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네가 아직 답하지 않고 남겨둔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을 잘 생각해 보라. 그리고 너의 이성으로 하여금 그것은 반드시 답해져야 하고, 다른 세 가지 질문에서 정녕 답해졌음을 말해주게 하라. 그러면 네가 죄의 결과를 어떤 형식으로 보든, 단지 다음과 같이 자문하기만 하면 됨을 분명히 깨달을 것이다:
79 이것이 내가 보고자 하는 것인가? 나는 이것을 원하는가?
80 이것이 바로 너의 유일한 결정이다. 이것은 또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결정하는 조건이다. 이 질문은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와는 무관하지만, 그 일이 왜 일어나는지와는 무관하지 않다. 너에게는 일어나는 일에 대한 통제권이 있다. 그리고 네가 적이 없는 세상, 너 자신이 무력하지 않은 세상을 보기로 선택한다면, 그 세상을 볼 수단이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81 마지막 질문이 왜 그리 중요한가? 이성은 너에게 그 이유를 말해줄 것이다. 시간이라는 측면만 제외하면, 그 질문은 다른 세 질문과 똑같다. 나머지 세 질문은 결정했다가 거둬들였다가 다시 결정할 수 있는 결정들이다. 그러나 진리는 불변이며, 이랬다저랬다 할 수 없는 상태를 함축한다. 너는 너를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네가 지배하는 세상을 열망할 수 있으며, 그러한 너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너는 무력함을 권능과 맞바꾸겠다고 열망할 수 있으며, 죄의 작은 반짝거림이 너를 유혹할 때 이와 같은 열망을 잃을 수도 있다. 또한 너는 죄 없는 세상을 보기를 원할 수 있으며, 몸의 눈을 사용하고 네가 열망하는 것을 바꾸도록 "적"으로 하여금 너를 유혹하게 할 수도 있다.
82 이 모든 질문은 내용 면에서 정녕 똑같다. 각각의 질문은 너에게 죄의 세상을 성령이 보는 세상과 맞바꿀 용의가 있는지 묻는다. 성령이 보는 세상이야말로 죄의 세상이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죄를 바라보는 자들은 실재세상에 대한 부정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은 실재세상을 보겠다는 너의 열망에 불변성에 대한 소망을 덧붙여서, 그 열망이 너의 유일한 열망이 되게 한다. 마지막 질문에 "예"라고 대답함으로써, 너는 나머지 모든 질문에 이미 내렸던 결정에 진실성을 더하는 것이다. 그제야 너는 비로소 너의 마음을 다시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포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이 선택권을 원하지 않을 때, 나머지 질문들도 정녕 온전히 답해진 것이다.
83 너는 왜 네가 나머지 질문에 이미 답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답했다면, 그 질문들을 그렇게 자주 제기하는 것이 과연 필요하겠는가? 마지막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그에 대한 답은 "예"기도 하고 "아니오"기도 하다. 그때 너는 "예"는 "아니오가 아님"을 의미할 수밖에 없음을 지각하지 않은 채 "예"라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자신의 행복을 해치는 결정을 내리지 않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면 과연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가 만약 자신의 행복은 늘 변하는 것이고, 지금은 이것이었다가 다음엔 저것이었다가 결국에는 어디에도 붙어있지 못하고 교묘히 빠져나가는 그림자라고 본다면, 정녕 자신의 행복을 해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84 교묘히 빠져나가는 행복, 혹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행복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환상이다. 행복은 분명 변함없는 것이다. 행복은 변하는 것에 대한 소망을 포기함으로써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변함없는 비전을 통하지 않고서는 지각될 수 없다. 그리고 변함없는 비전은 불변성을 소망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질 수 있다. 하느님 아들의 열망이 가진 권능은 자신을 무력하다고 보는 자가 틀렸다는 증거로 남아있다. 네가 뜻하는 것을 열망하라. 그러면 너는 반드시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실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떤 생각에도 해방하거나 죽일 수 있는 권능이 없지 않다. 그리고 어떤 생각도 생각하는 자의 마음을 떠날 수 없으며,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