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스트
    • 오늘의 텍스트
    • 워크북
    • 교사용 지침서
    • 공지사항
    • 기적의 향기 책 구매
    • 기적수업 첫걸음
    • 기적수업 핵심 주제
    • 용서와 치유 나눔
    • 기적수업과 함께하는 여정
    • 자주 묻는 질문과 답
    • 기적수업 용어설명
    • 내 서재
피드백 보내기
  • 카페
  • 유튜브

Contact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테마 색상
다크 모드

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2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0분

제22장 구원과 거룩한 관계

Ⅲ. 네 형제의 죄 없음

16 환상의 반대는 환멸이 아닌, 진리다. 에고에게는 진리가 의미 없으며, 오로지 그런 에고에게만 환상과 환멸은 유일한 대안들로서 서로 달라 보인다. 사실 그 둘은 똑같은 것이며, 똑같은 정도의 비참함을 초래한다. 비록 각각은 다른 하나가 초래하는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방법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모든 환상은 어두운 주름 사이에 고통과 고난이 매달린 두꺼운 옷을 걸치고는, 그 옷으로 자신이 무임을 감춘다. 하지만 환상을 구하는 자들은 이렇게 어둡고 두꺼운 옷에 뒤덮여, 진리의 기쁨으로부터 감춰진다.

17 진리가 환상의 반대인 이유는, 진리는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비참함의 반대가 기쁨이 아닌 무엇일 수 있겠는가? 한 종류의 비참함을 떠나 다른 종류의 비참함을 구하는 것은 도저히 벗어남이라고 할 수 없다. 환상들을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것이다. 비참함에서 기쁨을 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쁨이 어떻게 비참함 안에서 발견될 수 있겠는가? 비참함의 어두운 세상에서 가능한 것이라고는, 비참함에서 몇몇 측면들을 골라내서 그것들을 다르다고 보고, 그 다름을 기쁨이라고 정의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다름이 없는 곳에서 다름을 지각하는 것은 분명 다름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18 환상들은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오로지 죄의식과 고난, 병과 죽음을 가져다줄 뿐이다. 어떤 형식의 환상을 받아들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성의 눈에는 어떤 형식의 비참함도 기쁨과 혼동될 수 없다. 기쁨은 영원하다. 어떤 것이 행복처럼 보이더라도 지속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제로 두려움임을 확신해도 좋다. 기쁨은 슬픔으로 바뀌지 않는다. 영원한 것은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픔은 정녕 기쁨으로 바뀔 수 있다. 시간은 영원한 것에게 자리를 내주기 때문이다. 오로지 무시간적인 것만이 변함없이 남아있을 것이며, 시간 안의 모든 것은 시간과 함께 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상상 속의 변화가 아닌 실재적인 변화가 되기 위해서는 환상을 진리로 대체해야 하며, 똑같이 실제가 아닌 다른 꿈으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전혀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19 이성은 너에게, 비참함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그것을 인식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것뿐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진리도 같고 비참함도 같지만, 이 둘은 모든 측면과 모든 경우에서, 그리고 어떤 예외도 없이 서로 다르다. 하나의 예외가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같은 것을 다른 것과 혼동하는 것이다. 단 하나의 환상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진리에 맞서 보호한다면, 모든 진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 모든 환상을 실재화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것이 믿음의 힘이다. 여기에 타협은 있을 수 없다. 만약 순결함에 대한 믿음이 단 하나의 살아있는 것이라도 배제하여 자신의 용서 밖에 떼어놓는다면, 그 믿음은 곧 죄에 대한 믿음이다.

20 이성과 에고는 모두 너에게 이렇게 말해주겠지만, 그로부터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는 같지 않다. 에고는 이제 네가 누구에게서든 죄를 보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장담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비전이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면, 죄에 대한 믿음은 영원할 것이다. 하지만 이성은 이것을 다른 식으로 본다. 이성은 어떤 아이디어의 근원이 그 아이디어를 참이나 거짓으로 만들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는 자신의 근원을 닮았으므로, 이것은 그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성은 말한다. 죄의식에서 벗어난다는 목적이 성령에게 주어졌고, 게다가 당신이 뜻하는 것은 그 무엇도 불가능할 수 없는 하느님에 의해 주어졌다면, 그 목적을 달성할 수단은 가능한 정도 이상이다. 그 수단은 분명히 존재하고, 너는 그것을 분명히 갖고 있다.

21 지금은 이 수업에서 아주 중요한 시기다. 여기서, 너와 에고의 분리가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성령의 목적을 성취할 수단을 갖고 있다면, 그 수단을 사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너는 그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통해 그에 대한 믿음을 얻을 것이다. 하지만 에고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루어질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너는 너의 창조주가 뜻하시는 것은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네가 만든 것은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이제 너는 너 자신과 너 자신에 대한 환상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 둘 다가 아닌 단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이 유일한 결정을 피하려고 해봤자 아무런 소용도 없다. 반드시 결정해야 한다. 신앙과 믿음은 어느 쪽으로든 기울 수 있지만, 이성은 너에게 비참함은 오로지 한 쪽에만 놓여있고, 기쁨은 다른 쪽에 놓여있다고 말해준다.

22 이제 서로를 저버리지 말라. 너희는 똑같기에, 홀로 결정하거나 다르게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서로에게 생명이나 죽음을 준다. 또한 너희는 서로의 구원자거나 심판자로서, 상대방에게 성소를 제공하거나 정죄를 제공한다. 너희는 이 수업을 완전히 믿거나 전혀 믿지 않을 것이다. 이 수업은 전적으로 참이거나 전적으로 거짓이며, 이 수업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믿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비참함에서 완전히 벗어나거나 전혀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머뭇거리면서 천국의 기쁨과 지옥의 비참함 사이에서 선택하려고 기다릴 수 있는 중간 지대란 없다. 이성은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천국을 선택할 때까지, 너희는 정녕 지옥과 비참함 속에 있다.

