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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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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3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0분

제23장 너 자신과의 전쟁

Ⅳ. 타협 없는 구원

41 너는 공격이 취할 수 있는 몇몇 형식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형식의 공격이 네가 알아차리는 다른 형식의 공격만큼이나 너를 해친다면, 네가 고통의 근원을 항상 인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공격은 어떤 형식을 취하든 똑같이 파괴적이다. 공격의 목적은 변하지 않는다. 공격의 유일한 의도는 살인이다. 도대체 살인이 어떤 형식을 취한다고 해서 살인자가 느낄 수밖에 없는 엄청난 죄의식과 처벌에 대한 광적인 두려움을 덮어 감출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이 살인자임을 부정할 수 있고, 공격할 때 자신의 야만성을 미소로 정당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고통에 시달릴 것이며, 악몽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바라볼 것이다. 그 속에서 미소는 사라지고, 본래의 목적이 떠올라 공포에 질린 그의 의식에 도달하여 그를 계속 추적할 것이다. 살인을 생각하고도 그 생각에 수반되는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 의도가 죽음이라면, 그것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42 죽음이 아무리 사랑스럽고 자비로운 형식을 취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축복일 수 있겠는가?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음성이 너를 통해 네 형제에게 말한다는 표시일 수 있겠는가? 너는 선물을 줄 때 포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빈 상자를 아무리 아름답게 꾸며 정성스레 선물하더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아무것도 없다. 받는 자도 주는 자도 오래는 속지 않는다. 네 형제에게 용서를 주지 않는다면, 너는 그를 공격하는 것이다. 너는 그에게 무를 주고, 그에게서 네가 준 것만 받는다.

43 구원은 그 어떤 타협도 아니다. 타협이란 네가 원하는 것의 일부만 받아들이는 것, 즉 조금만 취하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것이다. 구원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구원은 모든 이에게 완전하다. 네가 만약 타협이라는 아이디어가 들어오도록 허용한다면, 구원의 목적에 대한 알아차림이 상실된다. 너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타협을 받아들인 곳에서는 구원이 부정된다. 타협은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이기 때문이다. 타협은 네가 조금만 공격하고 조금만 사랑하면서 그 차이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와 같이 타협은 같은 것의 작은 부분이 다르면서도 같은 것은 훼손되지 않고 하나로 남아있을 수 있다고 가르치려 한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을 과연 이해할 수 있겠는가?

44 이 수업이 쉬운 이유는 단지, 그것이 어떤 타협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타협이 가능하다고 믿는 자들에게, 이 수업은 어려워 보인다. 타협이 가능하다면 구원은 곧 공격이건만, 그들은 이를 보지 못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구원이 이미 왔다는 조용하고도 차분한 확신을 지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용서를 조금만 주지 않을 수는 없다. 또한 이런 이유로 공격하고 저런 이유로 사랑하면서 용서를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너의 평화에 대한 공격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그것들을 전부 인식하기를 원하지 않는가? 오로지 그럼으로써만 너의 평화를 잃는 것이 불가능해진다면 말이다. 네가 방어하지만 않는다면, 너의 평화는 너의 비전 앞에 찬란히 간직되어, 너의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토록 분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45 평화를 방어할 수 있고 평화를 위한 공격이 정당한 근거가 있다고 믿는 자들은 평화가 자신 안에 있음을 지각할 수 없다. 그들이 어찌 그것을 알겠는가? 살인의 어떤 형식이 그들의 평화를 지켜준다는 믿음을, 그들이 과연 용서와 함께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들이 과연 자신의 야만적인 목적이 자기 자신을 겨눈다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그 누구도 적과 연합하거나 목적을 함께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적과 타협을 하더라도, 그가 주지 않는 것 때문에 여전히 그를 증오할 수밖에 없다.

46 휴전을 평화로, 타협을 갈등에서의 탈출로 잘못 생각하지 말라. 갈등에서 해방되는 것은 갈등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문은 열려있으며, 너는 전쟁터를 떠났다. 너는 총성이 잠시 잠잠하고 죽음의 소굴에 감도는 두려움이 그리 뚜렷하지 않으니 전쟁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움츠린 희망을 품고 그곳에서 꾸물거리지 않았다. 전쟁터에는 안전이 없다. 너는 전쟁터 위에서 안전하게 내려다보면서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전쟁터 안에서는 어떤 안전도 찾을 수 없다. 아직도 서있는 나무 중에 단 한 그루도 너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다. 단 하나의 보호의 환상도 살인에 대한 믿음에 맞설 수 없다. 여기에, 소통하려는 자연스러운 열망과 죽이고 죽으려는 부자연스러운 의도 사이에서 찢긴 몸이 서있다. 너는 살인이 취하는 형식이 안전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전쟁터에 과연 죄의식이 없을 수 있겠는가? [갈등 속에 남아있지 말라. 공격 없이는 전쟁도 없기 때문이다.]

제23장 너 자신과의 전쟁 - Ⅲ. 혼란의 법칙제23장 너 자신과의 전쟁 - Ⅴ. 생명에 대한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