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 너는 너 자신을 기적으로 이끄는 안내자가 될 수 없다. 네가 바로 기적이 필요하게 만든 당사자기 때문이다. 네가 그렇게 했기 때문에, 네가 기적을 행할 때 의지할 수단이 너를 위해 제공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이 아버지께 아주 약간만이라도 의지한다면, 아버지는 그가 만들어낸 모든 필요를 다 채워주실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을 억지로 당신께 의지하게 만드신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당신 자신으로 남아계실 수 없다. 하느님이 당신의 정체를 잃으시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잃으신다면, 너도 너의 정체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정체이신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바꾸실 수 없다. 왜냐하면, 너의 정체가 정녕 변함없기 때문이다. 기적은 하느님의 아들을 그가 스스로 만들려고 하는 모습이 아니라 늘 그랬던 대로 봄으로써, 하느님의 변함없음을 인정한다. 기적은 오로지 죄 없음만이 가져올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오며, 그리하여 죄 없음이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립한다.
68 죄의식에 너무도 강하게 속박되어 있고, 계속 그렇게 남아있는 데 전념하는 네가 어찌 너의 죄 없음을 스스로 확립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네가 확실히 해두어야 할 점은, 그것이 불가능함을 기꺼이 인정하려는 용의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의 안내가 제한되는 이유는 단지, 너 혼자서 삶의 소소한 부분을 꾸려나가거나 특정한 측면을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는 이런 식으로 성령을 의지할 수 없게 만들고는, 이런 가공의 의지할 수 없음을 구실로 특정한 어둠의 레슨을 성령께 감추려 한다. 네가 받아들일 안내를 이런 식으로 제한함으로써, 너는 기적이 너를 위해 모든 문제에 답해준다고 믿을 수 없게 된다.
69 성령이 너로 하여금 다른 이에게 주도록 하려는 것을 너에게는 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네가 가진 문제 가운데 성령이 너에게 기적을 제공하여 해결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 기적들은 너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너의 모든 두려움과 고통, 시련은 이미 무효화되었다. 성령은 그것들을 너 대신 받아들여서 그것들이 결코 존재한 적이 없음을 인식함으로써, 전부 빛으로 가져왔다. 어둠의 레슨들 중에 성령이 너를 위해 이미 밝혀놓지 않은 것은 없다. 네가 너 자신에게 가르치려는 레슨들을, 성령은 이미 교정했다. 그 레슨들은 성령의 마음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성령을 속박하지 못하며, 따라서 너도 속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시간을 네가 보듯이 보지 않는다. 그리고 성령이 네게 제공하는 모든 기적은, 시간에 대한 너의 용도를 교정하여 성령의 것으로 만든다.
70 너를 이미 과거에서 해방한 성령은 네가 정녕 과거에서 자유로움을 가르쳐주고자 한다. 성령은 너로 하여금 그가 성취한 것을 네 것으로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성령은 그것을 너를 위해 성취했기 때문이다. 성령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것은 정녕 네 것이다. 성령은 너를 이미 네가 만든 것으로부터 해방하였다. 너는 성령을 부정할 수는 있지만, 헛되이 요청할 수는 없다. 성령은 항상 너 대신에 그가 만든 것을 준다. 성령은 자신의 빛의 가르침을 네 마음 안에 확립할 것이며, 따라서 죄를 가르치는 어둠의 레슨은 성령이 자신의 현존으로 거룩하게 확립한 네 마음 안에 머물러 살 수 없게 된다. 성령이 그곳에서 너를 통해 일하니,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그리고 성령이 이룬 모든 성과는 곧 너의 성과다. 네가 성령으로 하여금 너를 통해 기적을 행하도록 허용할 때마다, 성령은 너에게 기적을 선사한다.
71 하느님의 아들은 언제까지나 분열될 수 없다. 우리는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결속되어 있듯이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배운다. 하느님의 교사는 하느님의 아들처럼 자신의 창조주를 닮았으며, 하느님은 당신의 하나인 상태와 아들의 하나인 상태를 당신의 교사를 통해 선포하신다. 침묵 속에서 귀 기울이고, 그 교사에 맞서 너의 음성을 높이지 말라. 그는 하나인 상태의 기적을 가르치며, 그의 레슨 앞에서 분열이 사라진다. 여기에서 그 교사처럼 가르쳐라. 그러면 네가 그동안 항상 아버지처럼 창조했음을 기억할 것이다. 불멸의 거룩한 인장이 찍힌 창조의 기적은 결코 멈춘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모든 창조물을 위한 하느님의 뜻이다. 그리고 모든 창조물은 이것을 함께 뜻한다.
72 자신이 아무것도 알지 못함을 항상 기억하면서 기꺼이 모든 것을 배우려는 자들은 모든 것을 배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신을 신뢰할 때마다, 그들은 배우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이미 안다고 생각함으로써 배움의 동기를 파괴해 버렸다. 완벽한 평화의 시험법을 통과할 때까지, 그 무엇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평화와 이해는 함께 가는 것이지, 결코 하나만 찾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다른 하나를 데려온다. 그것들이 분리되지 않는 것이 곧 하느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원인이자 결과며, 따라서 하나가 없는 곳에서는 다른 하나도 있을 수 없다.
73 이해의 결과가 함께하지 않는 한 자신은 알 수 없음을 깨닫는 자들만이, 실제로 배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오로지 평화만을 원해야 한다. 네가 안다고 생각할 때마다, 평화는 너를 떠날 것이다. 그럴 때 너는 평화의 교사를 저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알지 못함을 충분히 깨달을 때마다, 평화가 돌아올 것이다. 그럴 때 너는 평화의 교사를 위해 에고를 버림으로써, 평화가 돌아오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기 때문이다. 에고에게는 아무것도 요청하지 말라. 네가 할 일은 단지 이것뿐이다. 성령은 그런 식으로 자리를 내주는 모든 마음을 자기 자신으로 채울 것이다.
74 네가 만약 평화를 원한다면, 공격의 교사를 버려야 한다. 평화의 교사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를 저버릴 수 있을지라도, 그는 결코 그것을 되갚지 않을 것이다. 너에 대한 그의 믿음이 곧 그의 이해기 때문이다. 그 교사는 자신의 창조주를 믿듯이 확고하게 너를 믿으며, 창조주에 대한 믿음은 그분의 창조물에 대한 믿음을 포함할 수밖에 없음을 안다. 성령의 거룩함은 바로 이런 일관성에 있으며, 성령은 그것을 저버릴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의 창조주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령은 언제나 너를 완벽하다고 보면서, 평화의 필요성을 지각하고 평화를 가지려는 모든 이에게 평화의 선물을 준다. 평화에게 길을 내주어라. 그러면 평화가 올 것이다. 이해는 너의 내면에 있으며, 그로부터는 평화가 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5 하느님의 권능에서 평화와 이해가 비롯되며, 그 권능은 하느님의 것이듯 확실하게 너의 것이기도 하다. 네가 하느님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단지, 하느님을 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너를 통해 행하실 엄청난 일을 보면, 네가 그분을 통해 그 일을 행했음을 확신할 것이다. 너무도 강력해서 도저히 네게서 나온 것일 수 없는 결과의 근원을 부정하기란 불가능하다.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남겨두어라. 그러면 너는 권능으로 충만하여 그 무엇도 너의 평화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이해했음을 알아볼 시험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