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너의 구원자가 자신을 몸이라고 생각한다는 이유로 그를 정죄하지 말라. 그의 꿈 너머에 그의 실재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정체를 기억할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이 구원자임을 배워야 하고, 구원되고자 하는 자를 구원해야 한다. 너를 구원하는 데 그의 행복이 달려있다. 구원을 주는 자 외에 과연 누가 구원자겠는가? 그렇게 그는 구원이 자신의 것이며, 그것을 다른 이에게 주어야 함을 배운다. 주지 않는 한, 그는 자신이 갖고 있음을 모를 것이다. 주기는 가졌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자신이 강해지면 하느님이 약해지신다고 생각하는 자들만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이 갖지 않은 것을 그 누가 줄 수 있겠으며, 줌으로써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을 주면서 그 누가 잃을 수 있겠는가?
21 너는 아버지가 너를 창조하셨을 때 당신 자신을 잃으셨다고 생각하는가? 아버지가 당신의 사랑을 공유하셨다고 해서 약해지셨는가? 너의 완벽함으로 인해 아버지가 불완전해지셨는가? 아니면 너는 아버지가 완벽하고 완전하시다는 증거인가?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실재보다 더 선호하는 꿈속에서, 하느님께 그분의 증인을 부정하지 말라. 그는 분명 하느님의 아들을 그가 만든 꿈에서 건져내서 자유롭게 하는 구원자다. 그는 다른 누군가를 몸이 아니라고 보아야 하며,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지 못하는 살아있는 만물을 떼어놓으려고 세상이 세운 벽 없이, 자신과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몸과 죽음의 꿈속이지만, 그래도 그곳에는 진리의 주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어쩌면 단지 작은 불꽃, 어둠 속에 창조된 빛의 공간일 뿐이겠지만, 그곳에서 하느님이 여전히 빛나신다.
22 너는 너 자신을 깨울 수 없다. 하지만 너 자신이 깨워지도록 허용할 수는 있다. 너는 네 형제의 꿈을 간과할 수 있다. 너는 그의 환상을 너무도 완벽하게 용서할 수 있기에, 그는 너를 너의 꿈에서 깨우는 구원자가 된다. 그리고 그가 어둠 속의 빛의 공간, 하느님이 머물러 사시는 그곳에서 빛나고 있는 것을 볼 때, 너는 그의 몸이 있는 곳에 하느님 자신이 계심을 볼 것이다. 이 빛 앞에서 몸은 사라진다. 그것은 마치 아무리 짙은 그림자라도 빛에 굴복하는 것과 같다. 어둠은 스스로 남아있겠다고 선택할 수 없다. 빛이 온다는 것은 어둠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너는 영광 속에서 네 형제를 보고, 너희를 그토록 오래 떼어놓는다고 지각했던 간격을 실제로 무엇이 채우고 있는지 이해할 것이다.
23 그곳, 간격이 있는 곳에 하느님의 증인은 그분의 아들에게 가는 친절한 길을 부드럽게 깔아놓았다. 네가 용서하는 자에게, 너의 환상을 용서할 권능이 주어진다. 네가 주는 자유의 선물에 의해, 자유가 너에게 주어진다. 사랑에게 길을 내주어라. 너는 사랑을 창조하지 않았지만, 사랑을 확장할 수는 있다. 땅 위에서 이 말은 네 형제를 용서하여 너의 마음에서 어둠이 걷히게 하라는 의미다. 너의 용서를 통해 네 형제에게 빛이 왔을 때, 그는 자신의 구원자를 잊고서 구원되지 않은 채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그가 어둠을 뚫고 영원한 빛으로 걸어갈 때 자신의 곁에 간직하려는 빛을, 그는 바로 너의 얼굴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24 황폐와 재난의 꿈 한가운데서 하느님의 아들이 너의 구원자가 될 수 있으니, 그런 너는 얼마나 거룩한지! 그가 얼마나 간절히 와서 그를 감췄던 짙은 그림자에서 벗어나면서,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를 비춰주는지 보라. 그는 그 자신이지만, 그 자신 혼자만은 아니다. 그의 아버지가 너를 창조하실 때 당신의 일부를 잃지 않으셨듯이, 네가 그를 어둠에서 구하려고 너의 빛을 줌으로써 그의 내면의 빛은 한층 더 밝아졌다. 이제 너의 내면의 빛은 그의 내면에서 빛나는 것만큼이나 밝다. 이것이 바로 꿈속에서 빛나는 불꽃이다. 너는 그가 깨어나도록 도울 수 있으며, 그의 깨어나는 눈이 너를 바라볼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 그리고 그가 기쁘게 구원될 때, 네가 구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