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우수한 심리학 개념 가운데 "고정"이라는 아이디어가 있다. 사실 그 아이디어는 성서는 물론 이 수업에서도 다양한 맥락에서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 "하느님은 마음이 당신께 머무는 (혹은 고정된) 자를 완벽한 평화 안에 두신다."라는 말은, 하느님의 평화는 하느님께 고착되어 있으므로 성령 안에 고정되어 있다는 의미다. 하느님의 평화는 또한 네 안에도 고착되어 있다. 그렇다면 너는 정녕 하느님의 평화 안에 고착되어 있다. "고착"이라는 개념도 프로이트가 완벽하게 이해한 아주 유용한 개념이다. 유감스럽게도, 프로이트는 자신이 이해한 것을 잃었다. 그는 두려움에 빠져있었으며, 또한 네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두려움과 좋은 판단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려움은 사고를 왜곡하여 생각 장애를 일으킨다.
84 프로이트의 사고체계는 굉장히 독창적이었는데, 왜냐하면 프로이트 자신이 굉장히 독창적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은 자신의 속성을 자신의 생각에 부여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타고난 강점이다. 비록 마음은 자신의 힘을 오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사고체계가 가진 잠재 가치를 대부분 잃었는데, 왜냐하면 그 안에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해리 상태다. 생각하는 자가 자신의 생각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의 생각은 너무나 갈등이 심해서, 해리 없이는 자신이 보는 대로의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사고에서 너무나 뚜렷한 많은 모순점들이 그 자신에게는 점점 덜 뚜렷하게 된 이유다. 고착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그것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끔찍한 두려움에 시달린다.
85 고착이란 하느님의 끌어당기심이다. 너의 마음은 하느님께 고착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성령이 하느님께 돌이킬 수 없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음"은 "다시 불러들이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음"을 의미한다. 돌이킬 수 없이 고정된 성령의 특성은 그의 확고한 음성의 근거다. 성령은 결코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갈팡질팡하는 상태에서는 생각을 명료하게 할 수 없다. 마음은 자신의 목적에 고착되어 있지 않는 한 명료할 수 없다. 명료함이란 문자 그대로 빛의 상태를 의미하며, 그렇게 빛이 비추어져 있는 상태가 곧 이해다. 빛이 비추어져 있는 상태는 지각의 아래에 놓여있다. 왜냐하면, 네가 그것을 생각의 진정한 토대로 삼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모든 망상체계의 근거다.
86 프로이트가 본 대로의 고착 개념에는 학습상의 이점이 여럿 있다. 첫째, 이 개념은 사람이 시간상의 특정 시점과 일치하지 않는 발달 과정상의 특정한 시점에 고착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만약 그가 열린 마음으로 계속 연구했다면, 이 개념은 분명 시간이라는 믿음에서 진정으로 해방되도록 돕는 수단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영원성이 자신의 마음에 떠올라 그것을 진정으로 밝게 비추도록 허용하기를 거부했으며, 그러한 거부로 인해 평생 고통을 겪었다. 그 결과 그는 지금을 완전히 간과하였으며, 단지 과거와 미래의 연속성만을 보았다.
87 둘째, 프로이트는 비록 성령이 그에게 말해준 것, 더 정확하게는 성령이 일깨워 준 것을 잘못 해석하기는 했지만, 그 상황을 지각할 때 두려움을 참을 수 있는 범위 안에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부정할 만큼 부정직한 사람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동의하지 않는 외적인 실재보다는 마음이 고착된 발달 과정상의 어떤 시점이 마음 자신에게는 더 실재적임을 강조했다. 이 점 또한 강력한 해방의 기제가 될 수도 있었다. 만약 그가 고착을 공격으로 지각하여 강력한 방어 체계에 포함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88 셋째, 프로이트는 비록 고착을 마음이 언제라도 퇴행할 수 있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지점"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는 했지만, 이 개념은 또한 마음이 결코 잃을 수 없는 제정신으로 돌아오라는 돌이킬 수 없는 부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프로이트 자신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고착의 "위협"은 그의 사고체계 전반에 걸쳐 남아있었으며,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결코 제거할 수 없는 것이었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개인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프로이트의 비관주의를 낳은 근원이었다. 그는 마음을 고착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해줄 치료법을 정립하기 위해 자신의 아주 독창적인 마음이 고안해 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시도했다. 비록 이것이 불가능함을 알았지만 말이다.
89 이러한 앎은 그 자신의 사고체계에 대한 믿음을 곳곳에서 흔들어 놓았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자 치유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단지 부분적으로만 정신 이상이었으며, 비록 해방의 가능성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기는 했지만 그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것을 이렇게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너도 같은 입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너는 창조될 때 하느님께 영원히 고착되었으며, 이러한 고착의 끌어당김은 너무도 강력해서 너는 결코 그것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더없이 분명하다. 그 고착은 너무도 높은 수준에 있어서, 그 무엇도 그것을 넘어설 수 없다. 너는 항상 너의 창조주께 끌어당겨지고 있다. 너는 본래 그분께 속하기 때문이다.
