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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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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6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8분

제26장 전이

Ⅷ. 원리 복습

47 이것은 기적을 가르치는 수업이다. 따라서 이 수업의 목적을 이루려면 치유의 법칙을 이해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다룬 원리들을 복습하고, 치유가 가능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모든 것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원리들을 정리해 보자. 치유가 일단 가능해지면, 치유는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병은 분리에서 비롯된다. 분리가 부정되면, 병은 사라진다. 병을 일으킨 아이디어가 치유되고 제정신으로 대체되는 즉시, 병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성의 빛을 피해 철저히 보존하려고 의식에서 감춰진 관계에서, 병과 죄는 결과와 원인으로 간주된다.

48 죄의식은 처벌을 요청하며, 그 요청은 수락된다. 그러나 진리 안에서가 아니라, 죄 위에 세워진 그림자와 환상의 세상 안에서 수락된다.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지각한다. 지각이라는 것은 정녕 성취된 소망이기 때문이다. 지각은 변함없는 앎을 대체하려고 만들어졌기에, 변한다. 하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진리는 지각될 수 없고, 알려질 수만 있을 뿐이다. 지각된 것은 많은 형식을 취하지만, 어떤 형식에도 의미는 없다. 그것을 진리 앞으로 가져오면, 그 무의미함이 아주 분명해진다. 그것을 진리와 떼어 놓으면, 그것은 의미가 있고 실제인 듯이 보인다.

49 지각의 법칙은 진리와 정반대며, 앎에 해당되는 것은 앎과 무관한 그 어떤 것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느님은 병의 세상에, 병의 모든 형식에 적용되는 응답을 주셨다. 하느님의 응답은 영원하다. 비록 그 응답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간 안에서 작동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응답은 정녕 하느님에게서 왔기에, 작동할 때 시간의 법칙에 영향받지 않는다. 그 응답은 이 세상에 있지만, 이 세상의 일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제며, 모든 실재가 있는 곳에 머물러 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자신의 근원을 떠나지 않으며, 아이디어의 결과는 단지 아이디어와 떨어져 있는 듯이 보일 뿐이다. 아이디어는 마음의 산물이다. 밖으로 투사되어 마음의 외부에 있는 듯이 보이는 것은 전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안에 있는 것의 결과로서, 그 근원을 떠난 적이 없다.

50 하느님의 응답은 죄에 대한 믿음이 있는 곳에 있다. 오로지 그곳에서만 그 믿음의 결과가 완전히 무효화되고 원인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각의 법칙은 반드시 뒤집혀야 한다. 그것은 진리의 법칙이 뒤집힌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의 법칙은 영원히 참이고 뒤집힐 수 없지만, 뒤집힌 것으로 보일 수는 있다. 그리고 이것은 뒤집힘의 환상이 있는 곳에서 교정되어야 한다.

51 하나의 환상이 나머지 환상들보다 진리에 덜 복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몇몇 환상들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여, 그것들을 치유와 도움을 위해 진리에 제공하겠다는 용의를 덜 내는 것은 가능하다. 그 어떤 환상도, 자신 안에 일말의 진리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어떤 환상은 다른 환상들보다 더 참인 듯이 보인다. 물론 전혀 말도 안 되지만 말이다. 환상들의 위계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선호도일 뿐, 실재가 아니다. 선호도가 진리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환상은 단지 환상이며, 거짓이다. 네가 선호한다고 해서 환상이 실재가 되지는 않는다. 단 하나의 환상도 어떤 식으로든 참이 아니며, 모든 환상은 하느님이 그 모두에게 주신 답에 똑같이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다. 하느님의 뜻은 하나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듯한 그 어떤 소망도 진리 안에 토대가 없다.

52 죄는 잘못이 아니다. 죄는 교정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가서, 교정이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죄가 실제라는 믿음은 몇몇 잘못을 영원히 치유될 가망이 없는 것, 지옥을 위한 영원한 근거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이 그러하다면, 천국은 천국만큼이나 실제인 천국 자체의 대립물과 대립할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둘로 갈라지고, 대립하는 두 힘이 모든 창조물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하느님은 마침내 인내심을 잃고 세상을 갈라놓아서 당신을 공격하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은 당신의 마음을 잃으시고는, 죄가 당신의 실재를 빼앗아 마침내 당신의 사랑을 복수에 굴복시켰다고 선언하실 것이다. 이렇게 제정신이 아닌 그림을 위해서는 제정신이 아닌 방어를 예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그 그림을 참이라고 입증할 수는 없다.

