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네가 너 자신에게 내린 선고를 성령이 축복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죄일 수 없다. 죄는 온 세상에서 변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죄는 불변이며, 죄의 변함없음에 세상이 의존한다. 세상의 마법은 죄의 고통을 죄인들에게 감추고, 반짝이는 장신구와 교활한 꾀로 속이는 듯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죄의 대가는 죽음임을 안다. 따라서 그것은 정녕 그러하다. 죄는 죽음을 달라는 요청이자, 이 세상의 토대를 사랑만큼 확실하고 천국만큼 의지할 만하며 하느님만큼 강력하게 만들려는 소망이기 때문이다. 죄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이에게, 세상은 정녕 사랑으로부터 안전하다. 그리고 죄는 결코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이 창조하지 않으신 것이 그분의 창조물의 속성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것은 모든 면에서 하느님의 창조물과 반대되는 데 말이다.
51 죽음에 대한 "죄인들의" 소망이 생명에 대한 하느님의 뜻만큼 강할 수는 없다. 또한 하느님이 만들지 않으신 세상의 기반이 천국만큼 견고하고 확실할 수도 없다. 지옥과 천국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뜻이 아닌 것이 변할 수 없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느님의 뜻 외에 그 무엇이 불변일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뜻 자체 외에 그 무엇이 그 속성을 공유할 수 있겠는가? 어떤 소망이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일어나 불변일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뜻 외에 그 무엇도 불변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다면, 이 수업은 결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네가 믿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직시하기만 한다면, 네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52 우리가 전에 말했던 것으로 돌아가서 보다 주의 깊게 생각해 보자. 하느님이 미치셨거나 이 세상이 광기가 판치는 곳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느님의 생각들 가운데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이치에 맞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세상이 참이라고 믿는 것 가운데 하느님의 마음 안에서 조금이라도 의미가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이치에 맞지 않고 의미도 없는 것은 정신 이상이며, 광기인 것은 결코 진리일 수 없다. 여기에서 아주 가치 있게 여기는 단 하나의 믿음이라도 참이라면, 하느님이 이제껏 품으신 모든 생각은 환상이다. 그리고 하느님의 생각들 가운데 단 하나라도 참이라면, 세상이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믿음은 거짓이며, 전혀 이치에 맞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네가 앞둔 선택이다. 이 선택을 다르게 보려 하지도 말고, 다른 것으로 왜곡하려 하지도 말라. 너는 오로지 이러한 결정만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네가 아닌 하느님의 몫이다.
53 세상이 옹호하는 단 하나의 가치라도 정당화하는 것은 아버지는 물론 너의 제정신도 부정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은 다르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이 일치되어 있기에,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을 창조한 생각을 생각한 마음과 공동 창조자가 되었다. 그가 만약 진리와 대립하는 단 하나의 생각이라도 믿기로 선택한다면, 그는 미쳐서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고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제정신은 아버지와 아들 모두에게서 떨어져 있을 것이다. 너는 정녕 이것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이 그것이 취하는 형식에 달려있다고는 생각하지 말라.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제정신이라고 생각하거나, 세상의 어떤 생각이든 정당하다고 생각하거나, 세상이 어떤 형식이든 이성에 의해 유지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 참이라고 믿는 것이다. 죄는 실제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정신 이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죄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변함없는 것이 만약 진리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면, 누가 그것을 창조할 수 있겠는가?
54 성령은 네가 보는 세상의 토대 전체를 다른 것으로 바꿀 권능을 가졌다. 그것은 정신 이상이 아닌 토대로서, 그 위에서 제정신인 지각이 자리를 잡고, 다른 세상이 지각될 수 있다. 그것은 그 안에서 아무것도 상충하지 않으며, 따라서 하느님의 아들을 제정신과 기쁨으로 인도할 토대다. 그 토대 안의 그 무엇도 죽음과 잔인함, 분리와 다른 점들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로 지각되며, 그 누구도 잃지 않기에 모든 이가 얻기 때문이다.
55 네가 믿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필요조건에 견주어 검사해 보라. 이 하나의 요구사항을 충족하는 것은 모두 믿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라. 다른 것은 모두 그렇지 않다. 사랑이 아닌 것은 죄며, 사랑과 죄는 서로를 정신 이상이고 무의미하다고 지각한다. 자신의 토대가 제정신으로 가는 길이라고 믿는 죄인에게, 사랑은 완전히 미쳤다고 지각되는 세상의 토대다. 그러나 사랑이 보기에 죄는 마찬가지로 정신 이상이며, 사랑의 온유한 눈은 광기를 지나 진리에 평화로이 내려앉을 것이다. 죄와 사랑은 각자 변할 수 없는 세상 하나를 본다. 그것들은 네 정체의 변함없고 영원한 진리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세상은 아버지와 아들의 정체가 분명 무엇인지에 대한 관점 하나를 반영하며, 그럼으로써 그러한 관점을 의미 있고 제정신인 것으로 만든다.
