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하느님이 뜻하시는 것이 시간이 걸린다고 믿고 싶어 하지 않는 한, 네가 이 수업을 즉시 배울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시간이 걸린다고 믿고 싶어 한다면, 그 이유는 단지 네가 이 수업을 즉시 배우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인식하기를 미루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거룩한 순간은 이 순간이자 모든 순간이다. 네가 거룩한 순간이기를 원하는 그 순간은 존재한다. 네가 거룩한 순간이기를 원하지 않는 순간은 너에게서 사라진다. 거룩한 순간이 언제인지는 네가 결정해야 한다. 그 순간을 미루지 말라. 그 순간은 거룩한 순간을 찾을 수 없는 과거와 미래 너머에서 네가 받아들이기만을 기다리며 아른거리고 있다. 하지만 네가 그 순간을 원하지 않는 한, 그것을 기쁘게 자각할 수 없다. 그 순간에는 왜소함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36 그러므로 너의 연습은 모든 왜소함을 놓아버리려는 너의 용의에 달려있을 수밖에 없다. 위대함이 너에게 분명해질 그 순간은 단지 너의 열망만큼 떨어져 있을 것이다. 네가 위대함을 열망하지 않고 그 대신 왜소함을 소중히 여기는 한, 그 순간은 그 정도만큼 멀어진다. 그리고 위대함을 원하는 바로 그 정도만큼, 너는 그 순간을 더 가까이 당겨올 것이다. 구원을 너의 방식대로 찾아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 자신의 구원을 위해 만든 모든 계획을 맡기고, 그 대신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라. 그분의 계획은 너를 만족시킬 것이며, 다른 어떤 계획도 너에게 평화를 안겨줄 수 없다. 평화는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지 다른 누구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7 하느님 앞에서 겸허하되, 하느님 안에서는 위대하라. 하느님의 계획 앞에서 에고의 어떤 계획도 가치 있게 여기지 말라. 하느님의 계획이 아닌 어떤 계획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든, 너는 그 안에서 네가 맡은 역할을 비워두는 것이다. 그것은 네가 나와 결합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역할이다. 나는 너에게, 하느님이 세상을 왜소함에서 해방하려고 주신 계획에서 너의 거룩한 역할을 이행할 것을 요청한다. 하느님은 당신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이 완벽한 자유 속에 머물러 살기를 바라신다. 네가 하느님과 무관한 구원 계획에 충성할 때마다, 너를 위한 하느님의 뜻이 너의 마음에서 점점 더 가치를 잃게 된다. 하지만 너의 마음이야말로 정녕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이다.
38 아버지가 당신 자신을 두신 거룩한 제단이 얼마나 완벽하고 흠 없는지 배우려는가? 하느님의 계획이 아닌 모든 계획을 기꺼이 포기하는 거룩한 순간에, 너는 이를 인식할 것이다. 네가 평화의 조건을 기꺼이 충족하려 했기에, 거기에 평화가 아주 분명하게 놓여있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원하는 어떤 시간에도, 어떤 장소에서도 거룩한 순간을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를 연습할 때는, 왜소함 속에서 위대함을 찾으려고 받아들였던 모든 계획을 버리려고 노력하라. 그곳에는 위대함이 없다. 거룩한 순간을 사용하여, 너 혼자서는 위대함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며, 단지 너 자신을 속일 수 있을 뿐임을 인식하라.
39 나는 네가 나에게 바라는 것처럼 분명하게 거룩한 순간 안에 서있다. 그리고 네가 나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정도만큼, 거룩한 순간이 네 것이 될 때가 가까워진다. 지금 당장 거룩한 순간을 네 것으로 만들라고 청한다.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의 마음이 왜소함에서 해방되는 것은 시간이 아닌 용의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 수업이 단순한 이유는 진리가 단순하기 때문이다. 복잡함은 에고의 것으로서, 명백한 것을 가리려는 에고의 시도에 불과하다.
40 너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지금 당장부터 영원에 이르기까지, 거룩한 순간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다. 그 이유의 단순성을 가리지 말라. 만약 가린다면, 그것은 단지 단순함을 인식함으로써 복잡함을 보내버리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위에서 말한 그 단순한 이유를 단순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거룩한 순간은 네가 완벽한 소통을 받고 주는 시간이다. 그리고 이것은 거룩한 순간이, 너의 마음이 받기와 주기에 모두 열려있는 시간임을 의미한다. 거룩한 순간은 모든 마음이 정녕 소통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따라서 거룩한 순간은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저 받아들이려 한다.
41 네가 만약 사적인 생각을 소유하고 계속 간직하고자 한다면,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사적인 생각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거룩한 순간을 거룩한 순간으로 만들어 주는 완벽한 소통을 부정하는 것뿐이다. 너는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 생각을 품고 있는 것이 가능하며, 구원은 너의 생각을 너 혼자만 알고 숨겨두는 데 놓여있다고 믿는다. 너는 오로지 너 자신에게만 알려진 사적인 생각 속에서, 혼자 가지려는 것은 간직하고 공유하려는 것은 공유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네가 왜 주위 사람들, 그리고 너희 모두를 감싸고 계신 하느님과 완전하게 소통하지 않는지 의아해한다.
42 네가 감춰두려는 생각 하나하나가 소통을 끊어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그러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소통의 단절이 너에게 가치 있는 한, 완벽한 소통을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너 자신에게 정직하게, "나는 완벽한 소통을 하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나는 완벽한 소통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영원히 보내버릴 전적인 용의가 있는가?"라고 물어보라. 이에 대한 답이 "아니오."라면, 성령이 너에게 완벽한 소통을 주려고 준비되어 있을지라도 그것이 네 것이 되기는 힘들다. 그럴 때 너는 성령과 그것을 공유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완벽한 소통은 그것을 반대하기로 결정한 마음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거룩한 순간은 모든 생각을 지배하는 유일한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동등한 용의로써 주어지고 받아지기 때문이다.
43 거룩한 순간을 위한 필요조건은, 너에게 순수하지 않은 생각이 전혀 없어야 한다고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네가 계속 간직하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순결은 네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네가 갖고자 하는 순간 주어지는 것이다. 속죄에 대한 필요가 없다면, 그것은 속죄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너 자신에게 완벽한 소통을 감추려고 하는 한, 너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네가 감추려고 하는 것은 정녕 너 자신에게 감춰지기 때문이다.
44 그러니 연습할 때 오로지 속임수를 경계해 깨어있으려 노력하고, 너 혼자만 알고 숨겨두려는 생각들을 보호하려 하지 말라. 성령의 순수가 그 생각들을 밝혀 물리치게 하고, 성령이 제공하는 순수를 언제라도 온전히 자각할 준비를 하라. 이런 식으로 성령은 네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도록 도울 것이다: 너는 정녕 하느님을 맞아들이는 집주인이며, 그 누구의 인질도 그 어떤 것의 인질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