53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진리는 참이 되기 위해 그 어떤 방어도 필요하지 않다. 환상에는 증인도 없고 결과도 없다. 환상을 바라보는 자는 다만 속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용서는 유일한 기능으로서, 세상이 부정하는 기쁨을 죄의 지배를 받는다고 여겨졌던 하느님 아들의 모든 측면에게 가져다주는 역할을 한다. 아마도 너는 죄의식의 안개에서 피어오르는 모든 믿음과 죽음을 종식하는 과정에서 용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54 죄는 네가 네 형제와 너 자신 사이에 강요하는 믿음이다. 죄는 너희를 시간과 장소에 제한하며, 약간의 공간은 너에게, 다른 약간의 공간은 네 형제에게 준다. 이러한 분리는 네가 지각하기에 분명히 분리되고 떨어져 있는 몸에 의해 상징화된다. 하지만 이런 상징은 단지 떨어지고 분리되어 있으려는 너의 소망을 나타낼 뿐이다. 용서는 네 형제와 너 자신 사이에 서있는 것을 치워버린다. 용서는 네가 그와 떨어지지 않고 결합되어 있으려는 소망이다. 우리가 용서를 "소망"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용서는 여전히 다른 선택 대안들이 있다고 상정하며, 선택의 세상 너머에 아직 완전히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5 하지만 이러한 소망은 천국의 상태와 일치하며,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다. 비록 그 소망은 너에게 모든 유산을 주기에는 훨씬 못 미치지만, 네가 있는 곳인 천국과 네가 어디에 있고 너의 정체는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 사이에 네가 설치한 장애물을 제거한다.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부정되어 알려지지 않을 수는 있다. 비록 부정되기 전에는 알려져 있었지만 말이다.

56 완벽하고 완성된 구원은 단지 참인 것이 참이어야 한다는 작은 소망,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간과하려는 작은 용의, 죽음과 황폐함이 지배하는 듯한 이 세상보다 천국을 더 원하여 내쉬는 작은 탄식을 요청할 뿐이다. 이에 기쁘게 응답하여 네 안에서 창조가 일어나 네가 보는 세상을 더없이 완벽하고 완성된 천국으로 대체할 것이다. 진리가 참이어야 한다는 용의 외에 무엇이 용서겠는가? 치유되지 않고 남아서, 그 자체 안에 모든 것을 포함한 단일성과 떨어져 있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죄는 없다.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소망과 하느님의 뜻이 하나임을 지각하는 순간, 모든 기적이 가능해진다.

57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가?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뜻하신다. 당신의 아들을 모든 것으로 창조하셨을 때, 하느님은 바로 이것을 보장하셨다. 네가 소유한 것이 곧 너의 존재라면, 무엇이든 상실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기적에 의해, 너는 창조라는 기능을 갖게 되어 그것을 하느님과 공유하게 되었다. 그 기능은 하느님과 떨어져서는 이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58 이곳에서 하느님의 아들은 너무 많이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적게 요청한다. 그는 자신만의 하찮은 보물을 찾기 위해 자신이 모든 것이라는 정체성을 희생하려 한다. 그러면서 그가 고립감과 상실감, 외로움을 겪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느낌이야말로 그가 찾으려 했던 보물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두려워할 수만 있을 뿐이다. 두려움이 과연 보물인가? 불확실성이 과연 네가 원하는 것일 수 있겠는가? 아니면 그것은 너의 뜻과 너의 진정한 정체에 대한 착각인가? 그렇다면 여기서 과연 무엇이 잘못인지 살펴봄으로써, 잘못이 보호받는 대신에 교정될 수 있게 하자.

59 죄란 죄에 대한 믿음이 일어난 마음 밖으로 공격이 투사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여기서 아이디어가 자신의 근원을 떠날 수 있다는 확신이 실재화되고 의미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런 잘못으로부터 죄와 희생의 세상이 일어난다. 이 세상은 공격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너의 순결을 증명하려는 시도다. 그런 시도가 실패했음은, 네가 비록 그 이유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죄의식을 느끼는 데서 알 수 있다. 결과는 자신의 근원과 분리되어, 네가 통제하거나 막을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결코 결합할 수 없다.

60 원인과 결과는 하나며,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하느님은 네가 항상 참이었던 것을 배우기를 뜻하신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은 너를 당신의 일부로 창조하셨으며, 아이디어는 자신의 근원을 떠나지 않기 때문에 이것은 여전히 참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품는 모든 아이디어는 마음에 풍요로움을 더할 뿐 결코 덜지 않는다는 것, 바로 이것이 창조의 법칙이다. 이것은 참으로 뜻한 것뿐만 아니라, 헛되이 소망한 것에도 적용된다. 마음은 속겠다고 소망할 수는 있지만, 자신을 자신의 정체가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가 자신의 근원을 떠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환상에게 참이 되라는 초대로서,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하느님의 아들을 속이려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61 기적은 원인과 결과를 떼어놓지 않고 한데 모을 때 가능하다. 원인 없이 결과를 치유하는 것은 단지 결과를 다른 형식으로 바꿀 뿐이다. 이것은 해방이 아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죄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완전히 구원되는 것보다 못한 것에는 결코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자신이 계속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며, 그리하여 모든 것이 그의 것으로서 어떤 상실에 의해서도 제한되지 않음을 부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희생도 그 결과라는 면에서는 희생이라는 아이디어 전체와 똑같다. 어떤 형식으로든 상실이 가능하다면, 하느님의 아들은 불완전하고 자기 자신이 아닌 상태가 된다. [또한 그는 자기 자신을 알지도 못하고, 자신의 뜻을 인식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그 자신을 맹세코 부정하고, 증오심에 불타서 둘 다 적으로 만든 것이다.

