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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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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1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0분

제21장 내면의 그림

Ⅲ. 보는 것에 대한 책임

13 네가 이 수업을 배우기 위해 얼마나 적은 것이 요구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번 말해주었다. 너의 관계 전체가 기쁨으로 변형되기 위해 필요한 것도 이와 같은 작은 용의뿐이다. 그것은 네가 성령께 드려서 그 대신에 모든 것을 받게 되는 작은 선물, 구원이 의지하는 아주 작은 것, 십자가형을 부활로 바꾸는 마음의 작디작은 변화다. 그리고 그것은 참이기에 아주 단순하며, 따라서 네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을 거절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모호하지 않다. 네가 지금 그것에 반하여 선택한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 모호해서가 아니라 이 작은 비용이 평화를 위해 지불하기에는 너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4 다음은 비전과 행복,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죄로부터의 완전한 탈출 등 이 모든 것이 너에게 주어지기 위해 네가 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것이다. 단지 다음과 같이 말하되, 아무런 조건 없이 진심으로 말하라. 바로 여기에 구원의 권능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15 나는 내가 보는 것에 책임이 있다.

나는 내가 경험하는 감정을 선택했고,

내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도 결정했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듯한 모든 것은 내가 요청한 것이며,

나는 내가 요청한 대로 받았다.

16 네가 너에게 행해지는 일 앞에서 무력하다고, 더 이상 너 자신을 속이지 말라. 다만 네가 잘못 생각했음을 인정하라. 그러면 네가 범한 실수의 모든 결과가 사라질 것이다.

17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그저 끌려다니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에게 다가오는 일들이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의 결정하는 힘이야말로 그가 우연히, 혹은 우발적으로 있는 듯한 모든 상황의 결정자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의 우주 안에서는 우발적인 일도 우연한 일도 가능하지 않으며, 그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네가 만약 고통받는다면, 죄가 너의 목표라고 결정한 것이다. 네가 만약 행복하다면, 너를 대신해 하느님을 위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성령께 결정하는 권능을 드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성령께 드리는 작은 선물이다. 그리고 이것조차도 성령은 너에게 주어서 너 자신에게 주게 하였다. 이 선물로 인해 너에게 너의 구원자를 해방할 권능이 주어져서, 너의 구원자가 너에게 구원을 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18 그렇다면 이 작은 선물을 아까워하지 말라. 그것을 드리지 않으면, 너는 세상을 지금 네가 보는 대로 간직하게 된다. 그것을 드리면, 그것과 함께 네가 보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 그렇게 작은 것에 대한 대가로 그렇게 많은 것이 주어진 적은 결코 없었다. 거룩한 순간에, 바로 이런 교환이 이루어지고 유지된다. 여기서, 네가 원하지 않는 세상이 네가 원하는 세상으로 보내진다. 그리고 여기서, 네가 원하는 세상이 너에게 주어진다. 왜냐하면, 네가 그 세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네가 무언가를 원하는 마음이 어떤 권능을 가졌는지 인식해야 한다. 너는 그것의 약함이 아닌 강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너는 다음을 지각해야 한다: 어떤 세상을 만들 만큼 충분히 강력한 것은 그 세상을 보내버릴 수도 있고, 만약 스스로 틀렸음을 볼 용의가 있다면, 교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19 네가 보는 세상은 단지 네가 옳았다고 증언하는 근거 없는 증인에 불과하다. 이 증인은 제정신이 아니다. 너는 세상에게 증언할 말을 훈련시켰고, 세상이 그 증언을 너에게 되가져 오자 귀담아듣고는 세상이 본 것이 참이라고 너 자신을 확신시켰다. 네가 너 자신에게 그렇게 했다. 단지 이것만 보라. 그러면 너는 또한 너의 "봄"이 근거하는 논리가 얼마나 순환적인지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은 너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네가 너 자신과 네 형제에게 준 선물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네 형제에게서 가져와 진리로 대체되게 하겠다는 용의를 내라. 네가 그러한 변화를 네 형제 안에서 볼 때, 너 자신 안에서도 보게 될 것이다.

20 아마도 너는 이 작은 선물을 주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정녕 무엇인지 더 자세히 살펴보라. 그리고 그 선물 안에서 분리 전체가 구원으로 아주 간단히 교환되는 것을 보라. 에고라고 하는 것은 그저 하느님 아들의 뜻이 없이, 따라서 그의 뜻과 분리될 수 없는 그의 창조주의 뜻이 없이, 그에게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다는 아이디어에 불과하다.

21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의 뜻을 대체한 것이다. 그것은 곧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한 미친 반란이다. 이것이 바로 그가 하느님을 무력하게 만들어서 그 권능을 스스로 취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을 하느님이 그에게 뜻하신 것이 없는 상태로 만들 권능을 가졌다는 선언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너의 제단에 소중히 모셔놓고 숭배하는 미친 아이디어다. 그리고 이것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든 너의 믿음을 공격하는 듯이 보인다. 너의 믿음은 바로 여기에 투자되었기 때문이다. 너에게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에 대한 너의 믿음과 신뢰는 참으로 강력하기 때문이다.

