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관계에는 정도가 없다. 관계는 있거나 없을 뿐이다. 거룩하지 않은 관계는 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고립된 상태지만, 그렇지 않게 보일 뿐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가 하느님과 맺은 관계를 거룩하지 않게 만든다는 미친 아이디어가 가능해 보인 순간, 너희의 모든 관계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그 거룩하지 않은 순간에 시간이 태어났고, 몸이 만들어져서 그 미친 아이디어가 머물 곳을 제공하여 그것에 실재라는 환상을 부여했다. 따라서 그 아이디어는 시간 안에서 잠시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집을 가진 듯이 보였다. 왜냐하면, 과연 무엇이 실재를 거슬러 이 미친 아이디어에게 한 순간 이상 머물 곳을 제공할 수 있었겠는가?
53 우상은 사라질 수밖에 없고, 가고 난 뒤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우상이 권능을 휘두르는 듯한 거룩하지 않은 순간은 눈송이처럼 덧없을 뿐, 눈송이의 아름다움은 없다. 이것이 네가 거룩한 순간의 영원한 축복과 무한한 혜택 대신에 원하는 대체품인가? 너는 너에게 평화와 이해를 제공하는 거룩한 순간보다는, 너무도 강력해 보이고 너무도 지독하게 오해받으며 거짓된 매력에 너무도 큰 투자를 한 거룩하지 않은 관계의 악의를 선호하는가? 그러니 몸을 내려놓고 조용히 초월하여,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맞아들이기 위해 일어나라. 성령의 거룩한 사원에서, 네가 깨어나 떠나온 곳을 돌아보지 말라. 환상을 초월하여 저 뒤에 남기고 떠난 마음을, 그 어떤 환상도 끌어당길 수 없기 때문이다.
54 거룩한 관계는 하느님의 아들이 실제로 아버지와 맺고 있는 진정한 관계를 반영한다. 성령은 그 관계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그 안에서 안식한다. 진리는 그 관계의 굳건한 토대를 영원히 떠받치고, 사랑은 사랑 자신의 것에게 베푸는 온유한 미소와 부드러운 축복으로 그 관계를 비춰준다. 여기서, 거룩하지 않은 순간은 안전하게 집에 돌아가는 거룩한 순간과 기쁘게 교환된다. 여기에, 진정한 관계로 가는 길이 부드럽게 열려있다. 너희는 그 길을 따라 함께 걸으면서, 몸을 기꺼이 뒤로하고 영원한 팔 안에서 안식한다. 너희를 받아들여 평화를 영원히 주려고, 사랑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다.
55 몸은 에고의 우상이며, 죄에 대한 믿음이 육화되어 밖으로 투사된 것이다. 이것은 마음을 둘러싼 살로 된 벽처럼 보이는 것을 만들어내서, 시공간상의 작디작은 지점에 마음을 죄수로 가둔다. 이제 마음에게는 죽음의 볼모가 되어 탄식하고 비통해하다가 자신의 주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죽을 단 한 순간만 주어진다. 그리고 이런 거룩하지 않은 순간이 삶처럼 보인다. 그것은 절망의 한 순간, 망각 위에 불확실하게 떠 있는 물 한 방울 없는 작은 모래섬이다. 이곳에, 하느님의 아들이 잠시 들러 죽음의 우상들에게 헌신한 뒤 죽는다. 이곳에서, 그는 살아있다기보다는 죽어있다. 하지만 또한 이곳이야말로, 그가 우상 숭배와 사랑 사이에서 다시 선택하는 곳이다.
56 여기서, 하느님의 아들은 몸에게 찬사를 바치며 그 순간을 보낼지, 아니면 자신에게 몸으로부터의 해방이 주어지도록 허용할지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전에 선택한 거룩하지 않은 순간을 대체하라고 주어진 거룩한 순간을 받아들일 수 있다. 여기서, 그는 관계가 자신의 파멸이 아닌 구원임을 배울 수 있다. 너희는 이것을 배우면서 여전히 두려워할 수 있지만, 두려움에 얼어붙을 정도는 아니다. 이제 거룩한 순간은 그것과 대응관계에 있는 듯한 거룩하지 않은 순간보다 너에게 더 큰 가치를 갖는다. 그리고 너는, 네가 실제로 그중 단 하나만 원한다는 것을 배웠다.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다. 혼란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결코 낙심할 때는 아니다.
57 너희는 하나의 진정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관계는 의미가 있다. 동등한 것들이 서로를 닮았듯이, 그 관계는 너희와 하느님의 진정한 관계를 닮았다. 우상 숭배는 지나갔으며, 의미가 없다. 어쩌면 너희는 여전히 서로를 조금 두려워할 것이다. 어쩌면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의 그림자가 너희에게 여전히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 너머에 있는 하나의 진정한 관계가 주어진 자들에게 도대체 그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이 과연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지 못하도록 오랫동안 저지당할 수 있겠는가? 그들이 과연 그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한 기억을 자신에게 주기를 오랫동안 보류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자신의 의식에서 오랫동안 밀쳐둘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