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네 형제의 거룩함 앞에서 온 세상이 고요하고, 온유함과 축복 속에서 평화가 그 위에 내려앉는다. 그 평화는 너무도 완전해서, 밤의 어둠 속에서 너에게 출몰할 단 한 점의 갈등의 자취도 남아있지 않다. 네 형제는 너를 두려움의 꿈에서 건져주는 구원자다. 그는 네가 가진 것이 바람에 흩어져 먼지로 변해버릴 것이라는 희생의 느낌과 두려움을 치유해 주는 자다. 네 형제 안에, 하느님이 지금 너와 함께 여기에 계신다는 너의 확신이 놓여있다. 네 형제가 그의 정체인 한, 너는 하느님이 네가 알 수 있는 분이시며 너에게 알려지실 것임을 확신해도 좋다. 하느님은 결코 당신 자신의 창조물을 떠나실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러하다는 표시가 네 형제 안에 놓여있어서, 너 자신에 대한 모든 의심이 그의 거룩함 앞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너에게 제공되었다. 네 형제 안에서 하느님의 창조물을 보라. 아버지는 네가 당신의 일부로 창조되었음을 인정하기를 네 형제 안에서 기다리시기 때문이다.
50 네가 없다면 하느님 안에는 결핍이 있고, 천국은 불완전하며, 아들에게는 아버지가 없을 것이다. 우주도 실재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하느님이 뜻하시는 것은 온전하며, 그분의 일부다. 하느님의 뜻은 하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것 중에 하느님의 일부가 아닌 것은 없으며, 존재하는 것 중에 그분 안에 살아있지 않은 것도 없다. 네 형제의 거룩함은 하느님이 그는 물론 너와도 하나시며, 너는 그는 물론 그의 아버지와도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가진 것은 네 것임을 보여준다.
51 온 우주에서 네가 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 중에 그분이 네 앞에 사랑스럽게 놓아 영원히 너의 것이 되게 하지 않으신 것도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하느님의 마음 안에 있는 어떤 생각도 너 자신의 마음 안에 없지 않다. 네가 너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공유하는 것,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하느님이 너에 대해 생각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너를 알고 계신 대로 너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은 상황이 바뀐다고 해서 아들에 대한 당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으신다. 하느님이 머물러 사시고 네가 그분과 함께 머물러 사는 영원 안에서, 바뀌는 상황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네 형제는 정녕 하느님이 창조하신 그대로다. 바로 이 사실이, 하느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세상에서 너를 구해낸다.
52 하느님 아들의 치유가 온 세상이 가진 유일한 목적임을 잊지 말라. 그것은 성령이 세상에서 보는 유일한 목적이며, 따라서 세상이 가진 유일한 목적이다. 세상과 시간과 모든 겉모습을 통해 아들이 치유되는 것이 너의 모든 소망이 될 때까지, 너는 아버지도 너 자신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세상을 그 목적이 아닌 것을 위해 사용하여, 세상의 폭력과 죽음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세상의 법칙을 모든 상황에서 모든 측면과 모든 방법으로, 없는 것을 지각하려는 모든 유혹과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으므로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모든 믿음 가운데서 초월할 수 있다.
53 네 형제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듯한 법칙이 완전히 뒤집혀 있음을 보라. 그의 자유 안에서 너의 자유를 보라. 자유란 바로 그러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특별성이 그의 내면에 있는 진리를 가리게 하지 말라. 너는 그를 옭아맨 단 하나의 죽음의 법칙에서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네가 그 안에서 본 단 하나의 죄도 너희 둘 모두를 지옥에 가두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완벽한 죄 없음은 너희 둘 모두를 해방할 것이다. 거룩함은 전혀 편파적이지 않아서, 바라보는 모든 것에게 단 하나의 판단만 내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은 그 자체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하느님의 존재를 공유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대변하는 음성을 통해 내려진다.
54 보는 눈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죄 없음이다. 그 눈이 모든 것에서 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사랑스러움이다. 그 눈은 모든 곳에서 하느님을 구하며, 그분이 계시지 않는 모습도, 장소도, 시간도 없음을 깨닫는다. 너의 구원과 세상의 구원을 위한 완벽한 틀인 네 형제의 거룩함 안에, 하느님에 대한 빛나는 기억이 놓여있다. 하느님 안에서 네 형제가 살고, 너도 그와 더불어 산다. 네 형제와 너에게 그리스도의 얼굴을 가리는 특별성의 장막 때문에 너의 눈이 멀게 하지 말라.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더 이상 네가 마땅히 보아야 할 비전을 가리지 말게 하라. 네 형제의 몸은 너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스도는 정녕 네 형제의 거룩함 안에 드러나 있다.
55 그렇다면 네가 보기를 원하는 것이 그의 몸인지 아니면 그의 거룩함인지 선택하라. 그러면 너는 네가 선택하는 것을 네 것으로서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네가 진리를 선택하겠다고 결정할 때까지는, 헤아릴 수 없는 상황들과 끝없어 보이는 시간을 통해 선택할 것이다. 네 형제 안의 그리스도를 한 번만 더 부정하더라도, 너는 영원을 되찾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형제가 단지 하나의 몸이라면, 너의 구원이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그의 거룩함 안에 있지 않다면, 너의 평화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하느님은 당신의 일부를 네 형제의 거룩함 안에 영원히 두셔서, 너 자신에 대한 진리가 마침내 네가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측면에서 드러나는 것을 너로 하여금 보게 하셨다. 네 형제 안에 있는 하느님의 그 부분이 아니라면, 하느님이 도대체 어디에 계시겠는가?