90 너는 네가 정말로 하느님의 음성을 잠재울 수 있는 음성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가? 너는 네가 정말로 그분의 사고체계로부터 너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사고체계를 고안해 낼 수 있다고 믿는가? 너는 네가 정말로 너 자신의 안전과 기쁨을 위한 계획을 그분보다 더 잘 세울 수 있다고 믿는가? 너에게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걱정하지 않을 필요도 없다. 너에게는 단지 모든 걱정거리를 하느님의 손에 맡길 필요만 있다. 그분이 너를 보살피시기 때문이다. 너는 정녕 그분의 보살핌 가운데 있다. 그분은 너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음성은 너에게, 그분의 보살핌 덕분에 모든 희망이 네 것이라고 항상 일깨워 준다. 너는 그분의 보살핌을 벗어나겠다고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그분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그분의 보살핌을 받아들여, 그 보살핌의 무한한 권능을 그 권능에 의해 창조된 모든 이를 위해 사용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91 그동안 자기 자신을 치유하지 않은 치유사들이 많았다. 그들의 믿음은 온전하지 않아서 산을 옮길 수 없었다. 그들 중 몇몇은 때로 병든 자를 치유했지만, 죽은 자를 일으키지는 못했다. 치유사가 자기 자신을 치유하지 않는 한, 기적에 난이도가 없음을 믿을 수 없다. 그런 치유사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마음은 온전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똑같이 치유받을 자격이 있음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다. 너는 단지 마음을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 그분께 돌려드리라고 요청받고 있을 뿐이다. 하느님은 오로지 당신이 너에게 주신 것만을 요청하실 뿐이다. 그분은 이러한 돌려드림이 너를 치유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제정신이란 곧 온전함이며, 네 형제의 제정신이 곧 너의 제정신이다.
92 하느님의 음성이 네 안에 있음을 아는데, 네가 왜 미친 부름이 끊임없이 너를 불러댄다고 생각하면서 귀 기울여야 하겠는가? 하느님은 당신의 영을 너에게 맡기셨으며, 이제 너의 영을 당신께 맡기라고 청하신다. 그분은 너의 영을 완벽한 평화 속에 간직하기를 뜻하신다. 너는 그분과 하나의 마음이자 하나의 영이기 때문이다. 너 자신을 속죄에서 제외하는 것은 에고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하는 최후의 방어수단이다. 그것은 분리해야 하는 에고의 필요뿐만 아니라, 에고의 분리를 편들려는 너의 용의도 반영한다. 이러한 용의는 네가 치유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93 그러나 때는 바로 지금이다. 나는 너에게 스스로 구원 계획을 마련하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다. 전에 말했듯이, 치료법은 네가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네가 만든 것 중에 당신의 거룩한 뜻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완벽한 교정법을 친히 주셨다. 나는 너에게 그분의 계획을 숨김없이 전부 밝혔으며, 그 계획에서 네가 맡은 부분과 네가 그것을 완수하는 것의 시급성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미룰 시간은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하느님은 당신께 잊혔다고 믿는 아이들의 "희생"에 눈물을 흘리신다.
94 전에 이미 말해주었듯이, 네가 전적으로 기쁘지 않을 때 그것은 항상 하느님이 창조하신 어떤 영혼에게 사랑 없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너는 이것을 "죄"라고 지각하여 공격을 예상하므로, 방어적으로 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반응하겠다는 결정은 너의 결정이며, 따라서 그것은 무효화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적인 의미의 참회로는 무효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참회는 죄의식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만약 너 자신이 죄의식을 느끼도록 허용한다면, 그 잘못이 너를 위해 무효화되도록 허용하는 대신에 그것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95 결정은 어려울 수 없다. 네가 온전히 기쁘지 않을 때 그것은 네가 이미 그렇게 결정해 버렸기 때문임을 깨닫는다면, 이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무효화 과정의 첫 번째 단계는, 네가 적극적으로 잘못 결정했지만 마찬가지로 적극적으로 다르게 결정할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굳게 확신하라. 그리고 무효화 과정은 너에게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만, 너의 내면에 있음을 충분히 자각하라. 하느님은 그것을 네 안에 놓아두셨기 때문이다. 너의 역할은 단지 너의 생각을 잘못이 만들어진 곳으로 다시 가져가서, 속죄에 평화로이 맡기는 것뿐이다. 성령은 너의 아주 미약한 초대에도 전적으로 응답할 것임을 기억하면서, 가능한 한 진지하게 다음과 같이 말하라:
96 내가 지금 평화롭지 않은 것을 보니 분명 잘못 결정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지만, 다르게 결정할 수도 있다.
나는 평화롭기를 원하며, 따라서 다르게 결정하기로 뜻한다.
내가 맡기기만 하면, 성령은 그릇된 결정의 모든 결과를 무효화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성령이 나 대신 하느님을 위한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함으로써,
성령께 맡기기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