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희생이라는 아이디어 전체가 단지 네가 만든 것임을 인식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또한 희생이 없는 곳으로부터 너 자신을 지키려 함으로써 안전을 구하지도 말라. 네 형제들과 너의 아버지는 너에게 아주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너는 약간의 안전을 제공한다고 생각하는 몇몇 특별한 관계를 맺기 위해 그들과 흥정을 하려고 한다. 더 이상 너의 생각들과 너에게 주어진 생각을 떼어놓으려고 하지 말라. 그 생각들을 한곳에 가져와 본래 있는 곳에서 지각한다면, 그것들 사이의 선택은 단지 부드럽게 깨어나는 것에 불과하며, 더 이상 잘 필요가 없을 때 눈을 떠 대낮의 햇빛을 보는 것만큼이나 단순하다.
102 크리스마스의 표시는 별, 즉 어둠 속의 빛이다. 그 빛이 너의 바깥이 아닌 내면의 천국에서 빛나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의 때가 왔다는 표시로 받아들여라.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며 온다. 그리스도는 그 누구의 어떤 희생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의 현존 안에서, 희생이라는 아이디어 전체가 모든 의미를 잃는다. 그는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네가 할 일은 단지,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은 하나며, 하느님의 하나인 상태와 맞지 않는 생각은 그곳에서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 살 수 없음을 인식함으로써, 그곳에 이미 있는 그리스도를 초대해 들이는 것뿐이다. 그리스도를 반가이 맞아들이기 위해서는 사랑이 총체적이어야 한다. 거룩함의 현존께서는 사랑을 둘러싸고 있는 거룩함을 창조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두려움도 그리스도의 때에 하느님을 고이 안고 있는 집주인을 건드릴 수 없다. 그 주인은 그가 보호하는 완벽한 순결만큼이나 거룩하며, 그 완벽한 순결의 권능이 그 주인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103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너를 해칠 모든 것을 성령께 드려라. 너 자신이 완전하게 치유되도록 허용하라. 그럼으로써 너는 성령과 더불어 다른 이들을 치유하게 된다. 모든 이를 우리와 더불어 해방함으로써, 우리의 해방을 함께 축하하자. 그 무엇도 뒤에 남기지 말라. 해방은 총체적이기 때문이다. 네가 나와 더불어 해방을 받아들였을 때, 너는 나와 더불어 해방을 주게 될 것이다. 모든 고통과 희생과 왜소함이 우리의 관계에서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우리와 아버지의 관계만큼이나 순결하고 강력하다. 우리에게 가져와진 고통은 우리가 있는 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고통이 없으면 그 어떤 희생도 있을 수 없고, 희생이 없으면 거기엔 분명 사랑이 있다.
104 너는 희생이 곧 사랑이라고 믿고 있지만, 희생은 사랑에서 분리되는 것임을 배워야 한다. 사랑이 평화를 불러오는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희생은 죄의식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평화가 너와 하느님의 관계를 자각하기 위한 조건이듯, 죄의식은 희생의 조건이다. 죄의식을 통해, 너는 너의 아버지와 너의 형제들을 너 자신에게서 배제한다. 평화를 통해, 너는 그들을 다시 초대해 들이며, 그들이 네가 초대한 곳에 있음을 깨닫는다. 너 자신에게서 배제한 것은 두려워 보인다. 네가 그것에게 두려움의 속성을 부여하여 그것이 너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몰아내려 했기 때문이다. 그 누가 자신의 일부를 혐오스럽다고 지각하면서도 자신 안에서 평화롭게 살 수 있겠는가? 또한 그 누가 천국을 몰아내고 천국에게 지옥의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신 안에서 지각하는 천국과 지옥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하면서, 자신이 불완전하고 외롭다고 경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05 몸이 너의 실재라고 지각하는 한, 너는 너 자신을 외롭고 박탈당했다고 지각할 것이다. 그리고 네가 희생의 피해자므로 다른 이들을 희생시킬 정당한 근거가 있다고 지각할 것이다. 천국과 천국의 창조주를 밀쳐내고도 희생과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으며, 희생과 상실감에 시달리면서도 자기 자신을 회복하려고 시도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네가 그런 시도를 하는 이유는 박탈이 실제라고 믿기 때문이거늘, 네가 어찌 이것을 스스로 이룰 수 있겠는가? 박탈은 공격에 정당한 근거가 있다는 믿음이기에, 공격을 낳는다. 박탈을 계속 간직하려 하는 한, 공격은 구원이 되고 희생은 사랑이 된다.
