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스트
    • 오늘의 텍스트
    • 워크북
    • 교사용 지침서
    • 공지사항
    • 기적의 향기 책 구매
    • 기적수업 첫걸음
    • 기적수업 핵심 주제
    • 용서와 치유 나눔
    • 기적수업과 함께하는 여정
    • 자주 묻는 질문과 답
    • 기적수업 용어설명
    • 내 서재
피드백 보내기
  • 카페
  • 유튜브

Contact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테마 색상
다크 모드

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25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4분

제25장 치료법

Ⅸ. 구원의 원리

63 성령은 네가 드리는 모든 것을 너의 구원을 위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네가 쥐고 있는 것은 사용할 수 없다. 성령은 너의 용의 없이는 그것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가져간다면, 너는 성령이 너의 뜻을 꺾고 그것을 강탈해 갔다고 믿을 것이며, 따라서 그것들 없이 있는 것이 정녕 너의 뜻임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전적인 용의로 드릴 필요는 없다. 네가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성령이 필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령은 다음을 필요로 한다: 너는 그것을 혼자서 간직하기보다는 성령이 가져가기를 원하고, 무엇이 그 누구에게도 상실을 가져다주지 않는지 모른다는 점을 인식한다. 네가 얻기 위해 아무도 잃을 수 없다는 아이디어에 이만큼은 덧붙일 필요가 있다. 그 이상은 필요 없다.

64 이것이 바로 구원이 필요로 하는 유일한 원리다. 네가 구원을 확고하고 흔들림 없이 믿거나, 그것에 반대되는 어떤 믿음으로도 공격하지 말아야 할 필요는 없다. 너에게는 확고한 충성심이 없다. 그러나 구원된 자에게는 구원이 필요 없음을 기억하라. 나는 너에게, 여전히 자기 자신에 맞서 분열되어 있는 자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을 행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마음 상태에서도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는 약간의 믿음을 가져라. 너에게 다만 약간의 믿음만 요구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라. 여전히 죄를 믿는 자들에게 단지 약간의 믿음 외에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그들이 천국에 대해, 그리고 구원받은 자들의 정의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65 구원 안에는 세상이 전혀 알지 못하는 종류의 정의가 있다. 세상은 정의와 복수를 같다고 본다. 죄인은 정의를 단지 자신에 대한 처벌이라고 보며, 다른 사람이 대신 받을 수는 있어도 결코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죄의 법칙은 희생자를 요구하며, 그것이 누구인지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 대가는 반드시 죽음이어야 하며,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라 정신 이상이다. 하지만 사랑이 증오를 의미하고, 죽음이 영원과 무시간성과 생명에 대한 정복과 승리로 보이는 곳에서, 과연 정의를 제정신으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

66 너는 정의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 여전히 묻고 그 답을 배울 수 있다. 정의는 모든 것을 같은 식으로 바라본다. 한 사람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은 갖지 말아야 한다면, 그것은 정의롭지 않다. 그것은 어떤 형식을 취하든 복수기 때문이다. 정의는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모든 희생은 죄를 보존하고 간직하기 위해 치러지기 때문이다. 희생은 죄의 대가로 치러지지만, 전체 대가는 아니다. 나머지 대가는 다른 사람에게서 거둬들여, 네가 포기하지 않고 간직하려는 모든 것을 "속죄"하기 위한 너의 작은 대가 옆에 나란히 놓인다. 따라서 네가 부분적으로 희생자로 보이지만, 다른 누군가가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하는 희생자다. 치러야 할 전체 대가에서 그가 차지하는 부분이 더 크고, 너의 부분은 적다. 눈이 멀어버린 정의는 지불받는 것에 만족할 뿐, 누가 지불했는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정의일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이런 것에 대해 모르신다. 하지만 하느님은 정의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아신다. 하느님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시기 때문이다.

67 복수는 하느님의 마음에 이질적인 것이다. 하느님은 정의에 대해 아시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것은 공평한 것이지 복수하는 것이 아니다. 공평하면서 동시에 복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각자는 다른 것과 모순되며, 그것의 실재성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특별성을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정의를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령이 만약 어떤 죄인을, 그가 짓지 않은 죄 때문에, 하지만 그 스스로 지었다고 생각하는 죄 때문에 정죄한다면, 과연 성령을 정의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성령이 만약 처벌의 아이디어에 사로잡힌 자에게 혼자 힘으로 그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참이 아님을 지각하라고 요구한다면, 과연 정의가 어디에 있겠는가? 죄가 의미 있다고 여전히 믿는 자가 성령의 정의를 이해하기는 아주 어렵다.