62 환상은 환상이 섬기도록 만들어진 목적을 섬긴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부터, 환상이 가진 듯한 그 모든 의미가 도출된다. 하느님은 네가 만든 모든 환상들에, 그 형식과 상관없이 기적 하나를 정당화할 또 다른 목적을 부여하셨다. 각각의 기적마다 그 안에는 모든 치유가 놓여있다. 하느님은 모든 환상들에 하나로서 답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하나인 것은 분명 같은 것이다. 같은 것이 다르다고 믿는다면, 너는 단지 너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하느님이 하나라고 부르시는 것은 분리되지 않고 영원히 하나일 것이다. 그분의 왕국은 정녕 연합되어 있다. 그것은 그렇게 창조되었으며,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63 기적은 다만 너의 아주 오랜 이름을 부를 뿐이며, 너는 그 이름을 인식할 것이다. 너의 기억 안에 진리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름을, 네 형제가 그 자신의 해방과 너의 해방을 위해 부른다. 천국이 하느님의 아들을 비춰주고 있다. 네가 해방될 수 있도록, 그를 부정하지 말라. 하느님의 아들은 다시 죽지 않겠다고 선택할 때까지 매 순간 다시 태어난다. 해치려고 소망할 때마다, 그는 아버지가 그를 위해 뜻하시는 것 대신에 죽음을 선택한다. 하지만 매 순간은 그에게 생명을 제공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가 살기를 뜻하시기 때문이다.

64 십자가 안에, 구원이 놓여있다. 고통도 고난도 없는 곳에는 치유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용서는 일체의 공격에 대한 유일한 응답이다. 따라서 공격은 그 결과를 빼앗기고, 증오는 사랑의 이름으로 응답받는다. 너에게는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와 지옥, 그리고 죽음에서 구하는 일이 맡겨졌다. 그러한 너에게 모든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너는 하느님의 아들을 구할 권능을 가졌다. 그의 아버지가 그렇게 뜻하셨기 때문이다. 너의 두 손에, 하나로서 주고받을 모든 구원이 놓여있다.

65 하느님이 네게 주신 권능을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느님이 너를 창조하신 대로 존재하는 것, 혹은 하느님이 주신 것을 하느님 아들의 모든 실수에 응답하고 그를 자유로이 풀어주기 위해 사용하는 것은 오만이 아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주신 권능을 제쳐두고, 그분이 뜻하시는 것 대신에 작고 어리석은 소망을 선택하는 것은 정녕 오만이다. 하느님이 너에게 주시는 선물은 한계가 없다. 그것이 응답할 수 없는 상황도, 그 자비로운 빛 안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전혀 없다.

66 하느님이 네가 있기를 바라시는 평화 속에 머물면서, 네 형제가 평화를 찾는 수단이 되어라. 그 속에서 너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우리 함께 죄와 죽음의 세상에 축복을 전해주자. 우리 각자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를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들 사이에는 다른 점이 전혀 없다. 특별성이 부정하는 단일성이 그들 모두를 구원할 것이다. 하나인 것에는 특별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들 각자에게 속한다. 한 형제와 그의 형제 사이에는 어떤 소망도 없다. 한 형제에게서 빼앗는 것은 모든 형제에게서 박탈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 형제를 축복하는 것은 모든 형제에게 하나로서 축복을 베푸는 것이다.

67 너의 태곳적 이름은 모든 이의 이름이다. 그것은 모든 이의 이름이 너의 이름인 것과도 같다. 네 형제의 이름을 불러라. 그러면 하느님이 응답하시리라. 그럴 때 너는 하느님을 부른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을 부르는 모든 이에게 이미 응답하셨거늘, 그러한 너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으시겠는가? 기적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기적은 언제나 참이었던 것이 그것을 모르는 이들에게 인식되게 할 수 있다. 이 작은 진리의 선물에 의해, 진리는 그 자체가 되고, 하느님의 아들은 자기 자신이 되며, 모든 창조물은 하나로서 하느님의 이름을 자유로이 부를 수 있게 된다.

제26장 전이 - Ⅶ. 지명된 친구제26장 전이 - Ⅸ. 즉각적인 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