56 너의 특별한 기능은 하느님이 정신 이상이 아니라는 사실이 너에게 가장 이치에 맞고 의미 있어 보이는 특별한 형식이다. 그 내용은 같다. 그 형식은 너의 특별한 필요와 네가 있다고 생각하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 맞춰져 있는데, 그곳에서 너는 시간과 공간은 물론 너를 제한한다고 믿는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하느님의 아들은 시간이나 장소, 혹은 하느님이 뜻하지 않으신 어떤 것에 의해서도 묶여있을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만약 하느님의 뜻을 광기라고 본다면, 정신 이상자들이 제정신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정신의 형식을 특별히 선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정신 이상자들에 의해 내려질 수 없다. 그들의 문제는, 그들의 선택이 자유롭지 않으며, 이성과 함께 이치에 맞게 내려지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57 정신 이상자들에게 구원을 맡기는 것은 미친 짓일 것이다. 하느님은 미치지 않으셨으므로, 당신만큼이나 제정신인 성령에게 보다 제정신인 세상을 세우도록 명하셔서 정신 이상을 자신의 구원으로 선택한 모든 이가 보게 하셨다. 성령은 각 사람에게 가장 알맞은 형식이 무엇인지 선택할 수 있다. 그 형식은 그가 보는 세상을 공격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용히 그 속으로 들어가 그가 미쳤음을 보여준다. 성령은 단지 대안을 가리켜 보일 뿐이다. 그것은 바로 그가 전에 본 것,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이라고 인식하는 것, 그가 전에 이해한다고 생각한 것을 달리 보는 방법이다.
58 이제 그는 이것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그 대안의 형식은 그가 부정하거나 간과할 수 없고, 전혀 지각하지 못할 수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에게 특별한 기능은, 그가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지각하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대안임이 증명됨에 따라 점점 더 원한다고 지각하도록 고안되었다. 이 시점부터 그의 죄 많음과 그가 세상에서 보는 모든 죄는 그에게 점점 더 적은 것을 제공한다. 마침내 그는 죄가 그의 제정신을 대가로 치르게 하고, 제정신이 될 모든 희망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광기에서 벗어날 탈출구도 없이 남겨지지는 않았다. 그는 모든 이의 탈출에서 특별한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당신의 아들을 보지 못하고 부주의하게 지나치실 수 없듯이, 그는 더 이상 평화를 바라면서 특별한 기능 없이 바깥에 남겨질 수 없다.
59 하느님의 사랑 외에 과연 무엇이 의지할 만한가? 하느님 외에 과연 어디에 제정신이 머물 수 있는가? 하느님을 대변해 말하는 성령은 이것을 그가 너를 위해 특별히 선택한 대안 속에서 보여줄 수 있다. 네가 이것을 기억하여 깊고 깊은 비탄에서 벗어나 완벽한 기쁨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계획에서 너에게 맡기신 기능을 받아들여라. 그 계획은 당신의 아들들에게 지옥과 천국은 같지 않고 다르며, 천국에서 그들은 모두 똑같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천국에는, 천국을 지옥으로 지옥을 천국으로 만들어버렸을 다른 점들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정신 이상이 가능하기라도 했다면 말이다.
60 누군가가 잃는다는 믿음 전체는 단지 하느님이 정신 이상일 수밖에 없다는 숨은 교리를 반영할 뿐이다. 이 세상에서 너는 다른 사람이 잃기 때문에 얻는 듯이 보인다. 이것이 만약 참이라면, 하느님은 과연 미치셨도다! 하지만 이 믿음은, "죄는 실제며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보다 근본적인 교리의 한 형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네가 조금이라도 얻을 때마다 다른 누군가는 잃어야 하고, 정확하게 같은 양의 피와 고통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악이 승리하고, 너는 무엇을 얻든 죽음이라는 총체적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미치셨다고 믿는 자여, 이것을 찬찬히 직시하고 하느님이나 이것 중에 하나가 정신 이상이며 둘 다 그럴 수는 없음을 이해하라.
61 구원이란, 누군가가 얻더라도 그 누구도 잃을 수 없으며, 누군가가 얻는 자가 되려면 모든 이가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아이디어의 재탄생이다. 여기에서 제정신이 회복된다. 이 유일한 진리의 반석 위에, 하느님이 영원히 제정신이시라는 믿음이 완벽한 확신과 완벽한 평화 속에 놓여있을 수 있다. 이제 이성은 충족된다. 여기에서 모든 미친 믿음이 교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참이라면 죄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 근거한 반석으로서, 성령은 바로 이 반석에 서서 너의 특별한 기능이 일익을 담당하는 전체 계획에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제시한다. 바로 이곳에서, 너의 특별한 기능은 전체의 기능을 공유하는 까닭에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62 모든 유혹은 단지 하느님이 정신 이상이 되셔야 네가 제정신이 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으며, 너와 하느님의 목적은 양립할 수 없으므로 둘 중 하나가 광기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미친 믿음에 불과하다. 이를 기억하라. 죽음은 생명을 요구하지만, 생명은 어떤 대가를 치러야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대가로 고통에 시달릴 수 없다. 구원이 하느님의 뜻인 이유는, 네가 그 뜻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너는 그 뜻을 너 혼자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인 자아를 위해 공유한다. 그 자아는 상실을 겪을 수 없다. 그가 만약 상실을 겪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그의 아버지의 상실이겠지만, 아버지 안에서는 어떤 상실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진리기 때문에, 제정신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