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너는 온아들을 오로지 하나로서만 사랑할 수 있지만, 온아들이 산산이 조각났다고 지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아들 전체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무언가를 그것의 부분에서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런 까닭에, 공격은 결코 개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런 까닭에, 공격을 전적으로 포기해야 한다. 공격을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전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두려움과 사랑은 똑같이 상호적이다. 두려움과 사랑은 에고가 낳았는지 성령이 고취하는지에 따라 만들거나 창조하지만, 반드시 그것을 생각한 자의 마음에 돌아와서 그의 지각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다. 이것은 그가 하느님, 그분의 창조물들, 그리고 자신의 창조물들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지를 포함한다. 네가 그들을 두려움으로 대한다면, 그들 중 어느 누구의 진가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네가 그들을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들 모두의 진가를 알아볼 것이다.
55 공격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사랑할 수 없다. 그 마음은 자신이 사랑을 파괴할 수 있다고 믿으며, 따라서 사랑의 진정한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사랑의 진정한 정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이 사랑한다고 지각할 수 없다. 그러면 그 마음은 존재에 대한 자각을 잃고, 자신이 실재하지 않는다고 느끼게 됨으로써,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너 자신의 생각이 그 권능으로 말미암아 이런 상태를 만들었지만, 너 자신의 생각은 또한 너를 이런 상태에서 구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는, 그 권능이 네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의 생각을 네가 뜻하는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은 그 권능의 일부다. 네가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너는 네 생각의 권능을 부정한 것이며, 그럼으로써 네가 그것을 무력하게 만들었다고 믿은 것이다.
56 자신을 보존하려는 에고의 창의성은 대단하지만, 그것도 마음의 권능에서 생겨난다. 하지만 에고는 이것을 부정한다. 이것은 에고가 자신을 보존해 주는 것을 공격한다는 의미로서, 극심한 불안을 일으키는 근원임에 틀림없다. 이것이 바로, 에고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결코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에고는 아주 논리적이기는 하지만, 분명 제정신이 아니다. 에고는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생존에 아주 해로운 유일한 근원에 의지한다. 에고는 이 근원의 권능을 지각하기가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그것을 경시해야 한다. 이것은 결국 에고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며, 이는 에고가 견딜 수 없는 상태다.
57 계속 논리적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제정신이 아닌 에고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방법으로 이렇게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딜레마를 해결한다. 에고는 이 위협을 너에게 투사하여 너의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각함으로써,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는다고 지각하지 않는다. 네가 만약 너 자신의 안전을 알지 않겠다고 에고에게 약속함으로써 에고 편을 든다면, 이것은 에고의 존속을 보장해 준다. 에고는 도무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앎은 총체적이지만, 에고는 총체성을 믿지 않는다. 이런 불신이 바로 에고의 기원으로서, 에고는 너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선조에게는 아주 충실하여, 자신이 생겨난 대로 자식을 낳는다.
58 마음은 항상 자신이 생산된 대로 재생산한다. 두려움에 의해 생산된 에고는 두려움을 재생산한다. 이것이 바로 에고의 충성이며, 이러한 충성은 에고로 하여금 사랑을 배반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네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너의 권능인데, 에고는 이것을 부정해야 한다. 에고는 또한 이런 권능이 너에게 주는 모든 것도 부정해야 한다. 그것들은 너에게 모든 것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가진 자는 에고를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에고를 만든 자는 에고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에고가 맞닥뜨릴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은 거절이다. 에고를 만든 마음이 자기 자신을 안다면 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온아들 가운데 어떤 부분이라도 인식한다면, 그 마음은 자기 자신을 알게 될 것이다.
59 그러므로 에고는 모든 진가를 알아보기, 모든 인식, 모든 제정신인 지각과 모든 앎에 반대한다. 에고는 이것들의 위협을 총체적이라고 지각한다. 에고는 마음의 모든 헌신이 총체적이라는 사실을 지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녕 마음인 네게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가야 하는 에고는 다른 어떤 것에라도 기꺼이 달라붙으려 한다. 그러나 다른 것이란 정녕 아무것도 없다. 이것은 마음이 환상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만약 환상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것이라는 말이다. 마음은 바로 그러한 방법으로 환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60 성령은 환상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무효화하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가 환상을 전혀 지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령께 환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령은 갈등을 무의미한 것으로 지각함으로써 환상이 일으키는 겉보기 갈등을 해결한다.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성령은 갈등을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지각한다. 그리고 갈등은 정녕 무의미하다. 성령은 네가 갈등을 이해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갈등은 무의미하므로 이해될 수 없음을 깨닫기를 원한다. 우리가 전에 말했듯이, 이해는 진가를 알아보게 하고, 진가를 알아보는 것은 사랑을 불러온다. 다른 어떤 것도 실제가 아니므로 이해될 수 없으며, 따라서 다른 어떤 것도 의미를 갖고 있지 않다.
61 성령이 너에게 제공하는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자 한다면, 하느님과 그분의 왕국이 아닌 것을 위해서는 일체 경계해 깨어있으면 안 된다. 네가 이것을 어렵다고 느끼는 유일한 이유는, 그밖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믿음이 갈등하지 않는 한, 믿음에는 경계해 깨어있음이 필요 없다. 만약 믿음이 갈등한다면, 전쟁 상태를 일으킨 갈등하는 요소들이 믿음 안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경계해 깨어있음이 필수적으로 된다. 경계해 깨어있음은 평화 안에서는 있을 자리가 전혀 없다. 그것은 참이 아닌 믿음에 반하여 필요하며, 네가 참이 아닌 것을 믿지 않았다면 성령은 경계해 깨어있으라고 요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네가 무언가를 믿을 때, 그것을 너에게 참인 것으로 만들어버렸음을 부정할 수 없다.