68 그는 분명 성령이 자신처럼 혼동하며, 따라서 정의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수반할 수밖에 없는 복수를 피할 수 없다고 믿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성령을 두려워하면서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분노"를 지각한다. 그는 성령이, 하느님의 진노한 손이 천국의 "불"에서 떼어낸 번개를 넘겨받아 자신을 쳐죽이지 않을 것이라고 신뢰할 수도 없다. 그는 천국이 지옥이라고 믿으면서 사랑을 두려워한다. 그는 자신이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짙은 의혹에 빠져서 두려움에 떤다. 그의 세상은 죄의 안정성에 의존한다. 그는 자신이 이해하고 사랑하는 복수보다는, 하느님이 정의라고 아시는 것의 "위협"이 자신과 자신의 세상에 더 파괴적이라고 지각한다.

69 따라서 그는 죄를 잃는 것이야말로 저주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령이 마치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복수를 실행에 옮기려고 구원자요 친구로 위장해서 사악한 계략과 속임수로 저 위에서 파견된 지옥의 메신저라도 되는 양, 성령에게서 도망친다. 그에게 성령은 단지, 천사의 망토 속에 숨어 속이려 드는 악마가 아니겠는가? 성령이 그에게 제시하는 탈출구는 단지 천국문처럼 보이는 지옥문이 아니겠는가?

70 그는 처벌을 요구하지만, 그에게는 그가 전적으로 결백함을 아는 재판관이 있다. 정의는 그러한 자를 처벌할 수 없다. 성령은 정의 안에서 그를 석방하고, 그가 받아 마땅한 그 모든 영광을 그에게 부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가 공평하지 않은 탓에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여 자기 자신에게 부정했던 것이다. 죄인들에게, 사랑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정의가 사랑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무언가를 나타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71 따라서 그들은 사랑을 약한 것으로, 복수를 강한 것으로 지각한다. 사랑은 판단이 그 곁을 떠났을 때 패배했으며, 자신을 처벌에서 구해주기에는 너무도 약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사랑 없는 복수는 사랑에서 분리되고 떨어져 나감으로써 힘을 얻었다. 사랑이 정의와 활력과 구해줄 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무력하게 서있는 동안, 이제 복수 외에 무엇이 그들을 돕고 구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이 참이라고 생각하는 너에게 사랑이 무엇을 요청할 수 있겠는가? 정의와 사랑 안에 있는 성령이 과연, 네가 줄 것을 많이 갖고 있다는 혼동을 믿을 수 있겠는가? 너에게 성령을 대단히 신뢰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네가 보는 것은 성령이 제공하는 것이고, 네가 인식하는 것은 네가 너 자신에게 줄 수 없던 것이었다는 점만 신뢰하라.

72 성령은 하느님의 정의 안에서 네가 마땅히 받아야 할 모든 것을 인식하지만, 너 스스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도 이해한다. 성령의 특별한 기능은 결백한 자들이 받아 마땅한 선물을 너에게 건네주는 것이다. 그렇게 네가 받아들이는 모든 선물은 너뿐만 아니라 성령에게도 기쁨을 안겨준다. 성령은 네가 받아들이는 선물 하나하나가 천국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사랑스러운 정의가 하느님 아들의 몫으로 알고 있는 것을 그가 받을 때, 하느님이 크게 기뻐하신다. 사랑과 정의는 다르지 않다. 사랑과 정의는 똑같기 때문에, 자비가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서 하느님의 아들에게 그 자신의 죄를 용서할 권능을 준다.

73 모든 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 그에게 어찌 무엇인들 주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약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녕 그의 내면에 있는 그 모든 거룩함을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평하게 대하는 것이리라. 그가 그것을 아무리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말이다. 하느님은 정의롭지 못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신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의 죽음을 구하면서 그의 가치를 전혀 볼 수 없는 자들이 그를 판단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하느님의 아들을 위해 증언할 어떤 정직한 증인을 소환할 수 있겠는가? 그의 생명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위해 탄원하려고 올 자가 과연 누가 있겠는가? 너는 그에게 어떤 정의도 부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정의가 이루어지도록 보장하셔서, 복수가 그의 합당한 몫이라고 믿으면서 네가 그에게 가하려는 그 모든 불공평함으로부터 보호하실 것이다.

