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왜소함에 만족하지 말고, 왜소함이 무엇이며 네가 왜 결코 왜소함에 만족할 수 없는지 확실히 이해하라. 왜소함은 네가 너 자신에게 바친 공물이다. 위대함 대신에 왜소함을 바친 자도 바로 너며, 왜소함을 받아들인 자도 바로 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왜소하다. 그것은 왜소함이 너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 속에 왜소함을 가지고 만든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그 무엇이 네게 평화를 제공한다고 믿고서 그것을 얻으려고 분투할 때, 너는 너 자신을 하찮게 만들고 영광으로부터 눈을 가리는 것이다. 네가 얻으려고 분투하거나 경계해 지키겠다고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왜소함과 영광뿐이다. 너는 항상 하나를 포기하는 대가로 다른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23 하지만 네가 매번 선택할 때마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네가 선택한 것은 너 자신에 대한 평가라는 사실이다. 왜소함을 선택한다면, 너는 평화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너 자신이 평화를 가질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네가 대체품으로 제공하는 그 무엇도 너를 만족시키기에는 너무 초라한 선물이다. 어떤 왜소함도 너를 결코 만족시킬 수 없음을 받아들이되, 그것도 아주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너는 원하는 만큼 많이 시도할 자유가 있지만, 그 모든 것은 단지 너의 귀향을 미루기 위한 것이다. 너는 오로지 위대함에만 만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대함은 너의 집이다.
24 너에게는 너 자신에게 진 막중한 책임이 하나 있는데, 너는 그것을 늘 기억하도록 배워야 한다. 그 레슨은 처음에는 힘들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 레슨이 진실한 것이고 너의 권능에 대한 찬사임을 깨닫는다면, 너는 그 레슨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왜소함을 추구하고 찾아낸 자여, 다음을 기억하라: 너의 모든 결정은 네가 생각하는 너의 정체에서 비롯되며, 너 자신에게 매기는 가치를 나타낸다. 네가 만약 왜소한 것에 만족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너 자신을 제한하는 것이며, 따라서 너는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너의 기능은 왜소하지 않으며, 너는 너의 기능을 찾아서 완수해야만 왜소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25 너의 기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성령이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너의 기능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위대함께서 성령을 통해 너에게 전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위대함을 얻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너는 그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너의 모든 노력은 왜소함에 반하여 기울여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너의 위대함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경계해 깨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왜소함의 세상에서 너의 위대함을 완벽하게 자각하는 것은 왜소한 자들은 맡을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나는 너의 왜소함이 아닌 너의 위대함에 찬사를 표하면서, 너에게 그 과제를 맡을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그 과제를 너 혼자서 맡으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26 하느님의 귀한 아들을 위해 기울이는 너의 모든 노력을, 하느님의 권능이 지원할 것이다. 네가 만약 왜소한 것들을 찾아다닌다면, 너 자신에게 하느님의 권능을 부정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모든 것보다 적은 것에 만족하기를 뜻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아들 없이는 만족하실 수 없으며,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것보다 적은 것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젠가 너에게, "너는 에고의 인질이 되려는가, 아니면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이 되려는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 네 안의 성령으로 하여금 너에게 이 질문을 하게 하라. 네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정녕 이 질문에 대한 답이며, 그에 따라 슬픔이나 기쁨을 초대한다.
27 하느님은 너를 창조하실 때 당신 자신을 너에게 주시면서, 너를 영원히 당신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으로 확립하셨다. 하느님은 너를 떠나신 적이 없으며, 너도 하느님을 떠난 적이 없다. 하느님의 위대함을 부정하고 그분의 아들을 에고의 인질로 만들려는 너의 모든 시도는 하느님이 당신과 결합해 놓으신 자를 왜소하게 만들 수 없다. 네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천국이나 지옥을 위한 것이며, 그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자각을 가져다줄 것이다. 성령은 왜소함이 전부 제거된 너의 위대함을, 왜소함의 세상이 너에게 제공하는 그 모든 왜소한 선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채로, 너의 마음에 분명하고 안전하게 간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성령이 너를 위해 뜻하는 것에 반대하지 말아야 한다.
28 성령을 통해, 하느님을 위한 결정을 내려라. 자신이 왜소하며, 왜소함에 만족할 수 있다고 믿기로 결정한 자는 바로 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네 안에 놓아두신 권능과 영광은 너처럼 자신을 왜소하다고 지각하고, 왜소함을 부풀려서 그것이 위대함이라도 되는 양 만족할 수 있다고 믿도록 자신을 속인 자들을 위한 것이다. 왜소함을 주지도 말고 받아들이지도 말라.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은 모든 영광을 받아 마땅하다. 너의 왜소함은 너를 속이지만, 너의 위대함은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그분은 네 안에 사시며, 또한 그분 안에서 네가 산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맞아들이는 집의 영원한 주인인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누구에게도 왜소함을 가지고 다가가지 말라.
