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우리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같다고 여기지 않는 많은 단어들을 동의어로 사용했다. 우리는 소유하기와 존재하기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다른 단어들도 사용했다. 듣기와 존재하기가 한 사례이고, 여기에다 가르치기와 존재하기, 배우기와 존재하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투사하기와 존재하기를 더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전에 말했듯이, 모든 아이디어는 그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자의 마음에서 시작되어 바깥을 향해 확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부터 확장하는 것은 여전히 마음 안에 존재하며, 마음은 자신이 확장하는 바로 그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타고난 재능이다. 여기서 "안다"라는 단어는 정확하게 쓰였다. 비록 에고는 알지도 못하고 존재하기에도 전혀 관심이 없지만 말이다.
40 성령은 편파적이지 않은 지각을 통해 앎을 여전히 안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아무것도 공격하지 않음으로써, 성령은 하느님의 소통에 아무런 장벽도 세우지 않는다. 따라서 존재하기는 결코 위협받지 않는다. 하느님을 닮은 너의 마음은 정녕 더럽혀질 수 없다. 에고는 결코 그 마음의 일부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그렇지 않겠지만, 너는 에고를 통해 참이 아닌 것을 듣고 가르치고 배울 수 있다. 네가 만든 이것으로부터, 너는 네가 본래 존재하는 그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도록 너 자신을 가르쳤다. 너는 네가 배우지 않은 것을 가르칠 수 없다. 그리고 너는 네가 가르치는 것을 너 자신 안에서 강화한다. 그럴 때 너는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가르치는 모든 레슨을, 너 자신이 배우고 있다.
41 이것이 바로 네가 오로지 한 레슨만 가르쳐야 하는 이유다. 너 스스로 갈등에서 자유롭고자 한다면 오로지 성령으로부터만 배워야 하며, 오로지 성령에 의해서만 가르쳐야 한다. 너는 오로지 사랑으로 존재할 뿐이지만, 이것을 부정했을 때 너의 존재인 그것을 네가 배워야 하는 어떤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십자가형의 메시지는 "오로지 사랑만 가르쳐라. 사랑이 바로 너의 존재인 그것이기 때문이다."이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인 유일한 레슨이며, 따라서 완벽하게 연합된 유일한 레슨이다. 네가 이 레슨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레슨을 가르치는 것이다. "너는 네가 가르치는 대로 배울 것이다." 이 말은 정녕 참이다. 따라서 너는 네가 가르치는 그것이 너를 가르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너는 네가 투사하는 바로 그것을 믿는다.
42 단 하나의 진정한 안전은 오로지 성령만을 투사하는 데 놓여있다. 네가 다른 이들 안에서 성령의 온유함을 볼 때, 너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를 해가 전혀 없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이 일단 이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더 이상 자신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 너의 마음은 하느님의 보호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영원토록 완벽하게 안전하다고 확신하게 된다. 완벽하게 안전한 자들은 전적으로 온화하다. 그들은 자신이 축복받은 존재임을 알기에, 축복을 베푼다. 그 마음은 걱정하지 않기에 전적으로 친절하며, 자비를 투사하기에 자비롭게 존재한다.
43 안전이란 공격의 완전한 포기다. 이것에는 어떤 타협도 있을 수 없다. 네가 어떤 형식으로든 공격을 가르친다면, 너는 이미 공격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공격은 너를 해칠 것이다. 하지만 너의 배움은 영원하지 않으며, 따라서 너는 공격을 가르치지 않음으로써 공격을 탈학습할 수 있다. 너는 가르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너의 구원은 에고가 믿는 모든 것과 정반대를 가르치는 데 놓여있다. 너는 바로 이런 식으로 너를 자유롭게 할 진리를 배울 것이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너에게 진리를 배움에 따라, 진리는 너를 계속 자유롭게 지켜줄 것이다. 평화를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평화를 가르치는 것이다. 너는 투사를 통해 평화를 배움으로써 평화를 네가 아는 것의 일부로 만든다. 너는 네가 해리한 것을 가르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44 너는 오로지 이런 방법을 통해서만 네가 던져버린 앎을 되찾을 수 있다. 너는 네가 공유하는 아이디어를 가졌음에 틀림없다. 그 아이디어는 가르치기에 대한 확신을 통해 네 안에서 깨어난다. 가르치기가 존재하기이고 배우기가 존재하기라면, 가르치기는 곧 배우기임을 기억하라. 네가 가르치는 모든 것을, 너 자신이 배우고 있다. 오로지 사랑만 가르쳐라. 그리하여 사랑이 네 것임을, 네가 곧 사랑임을 배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