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이 세상에 묶여있는 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진리기를 바라는 특별성을 얼마나 맹렬히 방어하는지! 그에게는 그의 소망이 법칙이며, 그는 그것에 복종한다. 그는 자신의 특별성이 요구하는 것은 아무것도 거절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특별성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특별성이 그를 부르는 동안, 그는 다른 음성은 듣지 못한다. 아주 작은 멸시, 사소한 공격, 의심의 속삭임, 위협의 조짐, 혹은 가장 깊은 존경이 아닌 모든 것에서 자신의 특별성을 지킬 수 있다면, 어떤 노력도 너무 크지 않고 어떤 비용도 너무 많지 않으며 어떤 대가도 너무 비싸지 않다. 이것이 바로 너의 아들로서, 너는 그것을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시듯 사랑한다. 너의 창조물들은 너의 진정한 아들로서, 그들로 인해 너는 하느님의 부성을 낚아채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건만, 너의 특별성은 너의 창조물들 대신에 서있다. 네가 너의 강함이 되게 한 이 아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렇게 아낌없이 사랑받는 이 땅의 아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하느님의 창조물에 대한 서툰 모방품으로서, 너의 창조물들을 대신하는 이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 하느님이 머무시는 집주인이 자신의 창조물들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아들을 찾았으니, 그의 창조물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63 하느님에 대한 기억은 홀로 빛나지 않는다. 네 형제 안에 있는 것은 여전히 모든 창조물, 즉 창조되었거나 창조하고 있고, 이미 태어났거나 아직 태어나지 않았으며, 여전히 미래에 있거나 이미 지나가버린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네 형제 안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으며, 네가 그것을 인정할 때 너 자신의 변함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네 안의 거룩함은 네 형제에게 속한 것으로서, 네가 그의 내면에서 그 거룩함을 봄으로써 너에게 돌아온다. 네가 특별성에 바친 모든 찬사는 본래 네 형제에게 속한 것이며, 따라서 너에게 돌아온다. 그 모든 사랑과 배려, 강력한 보호, 밤낮으로 하는 생각, 깊은 관심, 이것이 바로 너라는 강력한 확신은 네 형제에게 속한다. 네가 특별성에 부여한 것 중에 마땅히 그의 것이 아닌 것은 전혀 없다. 그리고 마땅히 그의 몫인 것 중에 마땅히 너의 몫이 아닌 것도 전혀 없다.
64 특별성이 너를 사로잡고 있는 한, 네가 어찌 너의 가치를 알 수 있겠는가? 너의 가치는 네 형제의 거룩함 안에 있음을, 네가 어찌 알지 못할 수 있겠는가? 너의 특별성을 진리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 그것이 만약 진리라면, 너는 정녕 길을 잃으리라. 반대로 네가 그의 거룩함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라. 왜냐하면 그것은 정녕 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네 형제 안에서 진리인 것은 분명 네 안에서도 진리다.
65 다음과 같이 자문해보라: 너는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가? 몸은, 약간 보호할 수 있다. 시간으로부터 보호할 수는 없지만, 일시적으로는 가능하다. 너는 네가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많은 것을 해친다. 너는 그것을 무엇을 위해 보호하고자 하는가? 그 선택에 몸의 건강과 위해危害가 놓여있다. 다른 물고기를 잡고, 너의 특별성을 더 나은 스타일에 담아두거나 너의 증오 둘레에 사랑스러운 틀을 짜 넣기 위한 미끼로서 전시용으로 몸을 보호한다면, 너는 몸에게 부패와 죽음의 형을 선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만약 이러한 목적을 네 형제의 몸에서 본다면, 너 자신의 몸에도 그러한 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네 형제 주위에 거룩함의 틀을 짜 넣음으로써, 진리로 하여금 그를 비춰주게 하고, 너에게 부패로부터의 안전을 제공하게 하라.
66 아버지는 당신이 창조하신 것을 안전하게 지켜주신다. 너는 네가 만든 거짓된 아이디어들로 그것을 건드릴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네가 창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너의 어리석은 공상이 너를 겁주게 하지 말라. 불멸인 것은 공격받을 수 없으며, 일시적인 것은 아무런 결과도 없다. 일시적인 것에서 오로지 네가 보는 목적만이 의미가 있으며, 그 목적이 참이라면 그것의 안전은 확실히 보장된다. 그 목적이 참이 아니라면, 그것은 실제로 아무런 목적도 갖고 있지 않으며 그 무엇을 위한 수단도 아니다. 진리를 위한 수단으로 지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진리의 거룩함을 공유하며, 진리 자체만큼이나 안전하게 빛 속에서 안식한다. 그 빛은 그것이 사라진다고 해서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의 거룩한 목적은 그 빛에 불멸성을 부여하여, 천국에 또 하나의 빛으로 자리잡게 한다. 그곳에서 너의 창조물들은 네가 준 선물, 즉 네가 그들을 잊지 않았다는 표시를 알아본다.