29 거룩함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축하하는 이 계절(성탄절)에, 너를 위해 거룩함을 선택한 나와 결합하라. 하느님이 몸소 당신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으로 명하신 자에게 위대함에 대한 자각을 회복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함께 맡은 과제다. 하느님의 선물을 주는 것은 너의 모든 왜소함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너를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너를 통해 주시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너로부터 모든 이에게 다가가시고, 모든 이 너머로 당신 아들의 창조물들에게 다가가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를 떠나지는 않으신다. 너의 왜소한 세상 저 너머로, 그러나 여전히 네 안에서, 하느님은 영원히 확장하신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이 확장하신 그 모든 것을 당신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인 너에게 가져다주신다.
30 왜소함을 떠나 헛되이 방랑하지 않는 것이 희생인가? 영광으로 깨어나는 것은 희생이 아니지만, 영광보다 못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희생이다. 너는 평화의 왕자가 될 자격이 있음을 배워라. 그는 네가 맞아들이는 하느님께 경의를 표하여 네 안에 태어났다. 네가 사랑의 의미를 모르는 이유는, 하찮은 선물로 사랑을 쟁취하려 했고, 그럼으로써 사랑의 위대함을 이해하기에는 사랑의 가치를 너무도 하찮게 매겼기 때문이다. 사랑은 왜소하지 않다. 그리고 사랑은 네 안에 머물러 산다. 너는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이기 때문이다. 네 안에 사는 위대함 앞에서, 너 자신에게 내린 빈약한 평가와 네가 준 모든 하찮은 선물이 슬며시 무로 사라져 버린다. 하느님의 거룩한 아이야, 오로지 거룩함만이 너를 만족시키고 너에게 평화를 줄 수 있음을 언제 배우려느냐?
31 나와 마찬가지로 너도 너 자신만을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니다. 이를 기억하라. 네가 나에게 배울 수 있는 이유는, 내가 너를 위해 배웠기 때문이다. 누추한 왜소함은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을 죄의식과 약함에 묶어둔다. 하지만 나는 너에게 단지 네 것만을 가르칠 것이며, 그럼으로써 우리는 함께 그의 내면의 영광에 대한 기쁜 자각으로 왜소함을 대체할 수 있다. 내가 네 안에 태어나는 것은 곧 네가 장엄함으로 깨어나는 것이다. 나를 구유로 맞아들이지 말고, 거룩함께 바치는 제단으로 맞아들여라. 그곳은 거룩함께서 완벽한 평화 속에 머무시는 곳이다. 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너의 내면에 있으며, 너는 아버지께 속하기 때문이다. 왜소함 너머에 영원히 남아있을 너에게, 우리 함께 경의를 표하자.
32 너와 함께 머물기로 결정한 나와 함께 결정하라. 나는 아버지가 뜻하시는 대로 뜻한다. 아버지의 뜻은 한결같으며, 영원히 그 자체와 평화로움을 나는 알기 때문이다. 너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만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배운 모든 것이 곧 네 것임을 기억하면서, 그보다 못한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 나는 아버지가 사랑하시는 것을 아버지처럼 사랑하고, 그것을 그 정체가 아닌 것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 너 또한 그렇게 할 수 없다. 네가 너의 정체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을 때, 너는 더 이상 너 자신에게 줄 선물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그때 너는 너 자신이 완전하고, 아무것도 필요 없으며, 아무것도 너 자신만을 위해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는 이미 받았기에, 기꺼이 줄 것이다.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은 아무것도 찾으려 할 필요가 없다.
33 구원을 기꺼이 하느님의 계획에 맡기고 너 스스로 평화를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구원이 너에게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너의 계획으로 하느님의 계획을 대체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반대로, 나와 더불어 하느님의 계획에 동참하자. 그럼으로써 우리는 속박되어 있고자 하는 자들을 전부 해방하여, 하느님의 아들은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임을 함께 선포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네가 기억하고자 하는 것을 그 누구도 잊어버리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너는 그것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34 모든 이 안에서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기억만을, 그리고 그의 내면에 있는 천국에 대한 기억만을 불러일으켜라. 너는 네 형제가 있도록 도울 바로 그곳에 네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옥과 왜소함을 달라는 그의 요청을 듣지 말고, 천국과 위대함을 달라는 요청만을 들어라. 그의 요청은 곧 너의 요청임을 잊지 말고, 나와 함께 그에게 응답하라. 하느님의 권능은 영원히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 편이다. 그 권능은 오로지 하느님이 머무시는 평화만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거룩한 제단 앞에 왜소함을 놓지 말라. 그 제단은 그곳에 바쳐진 것 덕분에, 별들 위로 올라가 천국에까지 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