23 네가 떼어내어 환상들로 엮어낼 수 있는 천국의 부분이란 없다. 그리고 네가 천국으로 갖고 들어갈 수 있는 환상도 단 하나도 없다. 구원자는 심판자일 수 없으며, 자비가 정죄일 수도 없다. 비전은 저주할 수 없으며, 오로지 축복할 수만 있다. 구원하는 기능을 가진 자는 구원할 것이다. 그가 어떻게 구원할 것인지는 너의 이해 너머에 있지만, 언제 구원할 것인지는 너의 선택일 수밖에 없다. 시간은 네가 만든 것이고, 네가 지배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더 이상 네가 만든 세상의 노예가 아니듯이 시간의 노예도 아니다.

24 네가 만든 것이 너를 예속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환상 전체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것은 분리를 야기한 것과 같은 믿음이다. 그것은 생각이 생각하는 자의 마음을 떠날 수 있으며, 그 마음과 다를 수 있고, 그 마음을 반대할 수도 있다는 무의미한 아이디어다. 만약 이것이 참이라면, 생각은 마음의 확장물이 아닌 적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전에 여러 차례 보았던 것과 같은 근본적인 환상의 다른 형식을 본다. 하느님의 아들이 그의 아버지의 마음을 떠나서 자기 자신을 다르게 만들고 그분의 뜻을 반대하는 것이 가능할 경우에만, 그가 만든 자아와 그 자아가 만든 모든 것이 그의 주인이 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25 그 거대한 투사물을 보되, 두려워하면서 보지 말고 그것이 치유되어야 한다는 결정과 함께 바라보라. 네가 여전히 너의 창조주와 떨어져 있으면서 그분의 뜻과 반대되는 뜻을 갖고 있으려 하지 않는 한, 네가 만든 그 무엇도 너를 지배할 힘이 없다.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 하느님의 적이 될 수 있다고 믿으려 할 경우에만, 네가 만든 것이 너의 적이 되는 것이 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너는 하느님의 기쁨을 비참함이라고 선고하고, 하느님을 다르게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네가 만든 그 모든 비참함은 그동안 너 자신의 것이었다. 그것이 참이 아님을 배우니 기쁘지 않은가? 네가 만든 환상 중에 단 하나도 진리를 대체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갑지 않은가?

26 불가능한 것은 오로지 너의 생각뿐이었다. 구원은 불가능할 수 없다. 너의 구원자를 적으로 보고서도 그를 알아보는 것은 정녕 불가능하다. 하지만 하느님이 원하신다면, 네가 그를 그의 정체대로 알아보는 것은 정녕 가능하다. 하느님이 너희의 거룩한 관계에 주신 것은 거기에 있다. 하느님이 너에게 주라고 성령에게 주신 것을, 성령이 주었기 때문이다. 너에게 주어진 구원자를 바라보지 않으려는가? 네가 그에게 준 사형 집행인의 기능을 그의 진정한 기능과 감사히 맞바꾸지 않으려는가? 네가 너 자신에게 주려고 했던 것 말고, 하느님이 너를 위해 그에게 주신 것을 그에게서 받아라.

27 너희가 너희 사이에 가로막아 놓은 몸들 너머에 너희의 거룩한 관계가 있어,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그것은 영원히 확장하는 찬란하고 끝없는 원으로부터 도달하는 황금색 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그 관계는 얼마나 고요하게 안식하고 있는지! 그것은 시간 안에 있으면서도 시간 너머에 있고, 불멸이면서도 땅 위에 있다. 그 관계 안에 놓여있는 권능은 얼마나 막강한지! 시간은 그 관계의 뜻을 섬기려고 대기하고 있으며, 땅은 그 관계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여기에는 분리된 뜻이 전혀 없고, 어떤 것이 분리되어 있기를 바라는 열망도 전혀 없다. 그 관계의 뜻에는 예외가 없으며, 그 관계가 뜻하는 것은 참이다. 그 관계의 용서 앞에 가져와진 모든 환상은 부드럽게 간과되어 사라진다. 그 관계의 중심에서 그리스도가 다시 태어나, 세상을 간과하는 비전으로 자신의 집을 밝히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집이 또한 너희의 집이 되게 하지 않으려는가? 여기에는 비참함이 전혀 없으며, 오로지 기쁨만 있다.

28 네가 여기서 그리스도와 함께 조용히 머물러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란 단지, 그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뿐이다. 자신의 형제를 죄 없다고 보려는 용의를 내는 모든 이에게, 그리스도의 비전은 아주 신속하고도 기쁘게 주어진다. 네가 죄의 모든 결과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싶다면, 그 누구도 이 용의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남겨두지 말라. 너 자신이 부분적으로 용서받기를 원하는가? 네가 여전히 단 하나의 죄 때문에 비참함 속에 남아있으려는 유혹을 느끼는 한, 과연 천국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천국은 완벽한 순수의 집이며, 하느님은 천국을 너를 위해 창조하셨다. 너 자신처럼 죄 없는 너의 거룩한 형제를 바라보고, 그로 하여금 너를 그곳으로 인도하게 하라.

제22장 구원과 거룩한 관계 - Ⅱ. 거룩한 관계의 메시지제22장 구원과 거룩한 관계 - Ⅳ. 이성과 거룩한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