22 성령은 너에게 거룩함에 대한 믿음과 거룩함을 쉽게 볼 수 있는 비전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너는 그 선물이 속한 제단을 열어 비워두지 않았다. 그 선물이 있어야 할 곳에 너는 다른 것에게 바치는 우상을 올려놓았다. 무엇이 일어나야 하는지 너에게 말해주는 듯한 이 다른 뜻에게, 너는 실재성을 부여했다. 따라서 너에게 다르게 보여주는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나는 너에게 단지 진리를 위한 자리를 만들라고 청할 뿐이다. 나는 네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만들거나 행하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너에게 단지 그것이 들어오도록 허용하라고 청할 뿐이다. 단지 저절로 일어날 것을 방해하기를 멈추고, 네가 저버렸다고 생각한 것의 현존을 그저 다시 인식하라고 청할 뿐이다.

23 단 한 순간만, 너 자신의 제단에 올려놓은 것을 치우겠다는 용의를 내라. 그러면 거기에 정말로 있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없다. 거룩한 순간은 창조의 순간이 아닌 인식의 순간이다. 인식은 판단의 중지와 비전으로부터 온다. 그제야 비로소 너는 내면으로 눈을 돌려 시야에 단순히 나타나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을 아무런 추리나 판단 없이 볼 수 있다. 무효화는 너의 과제가 아니지만, 그것을 환영할지 말지는 정녕 너에게 달려있다. 믿음과 열망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다.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24 우리가 이미 말했듯이, 소망적 사고란 에고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루어 그대로 만들어내기 위한 방법이다. 에고의 목표를 실재적이고도 가능한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기 위한 원하기의 힘, 즉 믿음의 힘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은 실재를 광기라는 목표에 맞추기 위한 조정으로 이어진다. 죄라는 목표는 그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두려운 세상에 대한 지각을 유발한다. 너는 네가 열망하는 것을 반드시 볼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의 실재성이 거짓이라면, 너는 그것을 실재화하려고 네가 들여온 온갖 조정을 알아차리지 않음으로써 그것을 떠받칠 것이다.

25 비전을 부정하면, 원인과 결과에 대한 혼동이 불가피해진다. 이제는 결과의 원인을 가리고 결과를 원인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 된다. 이렇게 결과의 외견상 독립성으로 인해 결과는 자력으로 존재하는 듯이 여겨지고, 결과를 만든 자가 그 결과가 야기한다고 생각하는 사건과 감정의 원인 노릇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오래전에, 너의 창조주를 창조하고 그분의 아들이 아닌 아버지가 되려는 너의 열망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것도 똑같은 열망이다. 아들은 결과인데, 그는 자신의 원인을 부정하려 한다. 따라서 그가 원인이 되어서 진짜 결과를 낳는 듯이 보인다. 원인 없이 결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 둘을 혼동하는 것은 단지 그 둘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26 네가 너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는 것만큼이나, 네가 보는 세상을 너 자신이 만들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것들은 똑같은 잘못이다. 너의 창조주가 창조하지 않으신 것은 그 무엇도 너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다. 만약 네가 만든 것이 네가 무엇을 보고 느끼는지 말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면, 너는 너의 창조주를 부정하고 네가 너 자신을 만들었다고 믿는 것이다. 만약 네가 만든 세상이 너를 그것이 뜻하는 것으로 만들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너는 실로 아들과 아버지를, 결과와 근원을 혼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7 아들의 창조물들은 그의 아버지의 창조물들을 닮았다. 하지만 아들은 그들을 창조할 때 자신이 자신의 근원과 독립되어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아들이 자신의 근원과 연합되어 있는 상태야말로 그의 창조하기의 근원이다. 그는 이것과 떨어져서는 창조할 권능이 전혀 없으며, 그가 만드는 것도 의미가 없다. 그것은 창조물의 그 무엇도 바꾸지 못하고, 전적으로 그것을 만드는 자의 광기에 의존하며, 그 광기를 정당화할 수도 없다. 네 형제는 그가 너와 함께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창조를 부정한다. 그리고 그는 그가 만든 세상이 너와 그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으로 그는 자신이 세상을 만들었음을 부정한다.

28 하지만 진실은, 너희 둘 다 자애로운 아버지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너희 둘을 함께, 하나로서 창조하셨다. 이와 다르게 "증명하는" 것을 본다면, 너는 너의 실재 전부를 부정하는 것이다. 너희 사이에 끼어들어 서로를 떼어놓고, 너희를 아버지와 분리하는 듯한 모든 것을, 네가 은밀히 만들었음을 인정하라. 그러면 해방의 순간은 이미 네게 온 것이다. 그 모든 것의 근원이 드러났으므로, 그 모든 것의 결과가 사라진다. 네가 죄수로 갇혀있던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근원으로부터 독립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를 창조했고 네가 결코 떠난 적이 없는 근원으로부터 네가 독립되어 있다는 것과 똑같은 망상이다.

제21장 내면의 그림 - Ⅱ. 상상된 세상제21장 내면의 그림 - Ⅳ. 신앙과 믿음, 그리고 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