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이성은 죄를 볼 수 없지만 잘못은 볼 수 있으며, 이것은 잘못의 교정으로 이어진다. 이성은 잘못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지만, 잘못의 교정은 가치 있게 여긴다. 이성은 또한 네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때 사실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너 스스로 요청하는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는 그 도움이 네 것으로서 다른 이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도 믿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너는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 믿음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일체의 교정되지 않은 잘못은 네 안의 교정하는 능력에 대해 너를 속인다. 만약 그 능력이 교정할 수 있는데 네가 그것으로 하여금 교정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면, 너는 너 자신과 네 형제에게 그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다. 만약 네 형제도 같은 믿음을 공유한다면, 너희 둘은 모두 스스로 저주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너는 너 자신과 네 형제를 이런 저주에서 풀어줄 수 있다. 이성은 단지 네 안에서만 교정을 위한 길을 열어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60 교정을 네 형제 없이 너 혼자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는 없다. 죄는 자신이 그럴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이성은, 네가 형제나 너 자신 중 한 사람을 죄 있다고 보는 한 다른 사람을 순결하다고 지각할 수는 없다고 말해준다. 그 누가 자기 자신을 죄 있다고 보면서 죄 없는 세상을 보겠는가? 그리고 그 누가 죄 많은 세상을 보면서 자신이 그 세상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겠는가? 죄는 너희가 분명 분리되어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이성은 너에게, 그것은 분명 틀렸다고 말해준다. 너희가 결합되어 있다면, 어떻게 사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겠는가? 그리고 단지 너 혼자만의 것으로 보이는 것에 들어오는 생각이 어떻게 참으로 너의 것인 것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들이 결합되어 있다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61 그 누구도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생각할 수는 없다. 이것은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 없이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느님과 아들이 둘 다 몸 안에 있을 경우에만, 이것이 과연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몸이 정말로 마음이 아닌 한, 한 마음이 단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생각할 수도 없다. 오로지 몸만이 분리되어 있을 수 있으며, 따라서 실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광기의 집이 이성의 집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네가 이성을 본다면, 광기의 집을 떠나는 것은 쉽다. 너는 다른 어떤 곳으로 감으로써 정신 이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단지 광기가 있던 곳에 이성을 받아들임으로써 정신 이상을 떠난다. 광기와 이성은 같은 것들을 보지만, 분명 그것들을 다르게 바라본다.
62 광기는 이성에 대한 공격으로서, 이성을 마음 밖으로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성은 공격하지 않고 다만 광기의 자리를 조용히 차지하며, 만약 이성에 귀 기울이는 것이 정신 이상자들의 뜻이라면, 광기를 대체한다. 그러나 정신 이상자들은 자신의 뜻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몸을 본다고 믿으며, 그들의 광기로 하여금 자신에게 몸이 실제라고 말해주게 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네가 너의 이성에 맞서 몸을 방어하려 한다면, 몸도 너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63 몸은 너를 네 형제와 분리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제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광기는 어떤 목적을 가졌으며, 스스로 그 목적을 실재화할 수단도 가졌다고 믿는다. 이성이 분명 결합되어 있다고 말해주는 것들 사이에서 몸이라는 장벽을 보는 것은 분명 정신 이상이다. 그리고 네가 이성의 음성을 들었다면, 몸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연속적인 것 사이에 과연 무엇이 서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사이에 아무것도 없다면, 한 부분에 들어가는 것이 어떻게 다른 부분과 떨어져 있을 수 있겠는가? 이성은 너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이것이 그러하다면, 네가 무엇을 인식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라.
64 네가 만약 치유 대신 죄를 선택한다면, 너는 하느님의 아들이 결코 교정될 수 없다고 선고할 것이다. 그런 선택을 내림으로써, 너는 하느님의 아들에게 그가 저주받았으며, 너는 물론 아버지와도 영원히 분리되었고, 무사히 돌아올 일말의 희망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너는 그에게 이것을 가르치고, 네가 가르친 바로 그것을 그에게서 배울 것이다. 네가 그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단지, 그는 네가 그에게 되기를 바라는 그런 존재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가 어떠한 존재여야 한다는 너의 선택은 단지, 너 자신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두렵다고 생각하지는 말라. 네가 그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해석이 아닌 사실이다. 네가 진리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것과 사실이 어긋나지 않는 한, 사실이 어떻게 두려울 수 있겠는가? 이성은 너에게, 바로 이러한 사실이 너의 해방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네 형제도 너 자신도 홀로 공격받을 수는 없다. 그러나 둘 중 하나가 그 대신에 기적을 받아들일 때마다, 다른 하나도 기적으로 축복받고 고통을 치유받는다.