56 네 형제의 거룩함은 너에게 베풀어지는 성사요 축도다. 그의 잘못은 하느님의 축복을 그 자신으로부터 거둬들일 수 없으며, 그를 진실로 보는 너에게서도 거둬들일 수 없다. 그의 실수는 물론 지연을 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그에게서 그 실수를 제거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너희 둘은 결코 시작되지도 않았고 끝날 필요도 없는 여정을 끝낼 수 있다. 결코 존재하지 않은 것은 너의 일부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네 곁에 서있는 네 형제의 일부도 아님을 깨닫기 전에는, 너는 그것을 너의 일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네 형제는 너 자신의 거울로서, 그 안에서 너는 네가 두 사람 모두에게 내린 판단을 본다. 네 안의 그리스도는 네 형제의 거룩함을 본다. 너의 특별성은 그의 몸을 바라볼 뿐, 그를 보지 않는다.
57 너의 해방이 지체되지 않도록, 네 형제를 그의 정체대로 보라. 다른 선택이 너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목적도 없고 성과도 전혀 없는 어리석은 방랑뿐이다. 네 형제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네가 주어진 과제를 다하여 그가 과거에서 떨쳐 일어나기 전에는, 완수되지 않은 기능으로 인한 공허감이 너를 수시로 엄습할 것이다. 자기 자신과 너를 정죄한 네 형제를 너와 더불어 정죄에서 구하라고, 그가 너에게 주어졌다. 그리고 너희 둘 모두가 하느님의 아들 안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볼 것이다. 비록 너희는 하느님의 아들이 육신이고, 그를 지배할 힘이 전혀 없는 법칙에 묶여있다고 잘못 생각했지만 말이다.
58 이 법칙이 너희를 위한 것이 아님을 기쁘게 깨닫고 싶은가? 그렇다면 네 형제를 그 법칙에 묶인 죄수로 보지 말라. 하느님의 일부를 지배하는 것은 나머지 모두에게 적용될 수밖에 없다. 너는 네 형제를 지배한다고 보는 법칙 아래에 너 자신을 둔다. 그렇다면 너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기에, 하느님이 당신의 일부를 너에게 주셔서 너를 고통에서 구하고 행복을 안겨주게 하셨는지 생각해 보라. 그리고 너의 특별성은 하느님의 뜻 앞에서 사라질 것임을 결코 의심하지 말라. 하느님은 당신의 부분 하나하나를 똑같은 사랑[과 보살핌]으로써 사랑하신다. 네 안의 그리스도는 너의 형제를 참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너는 그리스도가 보는 거룩함을 부정하겠다고 결정하려는가?
59 특별성은 네가 너 자신에게 부여한 기능이다. 특별성은 스스로 창조되었고 스스로 유지되며, 아무것도 필요 없고 몸 너머의 그 무엇과도 결합되지 않은 너 혼자만을 나타낸다. 특별성의 눈으로 보면 너는 별개의 우주로서, 그 자체 안에 자신을 완전하게 유지할 힘을 가졌다. 모든 출입구는 침입을 막으려고 잠겼고, 모든 창문은 빛을 차단하려고 폐쇄되었다. 너는 언제나 공격받고 언제나 격분하며, 너의 분노는 언제나 아주 정당한 근거가 있다. 너는 결코 굽힐 생각 없는 경계와 멈출 생각 없는 노력으로 그런 목표를 추구했다. 그리고 네가 이 모든 불굴의 투지를 보인 이유는, 특별성이 진리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60 이제 나는 너에게 단지, 경계를 훨씬 늦추고, 적은 노력과 적은 시간으로, 또 다른 목표를 추구하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러한 추구에는 그 목표를 지지하고 성공을 약속하는 하느님의 권능이 함께할 것이다. 그런데 너는 두 목표 중에 이 목표가 더 어렵다고 느낀다. 너는 자아의 "희생"을 이해하며, 이것이 너무 값비싼 대가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너는 작은 용의를 내는 것, 하느님께 고개를 끄덕이는 것, 네 안의 그리스도에게 인사하는 것은 지루하고, 싫증나고, 견디기에 너무 무거운 짐으로 여긴다. 하지만 하느님이 확립하신 진리에 헌신하는 것은 희생을 요구하지도 긴장을 일으키지도 않으며, 천국의 그 모든 권능과 진리 자체의 힘이 주어져서 수단을 제공하고 목표의 달성을 보장한다.
61 너는 네 형제의 거룩함보다는 그의 몸을 보는 것이 더 쉽다고 믿지만, 과연 그 무엇이 이런 판단을 내렸는지 확실히 이해하라. 여기서 특별성의 음성이 또렷이 들린다. 그 음성은 그리스도를 거슬러 판단하며, 네가 어떤 목적은 이룰 수 있고 어떤 목적은 이룰 수 없는지 제시한다. 이런 판단은 네가 특별성을 동맹자 삼아 함께 행하는 것에 반드시 적용된다는 점을 잊지 말라. 네가 그리스도를 통해 행하는 것을, 특별성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에게 이러한 판단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오로지 아버지가 뜻하시는 것만이 가능하며, 그리스도가 보아야 할 다른 대안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갈등 없음으로부터, 너의 평화가 나온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목적으로부터는, 애씀 없는 성취와 안식을 위한 수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