62 하느님이 아시지 않는 것을 네가 믿을 때, 너의 생각은 하느님의 생각을 반박하는 듯이 보이며, 이것은 네가 마치 그분을 공격하고 있는 듯이 보이게 만든다. 우리가 여러 번 강조했듯이, 에고는 자신이 하느님을 공격할 수 있다고 믿으며, 또한 네가 그렇게 했다고 설득하려 한다. 마음은 공격할 수 없으므로, 에고는 아주 논리적으로 네가 마음일 수 없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 에고는 너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음으로써 자신을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볼 수 있다. 에고는 자신의 약함을 알아차리고 있기에 너의 충성을 원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너로서 충성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에고는 너의 마음을 자신의 망상체계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의 이해의 빛이 에고를 비춰 물리칠 것이기 때문이다.
63 에고는 진리의 어떤 부분도 원하지 않는다. 진실은, 에고는 참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진리가 총체적이라면, 거짓된 것은 존재할 수 없다. 둘 중 어느 쪽에 대한 헌신이든 총체적일 수밖에 없다. 너의 마음을 분열시키지 않고서는, 그것들은 너의 마음에서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둘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다면, 그리고 네가 평화를 원한다면, 갈등이라는 아이디어를 전적으로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계해 깨어있을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단지 네가 무엇이 참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만 그러하다.] 전적으로 모순되는 두 사고체계가 진리를 공유한다고 믿는 동안은, 경계해 깨어있을 필요가 분명히 있다. 너의 마음은 충성심을 두 왕국 사이에서 나누고 있으며, 따라서 너는 어느 쪽에도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지 않다.
64 네가 왕국과 동일하다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네가 제정신이 아니게 생각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너의 정체는 너의 지각에 의해 확립되지 않으며, 그것에 의해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어떤 수준에서든 지각된 동일시의 문제는 사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이해의 문제다. 그것은 네가 무엇을 이해할 수 있는지를 네가 결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에고는 이것을 전적으로 믿으며, 그것에 완전히 헌신하고 있다. 그것은 참이 아니다. 따라서 에고는 전적으로 거짓에 헌신하면서, 성령은 물론 하느님의 앎과도 완전히 상반되게 지각한다.
65 너는 오로지 성령에 의해서만 의미 있게 지각될 수 있다. 너의 존재는 정녕 하느님의 앎이기 때문이다. 네가 받아들이는 믿음 중에 이것과 다른 것은 모두 네 안에 있는 하느님의 음성을 가릴 것이며, 따라서 너에게 하느님을 가릴 것이다. 네가 그분의 창조물을 참되게 지각하지 않는 한, 그것의 창조주를 알 수 없다. 하느님과 그분의 창조물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창조주와 창조물의 하나인 상태가 바로 너의 온전성이고, 너의 제정신이며, 너의 무한한 권능이다. 이 무한한 권능은 하느님이 너에게 주신 선물이다. 그것은 곧 너의 정체이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너의 마음을 그 권능으로부터 해리한다면, 생각의 우주의 가장 강력한 힘을 마치 약한 것처럼 지각하는 것이다. 그럴 때 너는 네가 그 힘의 일부임을 믿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66 그 힘 안에 너의 부분이 없다고 지각할 때, 너는 하느님의 창조물을 약하다고 지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약해졌다고 보는 자들은 공격한다. 하지만 그 공격은 맹목적일 것이다. 공격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지들을 지어내서 그것들을 무가치하다고 지각하고는, 그 무가치함을 이유로 그것들을 공격한다. 바로 이것이 에고 세상의 모든 것, 즉 무다. 그것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상을 이해하려고 하지 말라. 만약 이해하려고 한다면, 너는 그것이 정녕 이해될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진가를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 세상을 정당화하겠지만, 그 세상은 실로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의미 없는 것을 의미 있게 만들 수는 없다. 이것은 그저 제정신이 아닌 시도일 뿐이다.
67 너의 마음에 정신 이상이 들어오도록 허락하는 것은, 네가 아직 제정신을 전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네가 무언가 다른 것을 원한다면 무언가 다른 것을 만들어내겠지만, 그것은 실로 무언가 다른 것이므로, 너의 사고체계를 공격하고 충성심을 갈라놓을 것이다. 이렇게 갈라진 상태에서는 창조할 수 없다. 너는 이렇게 갈라진 상태에 반하여 경계해 깨어있어야 한다. 오로지 평화만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너의 갈라진 마음은 왕국의 확장을 차단하고 있지만, 왕국의 확장이야말로 정녕 너의 기쁨이다. 네가 만약 왕국을 확장하지 않는다면, 너의 창조주와 함께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이며, 그분이 창조하신 대로 창조하고 있지도 않은 것이다.
68 이렇게 우울한 상태에서, 성령은 네가 슬픈 이유에 대해 부드럽게 일깨워 준다: 너는 하느님과 공동 창조자로서 너의 기능을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너 자신에게서 기쁨을 박탈하고 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너의 뜻이다. 너의 뜻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너는 의미 없이 뜻을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변경 불가능하므로, 뜻의 실재적 갈등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지극히 일관된 가르침이다.
69 분리가 아닌 창조가 너의 뜻이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이것을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완벽한 성취물인 온아들은 오로지 완벽하게만 성취할 수 있다. 그러면서 온아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창조된 기쁨을 확장하고, 자신의 창조주는 물론 자신의 창조물들과도 동일시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임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