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이성으로 하여금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라. 네가 만약 하느님이 치유하시려는 자를 공격하고, 그분이 사랑하시는 자를 증오한다면, 너와 너의 창조주는 다른 뜻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정녕 그분의 뜻이므로, 그럴 때 너는 분명 네가 너 자신이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너는 과연 그렇게 믿을 수 있고,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 너는 그것을 신앙하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많은 증거를 본다. 그러면서 너는, 너의 이상한 불안감과 연결이 끊긴 듯한 느낌, 너 자신의 의미 없음에 대한 끈질긴 두려움이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지 궁금해한다. 너는 마치 아무런 계획도 없이 떠돌아 들어와서 그저 다시 떠돌아 나가는 것과 같다. 단지 그것만이 확실해 보인다.
6 우리는 전에 아주 비슷한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너에 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는 그 설명이 아주 정확하게 묘사하는 이 이상한 아이디어가 너라고 생각한다. 이성은 너의 눈이 아닌 눈으로 보는 세상은 분명 너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말해줄 것이다. 이러한 비전이 자신의 메시지를 누구에게 돌려보내겠는가? 분명히 너는 아니다. 너의 시각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것이 너의 비전이 아니라면, 그것이 너에게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는가? 뇌는 너의 비전이 보는 것을 해석할 수 없다. 이것은 너도 이해할 것이다. 몸의 일부인 뇌가 몸에게 해석해 준다. 그러나 뇌가 말하는 것을, 너는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너는 이제껏 뇌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애써서 뇌의 메시지를 이해하려고 했다. 너에게 전혀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함을, 너는 깨닫지 못했다.
7 너는 이제껏 네가 이해하는 메시지를 받아본 적이 전혀 없다. 너는 전혀 소통할 수 없는 것에 귀 기울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라. 네가 너의 정체를 부정하고 다른 무엇이라고 철저히 믿음으로써 너 자신이 되도록 만든 이 "다른 무엇"이 너의 시각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보는 것은 분명 그 "다른 무엇"이며, 네가 아닌 것으로서, 그것이 보는 것을 너에게 설명해 주는 것도 분명 그 "다른 무엇"이다. 너의 비전은 물론 이것을 완전히 불필요하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네가 만약 눈을 감고서, 그것에게 그것이 보는 세상을 너에게 설명해 주고, 너를 인도할 것을 요청했다면, 그것이 하는 말을 귀담아듣지 않거나 참이 아니라고 의심할 이유가 없다. 이성은 너에게, 그것은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에 참일 수 없다고 말해줄 것이다. 하느님은 아무런 비밀도 없으시다. 하느님은 네가 비참한 세상을 헤쳐 나가도록 인도하시면서, 왜 그러셨는지 말씀해 주시려고 여정의 끝에서 기다리지 않으신다.
8 하느님의 뜻으로부터 감춰야 할 비밀이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너는 너에게 비밀이 있다고 믿는다. 너의 비밀이란 단지, 하느님의 뜻과 무관한 너 자신의 다른 뜻이 아니겠는가? 이성은 너에게 이것은 죄로서 감출 필요가 있는 비밀이 전혀 아니라고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녕 실수다! 죄에 대한 너의 두려움이 죄의 교정을 가로막도록 허용하지 말라. 죄의식의 매력이라는 것은 단지 두려움일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네가 만든 유일한 감정이 있다. 그것이 무엇으로 보이든 상관없다. 그것은 비밀주의의 감정, 사적인 생각의 감정, 몸의 감정이다. 그것은 사랑을 반대하고, 항상 다름을 보아서 똑같음을 잃게 만드는 유일한 감정이다. 여기에 너를 계속 눈멀어 있게 하는 유일한 감정이 있다. 그 감정은 네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자아에 의존하는데, 너는 그 자아가 너를 위해 만든 세상을 따라 너를 인도하도록 그 자아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9 너에게는 네가 이해할 수 있는 그 모든 것과 함께, 시각도 주어졌다. 너는 이러한 비전이 말해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어떤 어려움도 지각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오로지 자신의 정체라고 생각하는 것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너의 시각이 보여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그것은 진리기 때문이다. 오로지 너의 비전만이 네가 볼 수 있는 것을 너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것은 너에게 해석될 필요 없이 곧바로 도달한다.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은 분명 생소한 것이다. 그리고 네가 이해할 수 없는 해석자가 그것을 이해할 만하게 만들 수도 없을 것이다.