74 특별성이 죄의 대가가 치러지는 한 누가 그 대가를 치르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듯이, 성령은 결백함이 목격되고 인식되는 한 마침내 누가 결백함을 바라보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 진정으로 본다면, 단 한명의 증인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정의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 성령은 각 사람에게, 정의가 사랑에게 돌아와 그곳에서 충족되도록 바로 그 한 명의 증인이 될 것인지 묻는다. 성령이 배정하는 각각의 특별한 기능은 단지 이것, 즉 사랑과 정의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각 사람이 배우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정의는 서로 연합함으로써 둘 다 강화된다. 사랑이 없다면 정의는 편협하고 약하다. 그리고 정의 없는 사랑은 불가능하다. 사랑은 공평하며, 원인 없이 징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원인이 있어 결백한 자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사랑은 복수가 아닌 정의 안에서 실수를 교정한다. 결백한 자에게 복수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75 하느님의 아들에게 복수하는 것은 결코 정당한 근거가 없음을 이해한다면, 너는 사랑과 정의 둘 다의 권능에 대한 완벽한 증인이 될 수 있다. 모든 상황에서 이것이 참임을 지각할 필요는 없다. 또한 네가 세상에서 하는 경험에 기댈 필요도 없다. 그런 경험은 단지 너의 내면에서 정말로 일어나고 있는 그 모든 것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너에게 필요한 이해는 너에게서 나오지 않고, 더 큰 자아로부터 나온다. 그 자아는 너무도 위대하고 거룩해서 자신의 결백함을 의심할 수 없다. 너의 특별한 기능은 너의 결백함을 공유하는 자아에게 보내는, 너를 향해 미소를 지어달라는 요청이다. 그 자아의 이해가 곧 너의 이해가 될 것이다. 이로써 성령의 특별한 기능이 완수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은 그의 죄가 아닌 그의 죄 없음에 대한 증인을 찾았다. 네가 단순한 정의를 받기 위해 성령께 드려야 할 것은 얼마나 적은지!

76 공정함이 없다면, 정의는 없다. 특별성이 어찌 정의로울 수 있겠는가? 판단하지 말라. 너 또한 비참한 죄인이라서가 아니라, 너는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는 모든 이에게 똑같다는 것을 특별한 자들이 어떻게 정말로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한 사람에게 주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는 것은 두 사람 모두에게 불의일 것이다. 성령의 눈에 그들은 동등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두 사람 모두에게 똑같은 유산을 주셨다. 더 많이, 혹은 더 적게 가지려는 자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 다른 사람의 몫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이 박탈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판단하는 자로부터 빼앗아 오려 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망각하여 공정함을 잃었고, 이제 다른 이의 권리를 공평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

77 너에게는 온 우주에 대한 권리가 있다. 또한 하느님이 당신의 거룩한 아들을 위해 명하신 대로 완벽한 평화를 누리고, 죄의 모든 결과에서 완전히 구원되며, 모든 면에서 기쁘고 완전한 생명을 영원히 누릴 권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 아는 유일한 정의며, 성령이 땅에 가져다주는 모든 것이다. 너의 특별한 기능은 다른 무엇도 아닌 완벽한 정의만이 너를 위해 승리할 수 있으며, 너는 모든 형식의 복수로부터 안전함을 보여준다. 세상은 속이지만, 하느님의 정의를 세상 버전의 정의로 대체할 수는 없다. 오로지 사랑만이 정의로우며, 오로지 사랑만이 정의가 하느님의 아들에게 부여할 수밖에 없는 것을 지각할 수 있다. 사랑이 결정하게 하라. 그리고 네가 불공평함에 빠져서, 하느님의 정의가 너에게 배정한 것을 너 자신에게서 박탈할까 봐 두려워하지 말라.

제25장 치료법 - Ⅷ. 선고를 바꾸기제25장 치료법 - Ⅹ. 천국의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