65 사랑과 마찬가지로 이성도 너를 안심시킬 뿐, 겁주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을 치유할 권능이 너에게 주어져 있다. 그는 분명 너와 하나기 때문이다. 너는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성은 네가 단 한 순간에 너와 하나인 그의 마음 전체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각각의 모든 순간은 그의 잘못에 완전한 교정을 가져다줌으로써 그를 온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너 자신이 치유되게 하겠다고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에, 그의 구원 전체가 너의 구원과 더불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그러함을 이해할 수 있도록, 이성이 너에게 주어져 있다. 왜냐하면 이성은, 이성이 수단으로 기여하는 목적만큼이나 친절하며, 광기에서 멀어져 진리라는 목표를 향해 굳건히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너는 진리에 대한 부정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것이다. 무시무시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바로 이 짐이다.
66 너희가 결합되어 있다는 사실이 곧 너희의 구원이다. 그것은 두려움의 선물이 아닌 천국의 선물이다. 천국이 너에게 짐처럼 보이는가? 광기 속에서 보면, 과연 그러하다. 하지만 광기가 보는 것을, 이성은 분명 물리칠 것이다. 이성은 천국이야말로 네가 참으로 원하는 것이며, 네가 원하는 모든 것이라고 확신시켜 준다. 성령께 귀 기울여라. 그는 이성으로 말하며, 너의 이성을 자신의 이성과 일치시킨다. 이성으로 하여금, 성령이 네게 정신 이상을 뒤로하고 떠날 방법을 가르치는 수단이 되도록 기꺼이 허용하라. 이성에서 벗어나려고 정신 이상 뒤에 숨지 말라. 광기가 은폐하려는 것을, 성령은 누구나 기쁘게 바라볼 수 있도록 여전히 내밀어 보여주고 있다.
67 너는 정녕 네 형제의 구원자며, 네 형제는 너의 구원자다. 이성은 아주 기뻐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은혜 넘치는 계획이 사랑에 의해 사랑에게 주어졌다. 사랑이 계획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사랑 자체와 닮았다: 사랑은 연합되어 있기에, 너의 정체가 참으로 무엇인지 너로 하여금 배우게 하고자 한다. 그리고 너는 사랑과 하나기에, 사랑이 너에게 주었고 지금도 여전히 주고 있는 것을 줄 수 있다. 단지 잠시 시간을 내서, 네 형제에게 주라고 너에게 주어진 것을 기쁘게 받아들여라. 그리고 그와 더불어 너희 두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 배워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축복받은 것은 아니지만, 덜 축복받은 것도 아니다.
68 하느님의 아들은 항상 하나로서 축복받았다. 그의 감사가 그를 축복한 너를 향해 뻗어 나올 때, 이성은 네가 축복과 떨어져 있을 수 없다고 말해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이 너에게 제공하는 감사는, 네가 아버지를 완성한 것에 대해 아버지가 너에게 표하시는 감사를 일깨워 준다. 그리고 너는 오로지 여기서만 너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이성은 너에게 말해준다. 너의 아버지는 너의 형제만큼이나 너와 가까우시다. 하지만 너의 자아보다 너와 더 가까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69 네가 하느님의 아들에 대해 가진 권능은 그의 실재에 대한 위협이 아니다. 그 권능은 단지 그의 실재를 입증할 뿐이다. 그가 이미 자유롭다면, 그 자신의 내면이 아닌 어디에 그의 자유가 놓여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자유를 부정한다면, 그 자신이 아닌 누가 그를 속박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신다. 하느님의 아들 또한 자신의 열망에 의하지 않고는 감금될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자유로워지는 것도 그 자신의 열망에 의해서다. 이러한 것이 바로, 그의 약함이 아닌 강함이다. 그는 정녕 그 자신의 처분에 달려있다. 그리고 그가 자비롭기로 선택하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자유롭다. 하지만 그 대신에 정죄하기로 선택하는 바로 그곳에서, 그는 죄수로 갇혀 사슬에 묶인 채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가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주기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