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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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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9분

제8장 귀향

1 너는 네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요구함으로써 발전에 방해를 받는다. 이것은 실제로 박탈에 매달리는 방법이다.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알기 위한 수업의 지시 사항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너에게 이 수업이 필요하다는 점은 너의 거부에 함축되어 있다. 앎은 이 수업을 배우기 위한 동기가 아니다. 평화가 그 동기다. 앎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서, 평화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 이유는 단지 갈등하는 자들은 평화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화는 천국의 조건이므로, 앎의 조건이다.

2 네가 앎의 조건들을 충족할 때, 앎은 회복될 것이다. 이것은 하느님이 내거시는 흥정이 아니다. 그분은 전혀 흥정하지 않으신다. 이것은 단지 네가 하느님의 법칙을 그분의 뜻이 아닌 그릇되게 사용한 결과에 불과하다. 앎은 정녕 하느님의 뜻이다. 네가 만약 그분의 뜻에 맞서고 있다면, 어찌 앎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앎이 너에게 무엇을 제공해 주는지 말해주었지만, 너는 분명 이것을 온전히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여긴다면, 에고가 충성을 요구할 때 앎을 그렇게 쉽사리 던져버리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고의 방해는 너의 배움에 지장을 주는 듯이 보이지만, 네가 에고에게 그럴 힘을 부여하지 않는 한 에고는 너를 방해할 힘이 전혀 없다.

3 에고의 음성은 일종의 환청이다. 에고가 "나는 실제가 아니다."라고 말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환청은 실로 실재에 대한 부정확한 지각이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환청을 혼자 쫓아버리라고 요청하지 않는다. 나는 너에게 단지, 환청을 그것이 너에게 초래한 결과라는 면에서 평가하라고 요청할 뿐이다. 네가 평화의 상실을 이유로 환청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너의 마음에서 너를 위해 제거될 것이다. 네가 에고에게 보이는 모든 반응은 전쟁으로의 부름이며, 전쟁은 너에게서 평화를 앗아간다. 하지만 이 전쟁에는 적이 없다. 평화를 확고히 지키기 위해서는 실재를 이런 식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또한 네가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재해석이다.

4 네가 적이라고 지각하는 이들은 네 평화의 일부이거늘, 너는 그들을 공격함으로써 평화를 포기하고 있다. 포기하는 것을 과연 어떻게 소유할 수 있겠는가? 너는 소유하기 위해 공유하지만, 그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평화를 포기할 때, 너는 너 자신을 평화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천국과 너무도 다른 조건이기에, 너는 천국 안에 만연한 상태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네가 과거에 배운 것이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도, 그것이 분명 너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단지 이런 근거만으로도, 그것의 가치를 의문에 붙여야 한다.

5 배움의 목적은 언제나 변화다. 이것을 고려할 때, 너는 너의 배움이 가져다준 변화에 만족하는가? 학습 결과에 대한 불만족은 분명 학습 실패를 나타내는 신호일 것이다. 그것은 네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속죄의 커리큘럼은 네가 스스로 짠 커리큘럼과 정반대이지만, 그 결과도 마찬가지로 정반대다. 만약 네가 짠 커리큘럼의 결과가 너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네가 다른 결과를 원한다면, 커리큘럼의 변화가 명백히 필요하다.

6 가장 먼저 도입되어야 할 변화는 방향의 변화다. 의미 있는 커리큘럼은 일관되지 않을 수 없다. 서로 정반대의 아이디어를 믿는 두 교사가 커리큘럼을 짠다면, 그것은 통합될 수 없다. 그런 두 교사가 동시에 커리큘럼을 진행한다면, 각 교사는 단지 다른 교사를 방해할 뿐이다. 이것은 변화가 아닌 동요로 이어진다. 불안정한 자들에게는 방향이 전혀 없다. 그들이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다른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그 다른 하나는 존재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들의 갈등하는 커리큘럼은 그들에게 모든 방향이 존재한다고 가르치며, 선택을 위한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다.

7 이런 커리큘럼의 총체적인 무의미함을 먼저 충분히 인식해야만, 방향의 진정한 변화가 가능해진다. 모든 것에 대한 의견이 총체적으로 불일치하는 두 교사에게서 동시에 배울 수는 없다. 그들이 공동으로 제공하는 커리큘럼은 불가능한 학습 과제를 제시한다. 그들은 너에게 완전히 다른 방법으로 완전히 다른 것을 가르치는데, 한 가지 결정적인 사실만 제외한다면 그것은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두 교사 모두 너에게 너 자신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 다 너의 실재에 영향을 줄 수는 없지만, 네가 만약 둘 다에게 귀 기울인다면, 너의 실재가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 마음이 분열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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