67 땅 위의 모든 것에 대한 시험법은 단지 다음과 같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이 그것이 너에게 정녕 무엇인지 결정한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지만, 너는 네가 섬기는 목적에 따라 그것들에 실재성을 부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너는 그것들과 더불어 다만 수단일 뿐이다. 하느님은 수단이자 목적이시다. 천국에서 수단과 목적은 하나며, 하느님과도 하나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창조의 상태로서, 그것은 시간이 아닌 영원 안에서만 발견된다. 이곳의 그 누구에게도 이것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이런 상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울 방법도 없다. 네가 배움을 지나 진정으로 주어진 것으로 나아가고, 너의 창조물들을 위해 거룩한 집을 다시 만들기 전에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68 아버지와 함께 창조하는 공동 창조자에게는 분명 아들이 하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아들은 분명 공동 창조자 자신과 닮게 창조되었을 것이다. 그는 완벽한 존재로서, 모든 것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포함되어 있으며,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다. 크기나 무게나 시간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으며, 어떤 한계나 불확실성에도 묶여있지 않다. 여기에서 수단과 목적이 하나로 연합하며, 이 하나에는 끝도 전혀 없다. 이 모든 것이 참이지만, 배우지 않은 레슨 하나를 자신의 기억에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자들, 여전히 불확실한 목적을 가진 생각 하나, 혹은 목적이 갈라진 소망 하나를 기억에 간직하고 있는 자들에게,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69 이 수업은 쉽게 배울 수 없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다. 네가 준비되었을 때 너의 것이 너에게 온다고 말해주는 것 외에는, 이 수업의 범위는 너 자신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다. 이곳에서는 수단과 목적이 분리되어 있다. 그것들은 그렇게 만들어져서 그렇게 지각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마치 수단과 목적이 분리된 듯이 다룬다. 모든 지각은 그 목적을 이해하기 전에는 여전히 뒤집혀 있음을 잊지 않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지각은 수단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 지각이 네가 그것을 보는 목적에 얼마나 의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각은 네가 보는 것을 너에게 가르쳐주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지각은 단지 네가 가르친 것에 대해 증언할 뿐이다. 지각은 소망의 바깥 그림, 즉 네가 진짜이기를 원했던 이미지일 뿐이다.
70 너 자신을 바라보면, 몸 하나가 보일 것이다. 그 몸을 다른 조명 아래에서 보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조명이 없으면, 그 몸은 사라진 것 같다. 하지만 너는 여전히 손으로 몸을 느끼고 몸이 움직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 몸이 거기에 있다고 안심할 수 있다. 여기에, 네가 너 자신이기를 바라는 이미지가 있다. 몸은 너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하는 수단이다. 몸은 네가 몸을 바라볼 눈을 주며, 몸을 느낄 손과 몸이 내는 소리를 들을 귀를 준다. 몸은 자신의 실재성을 너에게 증명한다.
71 이렇게 몸은 그 자체를 넘어서는 증거는 전혀 제시하지 못하고 그 시야 안에서는 탈출구가 전혀 없는, 너 자신에 대한 하나의 이론이 된다. 몸 자신의 눈으로 볼 때 몸의 진행 과정은 분명하다. 몸은 성장하고 시들며, 번성하고 죽는다. 너는 몸과 무관한 너 자신을 상상도 하지 못한다. 너는 몸을 악하다고 판단하여 죄인으로 낙인찍고, 그 행위를 증오한다. 하지만 너의 특별성은, "여기에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 있다. 내가 그로 인해 기뻐하노라."라고 속삭인다. 이렇게 "아들"은 그의 "아버지"의 목적을 섬기는 수단이 된다. 같지도 않고 심지어 닮지도 않았지만, 여전히 "아버지"에게 그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수단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창조물에 대한 졸렬한 모방품이다. 하느님 아들의 창조물들이 그에게 기쁨을 주고 그의 사랑에 대해 증언하고 그의 목적을 공유하였듯이, 몸은 몸을 만든 아이디어를 위해 증언하고 몸의 실재와 진리를 대변해 말한다.
72 이와 같이 두 아들이 만들어졌다. 그 둘은 만날 장소도 없고 만나지도 않은 채 이 땅을 걸어 다니는 듯하다. 한 아들은 네가 너의 바깥에서 보는, 너 자신이 사랑하는 아들이다. 다른 한 아들은 내면에서 안식한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네 형제가 네 안에 있듯이 네 형제의 내면에 있다. 두 아들의 차이는 그들의 겉모습이나 그들이 가는 곳, 심지어 그들이 하는 행위에 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각자 다른 목적이 있다. 이것으로 인해 그들은 각자 자신을 닮은 것과 결합하며, 다른 목적을 가진 채 모든 면에서 서로 분리되어 있게 된다.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간직한다. 사람의 아들은 이질적인 뜻을 지각하고, 그것이 그러하기를 소망한다. 이와 같이 그의 지각은 그의 소망에 진리의 겉모습을 부여함으로써 그의 소망을 섬긴다. 하지만 지각은 또 다른 목표를 섬길 수도 있다. 지각은 단지 너의 선택에 따라 더 이상 특별성에 묶여있지 않게 된다. 너는 정녕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으며, 다른 목적을 위해 지각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네가 보는 것은 그 목적을 잘 섬길 것이며, 그것의 실재성을 너에게 증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