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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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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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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22 성령은 너에게 거룩함에 대한 믿음과 거룩함을 쉽게 볼 수 있는 비전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너는 그 선물이 속한 제단을 열어 비워두지 않았다. 그 선물이 있어야 할 곳에 너는 다른 것에게 바치는 우상을 올려놓았다.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지 너에게 말해주는 듯한 이 다른 뜻에게, 너는 실재성을 부여했다. 따라서 너에게 다르게 보여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너에게 단지 진리를 위한 자리를 만들라고 청할 뿐이다. 나는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만들거나 행하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에게 단지 그것이 들어오도록 허용하라고 청할 뿐이다. 단지 저절로 일어날 것을 방해하기를 멈추고, 네가 저버렸다고 생각한 것의 현존을 그저 다시 인식하라고 청할 뿐이다.

23 단 한 순간만, 너 자신의 제단에 올려놓은 것을 치우겠다는 용의를 내라. 그러면 거기에 정말로 있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없다. 거룩한 순간은 창조의 순간이 아닌 인식의 순간이다. 인식은 판단의 중지와 비전으로부터 온다. 그제야 비로소 너는 내면으로 눈을 돌려 시야에 단순히 나타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아무런 추리나 판단 없이 볼 수 있다. 무효화는 너의 과제가 아니지만, 그것을 환영할지 말지는 정녕 너에게 달려있다. 믿음과 열망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24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소망적 사고란 에고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루어 그대로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에고의 목표를 실재적이고도 가능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원하기의 힘, 즉 믿음의 힘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은 실재를 광기라는 목표에 맞추기 위한 조정으로 이어진다. 죄라는 목표는 그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두려운 세상에 대한 지각을 유발한다. 너는 네가 열망하는 것을 반드시 볼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의 실재성이 거짓이라면, 너는 그것을 실재화하려고 네가 들여온 온갖 조정을 알아차리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떠받칠 것이다.

25 비전을 부정하면,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혼동이 불가피해진다. 이제는 결과의 원인을 가리고 결과를 원인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렇게 결과의 외견상 독립성으로 인해 결과는 자력으로 존재하는 듯이 여겨지고, 결과를 만든 자가 그 결과가 야기한다고 생각하는 사건과 감정의 원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오래전에, 너의 창조주를 창조하고 그분의 아들이 아닌 아버지가 되려는 너의 열망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것도 똑같은 열망이다. 아들은 결과인데, 그는 자신의 원인을 부정하려 한다. 따라서 그가 원인이 되어서 진짜 결과를 낳는 듯이 보인다. 원인 없이 결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둘을 혼동하는 것은 단지 그 둘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26 네가 너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만큼이나, 네가 보는 세상을 너 자신이 만들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은 똑같은 잘못이다. 너의 창조주가 창조하지 않으신 것은 그 무엇도 너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만약 네가 만든 것이 네가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너는 너의 창조주를 부정하고 네가 너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네가 만든 세상이 너를 그것이 뜻하는 것으로 만들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실로 아들과 아버지를, 결과와 근원을 혼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7 아들의 창조물들은 그의 아버지의 창조물들을 닮았다. 하지만 아들은 그들을 창조할 때 자신이 자신의 근원과 독립되어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아들이 자신의 근원과 연합되어 있는 상태야말로 그의 창조하기의 근원이다. 그는 이것과 떨어져서는 창조할 권능이 전혀 없으며, 그가 만드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것은 창조물의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하고, 전적으로 그것을 만드는 자의 광기에 의존하며, 그 광기를 정당화할 수도 없다. 네 형제는 그가 너와 함께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창조를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만든 세상이 너와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이 세상을 만들었음을 부정한다.

28 하지만 진실은, 너희 둘 다 자애로운 아버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너희 둘을 함께, 하나로서 창조하셨다. 이와 다르게 "증명하는" 것을 본다면, 너는 너의 실재 전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너희 사이에 끼어들어 서로를 떼어놓고, 너희를 아버지와 분리하는 듯한 모든 것을, 네가 은밀히 만들었음을 인정하라. 그러면 해방의 순간은 이미 네게 온 것이다. 그 모든 것의 근원이 드러났으므로, 그 모든 것의 결과가 사라진다. 네가 죄수로 갇혀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독립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를 창조했고 네가 결코 떠난 적이 없는 근원으로부터 네가 독립되어 있다는 것과 똑같은 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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