기고, 하느님의 뜻과 별개의 더 강력한 뜻을 아들에게 줄 수 있는 다른 뜻을 만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창조물은 산산이 조각나서, 각 부분은 다른 뜻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에 맞설 것이며, 하느님은 물론 서로에게도 영원히 맞설 것이다. 너희의 거룩한 관계의 목적은 이제 이것이 불가능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천국이 너희 관계에 미소를 지어주었고, 그 사랑스러운 미소 앞에서 죄에 대한 믿음이 뿌리 뽑혔다. 그런데도 너희가 여전히 죄를 보는 이유는, 죄의 토대가 이미 사라졌음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죄의 근원은 이미 제거되었다. 따라서 죄를 소중히 여길 수는 있지만, 단지 죄가 사라지기 전에 잠시뿐이다. 오로지 죄를 구하는 습관만이 여전히 남아있다.
34 하지만 너희는 입술에는 천국의 미소를 띠고, 눈에는 천국의 축복을 담고 바라본다. 너희는 죄를 오래 보지 않을 것이다. 그 새로운 지각에서는 죄가 보이는 것 같을 때 마음이 죄를 교정하며, 그러면 죄는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못은 재빨리 인식되며, 감춰지지 않고 재빨리 교정으로 넘겨져 치유된다. 너희가 서로를 지배할 그 어떤 힘도 죄에 부여하지 않는 바로 그 순간에, 너희의 죄와 죄의 모든 참화가 치유될 것이다. 너희는 서로를 죄에 대한 믿음에서 기쁘게 놓아줌으로써, 서로가 실수를 극복하도록 도울 것이다.
35 거룩한 순간에, 너희는 천국의 미소가 두 사람 모두를 비춰주고 있음을 볼 것이다. 그리고 너희에게 주어진 은혜를 기쁘게 인정하면서 서로를 비춰줄 것이다. 죄는 천국이 미소로 반겨준 연합을 이길 수 없다. 너희의 지각은 천국이 준 거룩한 순간에 치유되었다. 이제껏 본 것은 잊어버리고, 믿음으로 눈을 들어 너희가 지금 볼 수 있는 것을 보라. 천국을 가로막는 장벽은 너희의 거룩한 눈길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볼 수 없던 너희에게 비전이 주어져서, 이제 너희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제거된 것을 구하지 말고, 너희가 보도록 회복된 영광을 구하라.
36 너희의 구세주를 바라보고, 그가 서로 안에서 보여주려는 것을 보라. 죄가 다시 일어나 너희 눈을 가리게 하지 말라. 죄는 너희를 계속 떼어놓으려 하지만, 너희의 구세주는 너희가 서로를 자기 자신으로 보게 하려 한다. 너희의 관계는 이제 치유의 사원이다. 그곳은 지쳐있는 모든 이가 와서 안식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여기에 여정을 마친 모든 이를 기다리는 안식이 있다. 그리고 너희 관계로 인해, 그러한 안식은 모든 이에게 더욱 가까워진다.
37 이러한 평화가 온아들 전체를 품어 안아 안식을 주려고 너희 내면 깊은 곳에서 확장되어 나갈 때, 그것은 많은 장애물을 만날 것이다. 그중 몇몇 장애물들은 너희가 설치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다른 장애물들은 다른 곳, 즉 너희의 형제들이나 바깥 세상의 다양한 측면에서 일어나는 듯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평화는 그것들을 부드럽게 뒤덮어서, 전혀 방해받지 않고 지나쳐 확장할 것이다. 성령은 이미 다른 이들을 부드럽게 끌어들이기 위해 자신의 목적을 너희 관계로부터 다른 이들에게로 확장하기 시작했다. [성령은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수단과 목적을 일치시킬 것이다. 성령이 너희 둘의 내면에 깊숙이 놓아둔 평화는] 너희 삶의 모든 측면으로 조용히 확장하여, 너희를 은은히 빛나는 행복과 완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차분한 자각으로 둘러쌀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치유가 기다리는 너희의 사원에 가까이 이끌리는 모든 이에게 사랑과 안전과 자유라는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다.
38 너희는 그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를 주려고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그들을 부를 것이며, 그들은 너희의 부름에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알아차리고는 너희에게 응답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그들을 안으로 이끌어, 너희에게 주어진 안식을 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정녕 너희가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너희 내면 깊은 곳에 이미 자리잡은 평화가 먼저 부풀어 올라 너희가 그 앞에 설치한 장애물을 흘러 넘어가야 한다. 이것을 정녕 너희가 할 것이다. 성령과 함께하는 것 중에 완수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밖에서 보는 그 무엇도 확신할 수 없지만, 다음에 대해서는 확신해도 좋다: 성령이 너희에게 요청하는 안식처에서, 너희가 성령 안에서 안식할 것이다. 성령이 너희의 요청에 응답하여 너희 관계 안으로 들어왔다. 이제 성령의 자애로움에 보답하여 성령과의 관계를 시작하지 않으려는가? 너희 관계에 거룩함의 선물을 선사한 이는 바로 성령이며, 그 선물이 없었다면 너희가 서로의 진가를 알아보고 감사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39 성령은 다만 너희가 성령께 빚진 감사를 성령 대신 받을 것을 청할 뿐이다. 너희가 서로를 자애로운 눈길로 온유하게 바라볼 때, 너희는 실로 성령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때 너희는 성령이 있는 곳에서 성령과 떨어지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령을 볼 수 없지만, 네 형제들을 진정으로 볼 수는 있다. 그리고 그들 안에 있는 빛은 너희가 보아야 할 모든 것을 보여줄 것이다. 너희 안의 평화가 확장되어 마침내 모든 이를 아우르게 되었을 때, 이곳에서 성령의 기능이 완수될 것이다. 그때, 보아야 할 어떤 필요가 있겠는가? 하느님이 몸소 마지막 단계를 취하셨을 때, 성령은 너희가 성령께 표한 그 모든 감사를 모아 하느님의 가장 거룩한 아들의 이름으로 자신의 창조주 앞에 살며시 놓을 것이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실 것이다. 아버지가 감사하시는 앞에서, 볼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