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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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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1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7분

제21장 내면의 그림

Ⅳ. 신앙과 믿음, 그리고 비전

29 모든 특별한 관계는 죄가 그 목표다. 그것은 실재와의 거래 협정으로서, 겉보기 연합은 그에 맞춰 조정된다. 거래 협정을 맺는 것은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며, 너는 네가 제한된 관계를 맺는 모든 형제를 증오한다. 이를 잊지 말라. 너는 "공평성"의 이름으로 거래 협정을 지키려고 시도할 것이다. 때로는 너 자신에게 지불을 요구하고, 아마도 상대방에게는 더 자주 요구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는 그 관계에 받아들인 목적에서 비롯되는 죄의식을 "공평성"을 가지고 완화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성령은 그 관계의 목적을 바꿔서, 그것을 성령 자신에게는 유용하고 너에게는 무해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30 네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인다면, 진리를 위한 여지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인 것이다. 죄의 근원은 사라졌다. 너는 여전히 죄의 결과를 경험한다고 상상할 수도 있지만, 죄는 이제 너의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너는 더 이상 죄를 원하지 않는다. 네가 어떤 목적을 열망하는 한, 그것이 대체되도록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받아들이는 목표만큼 소중히 여겨지고 보호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침울하게든 행복하게든 그 목표를 따르겠지만, 항상 그것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그리고 그 신앙이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끈기를 가지고 그렇게 한다. 신앙을 죄에 부여한다면, 너는 결코 신앙의 힘을 인식할 수 없다. 하지만 신앙을 사랑에 부여한다면, 너는 항상 신앙의 힘을 인식하게 된다.

31 신앙이 산을 움직일 수 있음을 너는 왜 이상하게 여기는가? 그것은 신앙의 굉장한 힘에 비하면 과연 작은 성과에 지나지 않는다. 하느님의 아들이 스스로 사슬에 묶여있다고 믿는 한, 신앙은 그를 계속 사슬에 묶어둘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사슬에서 풀려난다면, 그 이유는 단지 그가 더 이상 사슬의 존재를 믿지 않기에 사슬이 그를 묶어둘 수 있다는 신앙을 거둬들여 그 대신 자신의 자유에 부여하기 때문이다. 반대되는 두 방향에 똑같은 신앙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네가 죄에 어떤 신앙을 바치든, 그것을 거룩함으로부터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거룩함에 제공하는 것은 죄로부터 거둬들인 것이다.

32 신앙과 믿음과 비전은 거룩함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이것들을 통해 성령은 너를 실재세상으로 인도하면서, 네가 신앙을 부여했던 모든 환상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방향이며, 그가 보는 유일한 방향이다. 그리고 네가 방황할 때, 성령은 오로지 하나의 방향만 있음을 일깨워 준다. 성령의 신앙과 믿음과 비전은 모두 너를 위한 것이다. 네 것들 대신에 그것들을 완전히 받아들였을 때, 너는 더 이상 네 것들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신앙과 비전과 믿음은 확실성의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만 의미가 있다. 천국에서는, 그것들에 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천국에 도달하는 것은 그것들을 통해서다.

33 하느님의 아들에게 신앙이 없는 상태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신앙할지는 그의 선택에 달려있다. 신앙 없음은 신앙의 결핍이 아니라, 무에 대한 신앙이다. 환상에 부여된 신앙에도 힘이 없지는 않다. 하느님의 아들은 바로 그 신앙에 의해 자신에게 힘이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는 과연 신앙이 없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환상들을 신앙하는 것에 있어서는 강력하다. 너는 신앙과 지각, 그리고 믿음을 확실성을 잃고 죄를 찾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미친 방향이 너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너는 네가 선택한 것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네가 열망한 것을 만들었다.

34 성령은 네가 죄를 찾으려고 사용했던 그 모든 수단을 위한 용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성령이 사용하면, 그것들은 죄에서 멀어지도록 이끈다. 성령의 목적은 반대 방향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네가 사용하는 수단을 보지만, 네가 그 수단을 만든 목적은 보지 않는다. 성령은 그것을 네게서 빼앗지 않을 것이다. 성령은 그것에서 그가 너를 위해 뜻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보기 때문이다. 너는 네 형제들 가운데서 선택하고 그들과 함께 죄를 추구하려고 지각을 만들었다. 성령은 지각을, 거룩한 관계의 비전이 네가 보기를 원하는 모든 것임을 가르쳐주기 위한 수단으로서 본다. 그러면 너는 너의 신앙을 거룩함에 부여할 것이며, 너의 열망으로 인해 거룩함을 열망하고 믿을 것이다.