10 네가 받고서 이해하지 못한 그 모든 메시지 중에서, 네가 이해할 여지가 있고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 수업밖에 없다. 이것은 너의 언어다. 네가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너의 소통 전체가 아기의 소통과 같기 때문이다. 아기가 내거나 듣는 소리는 전혀 믿을 만하지 않아서, 그때마다 아기에게 다른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기가 듣는 음성과 보는 모습도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 그러나 아기가 듣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모국어가 될 것이며, 그 언어를 통해 아기는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도 아기와 소통할 것이다. 아기가 주위에서 보는 이상하고 바뀌는 사람들이 아기의 위로자가 될 것이며, 아기는 자신의 집을 알아보고는 그들이 자신과 함께 집에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11 이렇게 각각의 거룩한 관계 안에서, 분리하는 대신에 소통하는 능력이 다시 태어난다. 아주 최근에야 거룩하지 않은 관계로부터 다시 태어났지만 자신이 대체한 오랜 환상보다 더 오래된 거룩한 관계는, 지금 다시 태어날 때 정녕 아기와도 같다. 하지만 이 갓난아기 안에서 너희의 비전이 돌아오고, 그 아기는 너희 둘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말할 것이다. 이 아기는 네가 너라고 생각했던 "다른 무엇"에 의해 양육되지 않는다. 이 아기는 그 다른 무엇에게 주어지지 않았고,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연합할 때는 항상 그리스도를 통해 연합하며, 그리스도의 비전은 그들을 하나로 보기 때문이다.
12 나의 거룩한 형제들아, 너희에게 무엇이 주어졌는지 생각해 보라. 이 아이는 너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가르쳐서 알기 쉽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의 언어는 외국어가 아니다. 그 아이는 너희에게 말하기 위해 통역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가 아는 것을 가르쳐준 자는 바로 너희였다. 너희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너희 외의 누군가에게, "다른 무엇"에게 갈 수 없었다. 그리스도가 들어간 곳에서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분리된 자들 안에서 집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아주 새로워 보이지만 자신만큼이나 오래된 자신의 옛집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거기서 그리스도는 그를 살게 해주는 너희 관계의 거룩함에 의지하는 작은 새 식구다.
13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을 가치 없는 것에 맡기지 않으셨음을 확신하라. 오로지 하느님의 일부인 것만이 결합될 가치가 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부가 아닌 것은 결코 결합할 수 없다. 결합하는 자들에게는 소통이 회복되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몸을 통해 결합할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을 결합하였는가? 이성은 너희에게, 그들은 몸의 것이 아닌 비전으로 서로를 보았고, 몸이 말하지 않는 언어로 소통했다고 말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부드럽게 하나로 끌어모은 것은 무서운 모습이나 소리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반대로 각자는, 자신의 자아가 안전과 평화 안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완벽한 피난처를 상대방 안에서 보았다. 바로 이러한 것을, 그들의 이성이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것을, 그들은 믿었다. 그것은 진리였기 때문이다.
14 여기에 네가 만든 최초의 직접적인 지각이 있다. 너는 지각보다 오래되었지만 단 한 순간에 다시 태어난 의식을 통해 그 지각을 만들었다. 왜냐하면, 늘 그랬던 것에게 시간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순간이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생각해 보라. 그것은 네가 너라고 생각했던 "다른 무엇"이 환상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진리가 즉시 와서, 너의 자아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었다. 환상에 대한 부정이야말로 진리를 불러오는 것이다. 환상을 부정하는 것은 곧 두려움이 무의미함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힘을 못 쓰는 거룩한 집으로 사랑이 감사히 들어오면서, 서로 결합하여 사랑을 들어오게 한 너희와 사랑 자신이 하나인 것에 기뻐한다.
15 그리스도는 자신을 닮은 것, 다른 것이 아닌 똑같은 것에게 온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이끌리기 때문이다. 거룩한 관계만큼 그리스도를 닮은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너희를 함께 모이도록 끌어당기는 것이 그리스도를 너희에게 끌어당겨 온다. 여기에, 공격에서 보호되는 그리스도의 다정함과 온유한 순결이 있다. 그리고 이곳으로, 그리스도는 확신하며 돌아올 수 있다. 서로에 대한 너희의 믿음은 항상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서로를 그리스도가 선택한 집으로 바라보는 것은 정녕 옳다. 여기서, 너희는 그리스도는 물론 그의 아버지와도 함께 뜻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한 아버지의 뜻이며, 아버지의 뜻과 함께하는 너희의 뜻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이끌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이 모든 거룩한 관계로 이끌리듯이 확실하게 하느님께 이끌린다. 그 관계는 땅이 천국으로 바뀔 때 그리스도와 하느님을 위해 마련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