106 그러니 너는 사랑을 구하는 그 모든 추구 속에서 희생을 구하고 희생을 발견한다. 하지만 사랑은 발견하지 못한다. 사랑의 정체를 부정하면서 사랑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랑의 의미는 너 자신 밖으로 몰아낸 것에 놓여있으며, 사랑은 너와 떨어져서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네가 간직하고 싶어 한 것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반면에, 네가 멀리 떨어트려 놓으려 한 모든 것은 우주의 모든 의미를 담고 있으며, 자신의 의미 안에 온 우주를 담고 있다. 우주가 네 안에서 결합되어 있지 않는 한, 우주는 하느님과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 없이 존재하는 것은 곧 의미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107 거룩한 순간에는 사랑의 조건이 충족된다. 그때 마음들은 몸의 간섭 없이 결합하며, 소통이 있는 곳에는 평화가 있기 때문이다. 네가 몸을 소통의 필수적인 수단으로 보지 않는다면, 몸이 파괴되더라도 소통은 단절되지 않는다. 이것을 가르침으로써 사랑의 조건을 재확립하려고 평화의 왕자가 태어났다. 그리고 네가 이 레슨을 이해한다면, 몸을 희생하는 것은 곧 무를 희생하는 것이며 마음의 것인 소통은 희생될 수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렇다면 희생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108 희생은 어느 곳에도 없고, 사랑은 모든 곳에 있다. 나는 이 레슨을 나의 모든 형제들에게 가르치려고 태어났으며, 지금도 여전히 가르치고자 한다. 소통은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리고 소통이 재확립하는 평화 속에서, 사랑은 저절로 온다. 어떤 절망도 크리스마스의 기쁨에 어둠을 드리우게 하지 말라. 기쁨이 없다면 그리스도의 때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 어떤 희생도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우리 함께 평화를 축하하자. 그럼으로써 너는 내가 너에게 주는 사랑을 나에게 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것도 박탈당하지 않았음을 지각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 때의 메시지다. 나는 너에게 이 메시지를 줌으로써 너로 하여금 형제들에게 전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나에게 그 메시지를 주신 아버지께 돌려드릴 수 있게 한다. 그리스도의 때에, 소통이 회복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당신의 아들이 창조된 것을 우리와 더불어 축하하신다.
109 하느님을 받아들여 그분이 계시고자 하는 곳에 머물러 사시게 하는 거룩한 집주인에게, 하느님이 감사하신다. 네가 하느님을 맞아들임으로써, 하느님이 너를 당신 안으로 맞아들이신다. 네가 하느님을 맞아들일 때, 네 안에 담긴 것이 하느님께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우리 자신 안으로 맞아들일 때 우리는 다만 하느님의 온전성을 축하할 뿐이다.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분과 하나다. 그들은 그들을 창조하신 분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들어오시게 함으로써 그분에 대한 기억이 함께 들어오며, 그분과 더불어 그들은 늘 가졌고 늘 갖기를 원하는 유일한 관계를 기억하게 된다.
110 지금은 그리스도의 때로부터 새해가 탄생하게 될 주말이다. 너는 네가 성취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행할 것이다. 나는 이를 완벽하게 믿는다.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파괴하지 않고 완성할 것이다. 다음의 내용을 말하고 이해하라:
111 나 자신의 일부로, 당신을 성령께 드립니다.
나 자신을 가두기 위해 당신을 이용하려 하지 않는 한,
당신은 해방될 것임을 나는 압니다.
내 자유의 이름으로, 당신의 해방을 뜻합니다.
나는 우리가 함께 해방될 것임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112 그렇게 새해가 기쁨과 자유 속에 시작될 것이다. 할 일은 많고, 우리는 오래 지체했다. 이 해가 태어날 때 거룩한 순간을 받아들이고, 오랫동안 이행하지 않고 남겨둔 대대적인 깨어남에서 네가 맡은 역할을 받아들여라. 올해를 온통 똑같게 만듦으로써 올해를 다른 해로 만들어라. 그리고 너의 모든 관계가 너를 위해 거룩하게 만들어지도록 허용하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뜻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