35 이제 신앙과 믿음은 비전에 배속된다. 이것은 한때 죄를 섬기던 그 모든 수단이 이제는 그 방향을 거룩함 쪽으로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다. 네가 죄라고 생각하는 것은 제한이다. 그리고 너는 네가 몸에 제한하려 하는 자를 증오한다. 그렇게 할 때 너는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너는 그를 용서하기를 거부하면서 몸이라고 선고하려 한다. 죄를 위한 수단이 너에게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은 너의 신앙과 믿음을 얻고 있다. 그러나 거룩함은 네 형제를 자유롭게 풀어주어, 증상이 아닌 증상의 근원에서 두려움을 제거함으로써 증오를 제거할 것이다.

36 자신의 형제들을 몸에서 자유롭게 풀어주고자 하는 자들은 그 어떤 두려움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모든 제한이 제거되도록 허용하겠다고 선택함으로써 죄를 위한 수단을 포기했다. 그들이 자신의 형제들을 거룩함 속에서 바라보고자 열망하였기에, 믿음과 신앙의 권능은 몸 너머로 아주 멀리 뻗어나가면서 비전을 차단하지 않고 지원한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자신의 신앙으로 인해 세상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제한되었는지 인식하기로 선택하고서, 다른 관점이 주어지면 신앙의 권능을 다른 곳에 부여하겠다고 열망했다. 이런 결정에 뒤따르는 기적 또한 신앙에서 태어난다. 죄에서 눈을 돌리겠다고 선택하는 모든 이는 비전을 얻게 되고, 거룩함으로 이끌리기 때문이다.

37 죄를 믿는 자들은 분명 성령이 희생을 요구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형제들이여, 성령은 희생이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함을 안다. 성령은 흥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너희가 만약 성령을 제한하려 한다면, 너희는 두려워져서 성령을 증오하게 될 것이다. 성령이 너희에게 준 선물은 천국의 이쪽 편에 있는 그 무엇보다 더 크다. 그것을 인식할 순간이 가까이 왔다. 너희의 의식을, 이미 결합된 것에 결합하라. 너희가 서로에게 부여하는 신앙은 이것을 성취할 수 있다. 세상을 사랑하는 성령은 너희를 대신해 세상을 한 점의 죄도 없이, 그 모습을 천국만큼이나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순결함 안에서 보고 있기 때문이다.

38 네가 희생을 신앙함으로써, 희생은 네가 보기에 큰 권능을 갖게 되었다. 그 신앙 때문에 네가 볼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희생은 분명 한 몸이 다른 몸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마음은 저 혼자서는 희생을 요구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 몸 또한 마찬가지다. 희생의 의도는 마음 안에 있으며, 마음은 몸을 사용하여 자신이 믿는 죄를 위한 수단을 실행에 옮기려고 한다. 그러하기에, 죄에 가치를 두는 자들은 반드시 마음과 몸이 결합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희생은 언제나 제한을 위한 수단이며, 결국 증오를 위한 수단이다.

39 너는 성령이 과연 이런 것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성령은 너에게 그것을 주지 않는다. 성령의 목적은 너를 그것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성령이 너의 유익을 위해 너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익"과 "빼앗음"은 반대며,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게 결합될 수 없다. 그것들을 결합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해와 달은 낮과 밤에 나타나므로 하나며, 따라서 반드시 결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둘 중 하나를 본다는 것은 단지 다른 하나가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표시일 뿐이다. 또한 다른 것에게 빛을 주는 것과 어둠 속에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 하나일 수도 없다. 둘 중 어느 것도 다른 것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각각은 다른 것의 부재에 의존한다.

40 몸은 죄에 바치는 희생 제물이 되도록 만들어졌다. 따라서 어둠 속에서, 몸은 여전히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비전의 빛 속에서, 몸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너는 실로 몸에 신앙을 부여해서 성령의 목적을 섬기게 하고, 몸에 힘을 부여해서 눈먼 자들이 볼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 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눈먼 자들이 보게 될 때, 그들은 너와 마찬가지로 몸을 지나서 본다. 네가 몸에 부여한 신앙과 믿음은 본래 몸 너머에 속하는 것이다. 너는 지각과 믿음과 신앙을 마음에서 거둬들여 몸에 부여했다. 이제, 지각과 믿음과 신앙을 만들었고 여전히 그것들을 사용하여 자신이 만든 것에서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바로 그것에게 지각과 믿음과 신앙을 부여하라.

제21장 내면의 그림 - Ⅲ. 보는 것에 대한 책임제21장 내면의 그림 - Ⅴ. 내면을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