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공평하게 취급받으려는 소망은 공격과 결백을 결합하려는 타협 시도다. 전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결합하고, 결코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을 가지고 단일체를 만들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는가? 온유한 길을 걸어라. 그러면 너는 밤중에 그 어떤 악이나 그림자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너의 길에 그 어떤 공포의 상징도 두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네 형제와 너 자신이 벗어날 수 없는 가시관을 짜게 될 것이다. 너는 너 자신만 십자가에 매달 수는 없다. 네가 불공평하게 취급받는다면, 네 형제도 분명 네가 보는 불공평함에 시달릴 것이다. 너는 너 자신만 희생할 수는 없다. 희생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희생이라는 것이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물 전체의 희생을 수반할 것이며,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의 희생과 더불어 아버지의 희생도 수반할 것이다.
2 네가 희생에서 해방될 때, 네 형제의 해방도 드러나서 그의 것으로 보이게 된다. 하지만 너는 네가 겪는 모든 고통을 네 형제가 너를 공격했기 때문에 유죄라는 증거로 본다. 이와 같이 너는 너 자신을, 네 형제가 결백함을 잃었고 너를 바라보기만 해도 자신이 정죄받았음을 깨달을 수 있는 표시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네가 불공평하게 당했던 일은 정당하게도 그에게 일어날 것이다. 네가 지금 시달리는 부당한 복수는 본래 그에게 속한 것이며, 복수의 화살이 그에게 향할 때 네가 자유로워진다. 너 자신을 그가 유죄라는 살아있는 상징으로 만들기를 소망하지 말라. 너는 네가 그를 위해 만든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결백함 안에서는, 너 자신의 결백함을 발견할 것이다.
3 네가 고통받고 박탈당하고 불공평하게 취급받고 있다고, 혹은 무엇이든 필요하다고 동의할 때마다, 너는 단지 네 형제가 하느님의 아들을 공격했다고 고발하는 것이다. 너는 십자가에 못 박힌 너의 그림을 그의 눈앞에 들이밀면서, 그의 죄가 너의 피와 죽음으로 천국에 기록되었음을 보게 한다. 그리고 그의 앞으로 가서 천국 문을 닫아걸고는, 그에게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저주한다. 하지만 그것은 천국이 아닌 지옥에 기록되어 있다. 천국에서 너는 공격 너머에 있으며, 그의 결백을 입증하기 때문이다. 너는 그에게 제공하는 너의 그림을 너 자신에게 보여주면서, 그것을 완전히 믿는다. 성령은 너에게 너를 그린 그림 하나를 제공하여 네 형제에게 주도록 하는데, 그 그림에는 고통과 질책이 전혀 없다. 그의 유죄를 위해 순교당했던 것이 이제 그의 결백에 대한 완벽한 증인이 된다.
4 증인의 힘은 믿음을 초월한다. 그것은 확신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증인을 믿을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자신 너머로 손을 뻗어 자신이 나타내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병들고 고통받는 너는 단지 네 형제가 유죄임을 나타내며, 그가 너에게 준 상처를 잊지 않도록 네가 파견하는 증인이다. 그러면서 너는 그가 결코 그 상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맹세한다. 너는 이렇게 병들고 불쌍한 그림이 그를 처벌하기 위해 쓸모가 있는 경우에만 그 그림을 받아들인다. 병든 자는 모든 이를 무자비하게 대하며, 역병에 걸려 그들을 죽이려 든다. "형제여, 나를 보라. 너의 손에 내가 죽노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죽음도 값싼 대가로 보인다. 병은 네 형제가 유죄라는 증거며, 죽음은 그의 잘못이 분명 죄라고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5 병은 단지 "작은" 죽음, 아직 총체적이지 않은 복수의 한 형식일 뿐이다. 하지만 병은 그것이 나타내는 것을 확고하게 대변한다. 네가 네 형제에게 보낸 음산하고 한 맺힌 그림을, 너는 비탄에 빠져 바라보았다. 그리고 너는 그 그림이 그에게 보여준 모든 것을 믿었다. 그 그림은 네가 지각하고 사랑한, 그의 죄에 대해 증언했기 때문이다. 이제 성령은 그의 손길로 온유해진 손에 너를 그린 다른 그림을 올려놓는다. 그것은 여전히 몸을 그린 그림이다. 너의 진정한 정체는 볼 수도 없고 그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그림은 공격의 목적으로 사용된 적이 없으며, 따라서 전혀 고통받지 않았다. 그것은 네가 결코 상처받을 수 없다는 영원한 진리에 대해 증언하며, 그 자체 너머로 너 자신의 결백과 네 형제의 결백을 가리킨다.
