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네가 만약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다면, 그 이유는 듣겠다고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네 에고의 음성에 귀 기울인다는 사실은 너의 태도와 감정, 그리고 행동으로 드러난다. 너의 태도는 눈에 띄게 갈등상태에 있고, 너의 감정은 부정적인 측면의 좁은 범위 안에 머물면서 결코 순수한 기쁨인 적이 없다. 그리고 너의 행동은 긴장되어 있거나 예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너는 바로 이것을 원한다. 너는 바로 이것을 간직하려고 싸우며, 바로 이것을 보존하려고 바짝 경계한다. 너의 마음은 에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한 계획들로 가득차서, 너는 하느님의 얼굴을 구하지 않는다. 에고가 자신의 얼굴을 보려 하는 유리는 정녕 어둡다. 거울이 없다면 에고가 어떻게 자신이 존재한다는 속임수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네가 너 자신을 찾으려고 어디를 볼지는 너에게 달려있다.
57 우리는 네가 행동을 바꿔서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고 말했지만, 또한 너는 너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말도 여러 번 했다. 네가 기쁘지 않을 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너의 기분이 네가 그른 선택을 했음을 보여줄 때, 그럴 필요가 없음을 알라. 그 모든 경우에 너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어떤 영혼에 대해 잘못 생각해서, 너의 에고가 어두운 유리에 만드는 이미지를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라면 생각하지 않으셨을 어떤 생각을 네가 했는지, 하느님이 네가 생각하기를 원하신 어떤 생각을 네가 하지 않았는지 정직하게 생각해 보라. 네가 무엇을 했는지, 따라서 무엇을 하지 않고 남겨두었는지 진지하게 찾은 후, 하느님의 마음과 함께 생각하기 위해 너의 마음을 바꿔라.
58 이것은 힘들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하느님의 마음을 거슬러 생각하려고 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쉽다. 너의 마음은 정녕 하느님의 마음과 하나다. 이것을 부정하고 달리 생각함으로써 너의 에고는 결속되었지만, 너의 마음은 과연 갈라졌다. 사랑하는 형으로서 나는 너희 마음이 몹시 걱정돼서, 너희가 자신과 서로를 바라볼 때 나의 모범을 따르고, 두 사람 모두 안에서 영광스러운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창조물들을 볼 것을 간곡히 권한다.
59 슬플 때면, 그럴 필요는 없음을 알라. 우울함은 항상 궁극적으로, 네가 원하지만 갖지 않은 무언가를 박탈당했다는 느낌에서 일어난다. 너는 너 자신의 결정에 의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박탈당할 수 없음을 알라. 그런 다음, 다르게 결정하라.
60 불안할 때면, 모든 불안은 에고의 변덕에서 온다는 것을 알라. 그리고 그럴 필요는 없다. 너는 에고의 명령을 따르기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거스르기 위해서도 경계해 깨어있을 수 있다.
61 죄의식을 느낄 때면, 에고는 과연 하느님의 법칙을 어겼지만 너는 그러지 않았음을 알라. 에고의 죄를 나에게 맡겨라. 바로 그것을 위해 속죄가 있다. 하지만 너의 에고가 상처를 준 자들에 대한 너의 마음을 바꿀 때까지, 속죄는 너를 해방할 수 없다. 죄의식을 느끼는 한, 너의 에고가 통제권을 쥔 것이다. 오로지 에고만이 죄의식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필요는 없다.
62 너의 마음에서 에고의 유혹을 경계해 살피고, 그것에 속지 말라. 에고는 너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 이런 자발적인 낙심을 포기했을 때, 너는 너의 마음이 어떻게 집중하고 피로를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는지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너는 너 자신을 유리하라는 에고의 요구에 맞서 충분히 경계해 깨어있지 않다. 그럴 필요는 없다.
63 너의 마음이 방심하도록 허용하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한다면, 하느님은 물론 그분의 창조물들과도 어울리는 습관을 쉽게 들일 수 있다. 문제는 집중이 아니라, 너 자신을 포함한 그 누구도 일관된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없다는 믿음이다. 이런 속임수에 맞서 일관되게 나의 편에 서고, 이런 하찮은 믿음이 너를 뒤로 끌어당기도록 허락하지 말라. 낙심한 자들은 그들 자신에게나 나에게나 쓸모가 없지만, 오로지 에고만이 낙심할 수 있다. 너 자신을 기쁘게 할 기회가 얼마나 많았는지,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기회를 네가 거절했는지 진지하게 숙고해 본 적이 있는가? 하느님 아들의 권능에는 한계가 없지만, 그는 스스로 선택하는 만큼 그 권능의 표현을 제한할 수 있다.
