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네가 시간 안에서 가진 권능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완벽한 연합을 미룰 힘이 있다. 이 세상에서는 죄의식의 매력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도 절기도 영원 안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이곳에서는 그 둘을 전부 사용하는 것이 성령의 기능이다. 성령은 비록 그것들을 에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지만 말이다. 지금은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을 축하하는 절기지만, 너는 어떻게 축하해야 하는지 모른다. 성령으로 하여금 너에게 그것을 가르치게 하고, 나로 하여금 성령을 통해 너의 탄생을 축하하게 하라. 내가 너에게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은 내가 너에게 준 선물뿐이다. 내가 너의 해방을 뜻하듯이 나를 해방하라. 그리스도의 때를, 우리는 함께 축하한다. 우리가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93 거룩한 순간은 정녕 그리스도의 때다. 그러한 해방의 순간에는 하느님의 아들에게 어떤 죄의식도 덧씌워지지 않으며, 그에 따라 그의 무한한 권능이 그에게 회복되기 때문이다. 내가 오로지 이것만을 너에게 주기로 뜻하거늘, 과연 네가 다른 어떤 선물을 나에게 줄 수 있겠는가? 나를 보는 것은 곧 모든 이 안에서 나를 보고, 그들에게 네가 나에게 주는 선물을 주는 것이다. 하느님처럼 나도 희생을 받을 수 없으며, 네가 너 자신에게 요구하는 모든 희생은 곧 나에게 요구하는 희생이다. 어떤 종류의 희생이든 단지 주기에 가해진 제한일 뿐임을 지금 배워라. 그러한 제한을 통해, 너는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을 받아들이기를 제한했다.
94 우리는 하나기에, 따로따로 줄 수 없다. 네가 기꺼이 우리의 관계를 실제인 것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죄의식은 너에게 아무런 매력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연합 안에서, 너는 우리의 모든 형제들을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로지 연합의 선물을 주려고 태어났다. 그 선물을 나에게 주어라. 그럼으로써 네가 그 선물을 갖게 된다. 그리스도의 때는 모든 이에게 제공된 자유의 선물을 주기로 예정된 때다. 너는 그 선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미 모든 이에게 그 선물을 제공한 것이다. 너의 권능은 이 절기를 거룩하게 만들 힘이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때를 지금으로 만들 힘이 있기 때문이다.
95 이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지각의 전환이 단 한 번만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너는 단 하나의 잘못만 했기 때문이다. 잘못은 많아 보이지만, 모두 똑같다. 에고는 많은 형식을 취하지만, 항상 똑같은 아이디어기 때문이다. 사랑이 아닌 것은 항상 두려움일 뿐, 다른 어떤 것도 아니다. 에고가 땅 밑으로 파고들어 어둠 속에 숨어서, 자신의 정체와 아주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는 그 모든 우회로를 따라 두려움을 뒤쫓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네가 그 모든 형식을 지배하는 원리를 계속 간직하려 하는 한, 각각의 형식을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 그것들을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고, 똑같은 아이디어가 달리 나타난 것으로 여겨 더 이상 원하지 않는 것으로 볼 용의를 낼 때, 그것들은 한꺼번에 사라진다. 네가 에고의 숙주가 되거나 하느님의 인질이 될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바로 그 아이디어다. 너는 너에게 이런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믿는다.
96 네가 다른 대안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희생을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희생은 너의 사고체계에서 너무도 핵심적이어서, 희생과 무관한 구원은 너에게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너는 희생과 사랑을 너무 심하게 혼동해서, 희생 없는 사랑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너는 반드시 희생은 사랑이 아닌 공격임을 보아야 한다. 이 하나의 아이디어만 받아들인다면,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 희생이라는 아이디어가 제거되었을 때, 죄의식은 지속될 수 없다. 네가 확신하듯이 희생이 있다면, 누군가는 대가를 치르고 누군가는 얻어야 한다. 그러면 무엇을 얻을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한 대가가 얼마나 큰지가 결정해야 할 유일한 질문이 된다.
97 에고의 숙주로서 너는 네가 생각하는 모든 죄의식을 주어버리고 평화를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네가 치르지 않는 듯이 보인다. 에고가 대가를 요구한다는 사실은 명백하지만, 결코 너에게 요구하는 듯이 보이지는 않는다. 에고는 스스로 에고의 숙주라고 생각하는 자들만 배반하지만, 에고를 불러들인 너는 그 사실을 인식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고는 결코 네가 그 사실을 지각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인식은 에고를 집 없는 신세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그것을 분명히 인식한다면, 에고가 너의 눈을 피해 자신을 보호하려고 취하는 어떤 형식에도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98 너는 각각의 형식을 볼 때 그것은 단지 그 모든 형식들 뒤에 숨어있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가리기 위한 덮개에 불과함을 인식할 것이다. 그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다: 사랑은 희생을 요구하며, 따라서 사랑을 공격과 두려움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죄의식은 두려움으로 지불해야 하는 사랑의 대가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너에게 얼마나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리셨는지! 그리고 너는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희생을 요구한다고 믿는지! 왜냐하면, 총체적인 사랑은 총체적인 희생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고가 하느님보다는 너에게 적게 요구하는 듯이 보이고, 두 개의 악 중에 그나마 덜한 것으로 판단되어, 하나는 약간만 두려워하면 되고 다른 하나는 파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너는 사랑을 파괴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제 너의 유일한 질문은, "나와 다른 사람 중에 누가 파괴되어야 하는가?"다. 너는 특별한 관계들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한다. 그 관계들에서 너는 부분적으로 파괴자인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파괴되지만, 둘 중 어느 것도 완전히 될 수는 없다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너는 이것이 너를 하느님으로부터 구해준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총체적인 사랑은 너를 완전히 파괴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99 너는 너의 바깥에 있는 모든 이가 너의 희생을 요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로지 너만이, 오로지 너 자신에게만 희생을 요구하고 있음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희생에 대한 요구는 너무도 야만적이고 너무도 무시무시해서, 너는 그 요구를 그것이 있는 곳에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진짜 대가는 너무도 커서, 너는 그것을 직시하는 대신에 하느님을 저버렸다. 하느님이 너에게 총체적인 희생을 요구하신다면, 너는 하느님을 너의 바깥으로 멀리 투사해서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이 되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는 에고의 반역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는, 에고에게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여 너를 하느님으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불러들였다. 그리고 너는 네가 초대한 에고야말로 너를 파괴할 자며, 너에게 총체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자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부분적인 희생도 이 야만적인 손님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에고는 친절을 베푸는 듯이 보이지만, 항상 희생을 완성하려고 친절을 베푸는 침략자기 때문이다.
100 너는 에고의 부분적인 인질이 되는 데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에고는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고, 너에게는 아무것도 남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너는 에고의 부분적인 숙주도 될 수 없다.] 너는 결국 총체적인 자유와 총체적인 속박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것들 외에 다른 대안은 없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반드시 내려야 하는 유일한 결정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많은 타협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결정을 단지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만이 그것을 아주 쉽게 만들어준다! 구원은 하느님에게서 오기에 단순하며, 따라서 아주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구원을 너로부터 투사하여 너 자신의 바깥에서 보려고 하지 말라. 너의 내면에, 질문과 답이 모두 있다. 그것은 바로, 희생에 대한 요구와 하느님의 평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