6 네 형제에게 이러한 그림을 보여주어라. 그러면 그는 웃음과 사랑 속에서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고 모든 눈물이 닦였음을 알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보고, 그 그림 너머로 치유된 눈을 돌려 그가 네 안에서 보는 결백을 바라볼 것이다. 여기에 그가 결코 죄를 짓지 않았고, 그의 광기가 그에게 행하라고 명한 것 중에 행해지거나 그 어떤 결과라도 낳은 것은 전혀 없으며, 그가 자신에게 퍼부은 질책 중에 정당한 근거가 있는 것도 전혀 없고, 무자비한 두려움의 독침으로 그를 건드릴 수 있는 그 어떤 공격도 없다는 증거가 있다. 그의 유죄가 아닌 그의 결백에 대해 증언하라. 너의 치유는 그의 위로요 건강이다. 그것은 환상이 참이 아님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7 이 세상의 동기는 생명을 향한 의지가 아닌, 죽음에 대한 소망이다. 이 세상의 유일한 목적은 죄가 실제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어떤 세상적인 생각이나 행위나 감정에도 이것과 다른 동기는 없다. 그것들은 신뢰를 받아서 그것들이 대변하고 나타내는 체계에 확신을 보태기 위해 소환된 증인들이다. 각 증인은 여러 목소리를 갖고서 네 형제와 너 자신에게 다양한 언어로 말한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주는 메시지는 똑같다. 몸을 치장하는 것은 죄를 위한 증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보여주려는 시도다. 몸에 대한 걱정은 너의 생명이 얼마나 연약하고 취약한지, 네가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쉽게 파괴되는지 보여준다. 우울증은 죽음에 대해, 그리고 무엇에든 진정한 관심을 갖는 것의 덧없음에 대해 말해준다. 헛됨의 가장 강력한 증인은 바로 온갖 형식의 병이다. 그것은 나머지 모든 증인들을 떠받치며, 그들이 죄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도록 돕는다.
8 병든 자들이 갖는 부자연스러운 갈망과 이상한 욕구마다 그 이유가 있다. 그렇게 느닷없이 짧게 끝나버릴 삶을 살면서 일시적인 기쁨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지속될 수 있는 그 어떤 쾌락이 있겠는가? 덧없이 스러질 자들이야말로 훔쳐 온 쾌락의 조각조각이 그들의 짧은 삶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지 않겠는가? 그들이 그 혜택을 누리든 말든, 죽음은 그 모든 쾌락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삶을 어떤 식으로 보냈든, 그 끝은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니 속히 지나가는 덧없는 것에서 쾌락을 취하라.
9 이러한 것들은 죄가 아니라, 죄와 죽음은 실제며, 결백과 죄는 무덤이라는 종착점에서 똑같이 끝난다는 이상한 믿음의 증인일 뿐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가능한 곳에서 일시적인 기쁨을 구하고 보잘것없는 쾌락을 소중히 여기는 데 만족할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림에서 몸은 중립적인 것으로, 그리고 그 자체로는 고유한 목표가 없는 것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여기서 몸은 질책의 상징, 그 결과를 뻔히 볼 수 있기에 그 원인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죄책의 표시가 되기 때문이다.
10 너의 기능은, 죄는 어떤 원인도 가질 수 없음을 네 형제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너 자신을 너의 기능이 결코 가능하지 않다는 증거를 그린 그림으로 보는 것은 얼마나 헛된 일인지! 성령의 그림은 몸을 몸이 아닌 다른 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그 그림은 다만 몸에서 모든 고발과 비난의 표시만 제거할 뿐이다. 목적 없이 그려진 몸은 아프지도 건강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몸을 판단할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 몸은 생명이 없지만 죽은 것도 아니다. 몸은 두려움이나 사랑에 대한 일체의 경험과 떨어져 있다. 이제 몸은 아직 그 무엇에 대해서도 증언하지 않고, 몸의 목적은 정해지지 않았으며, 마음은 다시 몸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몸은 정죄받지 않으며, 다만 자신이 받을 기능을 완수할 수 있도록 어떤 목적이 주어지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11 죄라는 목표가 제거된 이 빈 공간 안에서, 천국이 자유로이 기억된다. 여기로 천국의 평화가 들어오고, 여기서 완벽한 치유가 죽음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죽음의 악취를 들이마시는 데 진저리난 자들에게 몸은 생명의 표시, 구원의 약속, 불멸의 숨이 될 수 있다. 몸으로 하여금, 치유를 자신의 목적으로 삼게 하라. 그러면 몸은 받은 메시지를 내보내고, 자신이 대변하는 진리와 가치를 자신의 건강과 사랑스러움을 통해 선포할 것이다. 몸으로 하여금, 영원히 공격받지 않는 끝없는 생명을 나타낼 권능을 받아들이게 하라. 또한 몸으로 하여금, 네 형제에게 "형제여, 나를 보라. 너의 손에 내가 사노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하라.
12 이것을 이루는 간단한 방법은, 과거에서 온 어떤 목적도 몸에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 너는 죄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몸의 목적임을 안다고 확신했다. 이런 목적은 손상된 너의 그림이야말로 몸이 나타내는 것의 영원한 표시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몸에게 다른 관점과 다른 목적을 부여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너는 몸의 목적을 모른다. 너는 단지 너의 기능을 너 자신에게 감추려고 만든 몸에게 목적이라는 환상을 부여했을 뿐이다. 목적이 없는 몸은 성령이 부여한 기능을 감출 수 없다. 그러니 몸의 목적과 너의 기능이 마침내 일치되어 하나로 보이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