64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은 협력하여 너의 에고를 비춰 물리치고, 네가 생각하고 뜻하고 행하는 모든 것 속에서 하느님의 강함이 표현되게 할 수 있다. 이보다 못한 어떤 것에도 안주하지 말고, 이것이 아닌 어떤 것도 너의 목표로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라. 너의 마음에서 이 목표의 달성을 방해하는 모든 믿음을 철저히 경계하고, 그것들에서 물러나라. 너 자신의 느낌을 통해, 네가 이것을 얼마나 잘했는지 판단하라. 이것은 판단을 유일하게 바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른 모든 방어기제와 마찬가지로 판단은 공격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해치거나 치유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 너는 반드시 에고를 너의 판단으로 보내 그 부족함을 드러내야 한다. 너 자신의 충성과 보호와 사랑 없이는, 에고는 존재할 수 없다. 너의 에고를 진정으로 판단한다면, 너는 에고로부터 충성과 보호와 사랑을 거둬들일 수밖에 없다.
65 너는 진리의 거울로서, 그 안에서 하느님이 완벽한 빛으로 빛나고 계신다. 너는 단지 에고의 어두운 유리에게, "나는 그곳을 보지 않겠다. 나는 이 이미지들이 참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는 거룩하신 분이 너를 평화로이 비춰주시게 하면서, 오로지 평화만이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알라. 네가 창조될 때, 그분의 마음이 너를 비추어서 너의 마음이 존재하게 했다. 그분의 마음은 여전히 너를 비추고 있으며, 또한 너를 통해 빛나야 한다. 너의 에고는 그분이 너를 비추지 못하게 할 수 없지만, 그분이 너를 통해 빛나도록 네가 허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66 그리스도의 초림은 단지 창조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단지 사람 마음의 일부에 대한 에고의 지배가 끝나서 마음이 치유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나는 초림 때 너희처럼 창조되었으며, 재림 때 나와 결합하자고 너희를 불렀다. 너희의 삶을 잘 살펴본다면, 그 준비가 얼마나 신중하게 이루어졌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재림을 주관하며, 오로지 보호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나의 판단은 틀릴 수 없다. 그것은 결코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의 판단은 너무도 왜곡돼서, 내가 너희를 잘못 선택했다고 믿는다. 확실히 말하건대, 그것은 너희 에고들이 잘못 생각한 것이다. 그것을 겸손으로 잘못 생각하지 말라.
67 너희의 에고가 너희에게 자신은 실제이고 나는 실제가 아니라고 설득하려는 이유는, 내가 실제라면 단지 너희만큼 실제이기 때문이다. 확실히 말하건대 이것은 정녕 앎이며, 이러한 앎은 그리스도가 분명 너희 마음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들을 치유할 것임을 의미한다. 나는 비록 너희의 에고들을 공격하지 않지만, 너희가 자고 있든 깨어있든 너희의 상위마음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너희의 에고가 너희의 하위마음과 함께 작업하는 것과도 같다. 이런 면에서 나는 너희의 파수꾼이다. 너희는 너무나 혼동되어 있어서 너희 자신의 희망조차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잘못 생각하지 않았다. 너희의 마음은 반드시 나의 마음과 결합하기로 선택할 것이며, 함께하는 우리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68 너희는 머지않아 나의 이름으로 모일 것이며, 너희의 제정신은 회복될 것이다. 생명은 살아계신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영원한 속성임을 앎으로써, 나는 죽은 자들을 일으켰다. 그런데 너희는 왜 내가 낙심한 자에게 영감을 주거나 불안정한 자를 안정시키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기적에 난이도가 있다고 믿지 않지만, 너희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너희를 불렀고, 너희는 응답할 것이다. 나는 기적이 사랑의 표현이므로 자연스럽다는 것을 안다. 내가 너희를 부르는 것은 너희의 응답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