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그 누구도 광기를 원하지 않으며, 이것이 광기의 정체임을 본 자라면 그 누구도 자신의 광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광기를 보호하는 것은 바로 광기가 참이라는 믿음이다.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야말로 정신 이상의 기능이다. 정신 이상을 믿기 위해서는 그것을 진리라고 보아야 한다. 정신 이상이 진리라면, 정신 이상의 반대로서 전에 진리였던 것이 이제는 광기가 되어야 한다. 광기를 제정신으로, 환상을 진리로, 공격을 친절로, 증오를 사랑으로, 살인을 축복으로 완전히 뒤집는 이러한 역전이야말로 혼란의 법칙들이 섬기는 목표다. 이러한 수단들로 인해, 하느님의 법칙은 완전히 역전되어 보인다. 여기서 죄의 법칙이 사랑을 포로로 잡아두고, 반면에 죄는 풀어주는 듯이 보인다.
33 그러나 이런 것들은 혼란의 목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엄청난 역전으로 인해 질서의 법칙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란은 무법 상태로서, 그 안에는 어떤 법칙도 없다. 혼란을 믿기 위해서는 혼란의 그럴듯한 법칙들을 실제라고 지각해야 한다. 그 법칙들의 목표인 광기를 제정신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잿빛 입술과 보지 못하는 눈을 가진, 바라보기에도 끔찍한 두려움이 사랑의 왕좌에 등극한다. 그것은 사랑의 죽어가는 정복자, 사랑의 대체품, 구원으로부터의 구원자다. 두려움의 법칙들이야말로 죽음을 얼마나 사랑스러워 보이게 만드는지! 사랑의 왕좌에 앉은 영웅에게 감사하라! 그는 두려움과 죽음을 위해 하느님의 아들을 구했다!
34 하지만, 도대체 이러한 법칙들을 어떻게 믿게 되는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이상한 장치가 있다. 그 장치는 낯설지도 않다. 우리는 전에 그 장치가 어떻게 해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는지 여러 번 살펴보았다. 그 장치는 진리 안에서는 기능하지 않지만, 그림자만이 주된 역할을 하는 꿈속에서는 아주 강력해 보인다. 형식의 강조와 내용의 무시가 없다면, 어떤 혼란의 법칙도 믿음을 강요할 수 없다. 그 법칙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참이라고 여기는 자는 그것이 주장하는 내용을 보지 않는다. 그것이 취하는 형식 중에 어떤 것은 의미 있어 보이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35 어떻게 특정 형식의 살인이 죽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연 어떤 형식의 공격이 사랑일 수 있는가? 과연 어떤 형식의 정죄가 축복인가? 그 누가 자신의 구원자를 무력하게 만들면서 구원을 발견하는가? 그에 대한 공격의 형식이 너를 속이도록 허용하지 말라. 너는 그를 해치려고 하면서도 구원될 수는 없다. 그 누가 자기 자신을 공격함으로써 공격으로부터의 안전을 발견할 수 있겠는가? 이런 광기가 무슨 형식을 취하는지가 어떻게 중요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자신이 구하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대상을 정죄함으로써 스스로를 무효화하는 판단이다. 광기가 네 눈에 사랑스러워 보이는 형식을 취하더라도 속지 말라. 너의 파괴에 골몰하는 것은 너의 친구가 아니다.
36 너는 이런 무분별한 법칙들을 믿지도 않고 그에 따라 행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그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네가 그 법칙들이 말하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본다면, 그것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형제들이여, 너희는 정녕 그 법칙들을 믿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내용을 가진 법칙들이 취하는 형식을 너희가 달리 어떻게 지각할 수 있겠는가? 그중 어떤 형식이라도 과연 지지할 수 있는 것인가? 하지만 너희는 그 법칙들을 그것들이 취하는 형식 때문에 믿으며, 그 내용은 알아보지 못한다. 그 내용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해골에 장밋빛 입술을 그리고, 멋진 옷을 입히고, 어루만지고 애지중지한다고 해서 해골을 살려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너는 네가 살아있다는 환상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37 천국 바깥에는 생명이 없다. 생명은 분명 하느님이 생명을 창조하신 바로 그곳에 있을 것이다. 천국과 떨어진 어떤 상태에서도 생명은 환상이다. 그것은 잘해봤자 생명처럼 보이고, 최악의 경우 죽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둘은 모두 생명이 아닌 것에 대한 판단으로서, 부정확하고 의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천국에 없는 생명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천국에 있지 않은 것은 어디에도 없다. 천국 바깥에는 환상들의 갈등만 있다. 그러한 갈등은 무분별하고 불가능하고 모든 이성 너머에 있지만, 천국을 가로막는 영원한 장애물이라고 지각된다. 환상들은 단지 형식들일 뿐이다. 그 내용은 결코 참이 아니다.
38 혼란의 법칙은 모든 환상을 지배한다. 환상의 형식들은 갈등하며, 그럼으로써 어떤 환상에 다른 환상들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것이 가능해 보이게 만든다. 하지만 각 형식은, 다른 형식들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혼란의 법칙이 질서의 법칙이라는 믿음에 의존한다. 각 형식은 혼란의 법칙을 철저히 떠받치며, 그것이 참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공한다. 공격의 형식이 겉보기에 더 부드러워 보인다고 해서 그것의 증언이나 결과가 덜 확실한 것은 아니다. 환상은 그 형식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는 믿음 때문에 두려움을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사랑에 대한 믿음의 결핍은, 그것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상관없이, 혼란을 실재라고 증언한다.
39 죄에 대한 믿음에서는 혼란에 대한 믿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논리적인 귀결, 질서정연한 생각의 타당한 단계로 보이기 때문이다. 혼란에 이르는 단계들은 실로 출발점으로부터 깔끔하게 도출된다. 각 단계는 진리의 역전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각기 다른 형식으로서, 진리에서 멀어져 한층 더 깊은 공포로 이어진다. 한 단계가 다른 단계보다 더 작다고 생각하지 말고, 어느 한 단계에서 돌아오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지도 말라. 각 단계에 천국으로부터의 하강 전체가 놓여있다. 그리고 너의 생각은 그것이 시작된 바로 그곳에서 끝나야 한다.
40 형제들이여, 지옥으로 하강하는 과정에서 단 한 단계도 취하지 말라. 네가 만약 한 단계라도 취한다면, 나머지 단계들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단계들은 반드시 뒤따라올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 공격을 하든, 너는 이미 천국에서 멀어지는 비틀린 계단에 발을 올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이 모든 것을 무효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네가 선택한 것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인지 지옥으로 가는 길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것은 아주 쉽다. 너는 어떻게 느끼는가? 너는 평화를 자각하는가? 네가 어떤 길을 가는지 확신하는가? 천국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가? 그것이 아니라면, 너는 혼자 걷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의 친구에게 너와 함께 걸어가면서 목표점에 대한 확신을 달라고 요청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