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네 안에는 이 세상 전체가 잊혔고, 죄와 환상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장소가 하나 있다. 네 안에는 시간이 이미 떠나갔고, 영원의 메아리가 들리는 장소가 하나 있다. 너무나 고요한 안식처가 하나 있어서, 그곳에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을 기쁘게 하려고 천국으로 오르는 찬가 소리만 들린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머물러 사는 곳에서, 그들이 모두 기억된다. 그들이 있는 곳에, 천국이 있고 평화가 있다. 그들의 거처를 네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너의 정체는 그들 안에 머물러 살며, 그들이 있는 곳에 네가 영원히 있기 때문이다.
32 천국의 변함없음이 네 안에 있다. 그것은 너무도 깊은 내면에 있어서, 이 세상의 것들은 그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채 단지 지나칠 뿐이다. 끝없는 평화가 고요한 가운데 무한대로 펼쳐져서 너를 그 보드라운 품에 다정히 감싸고 있다. 그 평화는 자신의 창조주의 능력 안에서 너무도 강력하고 조용하고 잔잔하기에, 그 무엇도 너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거룩한 아들을 침범할 수 없다. 하느님의 아들 곁에서 기다리면서 그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기뻐하려는 너에게, 성령은 바로 이러한 역할을 맡긴다. 그는 너의 일부며 너는 그의 일부다. 그는 네가 그에게서 보는 어떤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에게 단지 그의 내면에 머물러 사는 변함없고 영원한 것들만 받아들이라고 요청할 뿐이다. 바로 그곳에 너의 정체가 있기 때문이다. 너의 내면의 평화는 단지 그의 내면에서만 발견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네가 그에게 베푸는 각각의 사랑의 생각은, 너를 영원한 평화와 끝없는 기쁨에 대한 자각으로 더 가까이 데려다준다.
33 하느님의 거룩한 이 아들은 너를 닮았다. 그는 너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거울이며, 아버지의 사랑을 너에게 부드럽게 일깨워 주는 자다. 그 사랑으로 그가 창조되었으며, 그 사랑은 너의 내면에 머물러 살듯이 그의 내면에도 여전히 머물러 산다. 아주 고요해져서 그의 내면에서 하느님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으로 하여금 너에게 그의 기능이 무엇인지 말해주게 하라. 그는 너를 온전하게 하려고 창조되었다. 오로지 완전한 자들만이 하느님의 완전하심의 일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완전하심이 너를 창조하였다.
34 아버지가 너에게 청하시는 선물은 단지, 모든 창조물 안에서 아버지가 너에게 주시는 선물의 빛나는 영광을 보라는 것뿐이다.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의 완벽한 선물을 보라. 그의 내면에서 아버지가 영원히 빛나시고, 창조물 전체가 그의 것으로 그에게 주어졌다. 그가 창조물 전체를 가졌기 때문에, 그것이 너에게 주어졌다. 그러니 그의 내면에 창조물 전체가 놓여있는 곳에서, 너의 평화를 보라. 너를 감싼 조용함은 그의 내면에 머물러 살며, 바로 이 조용함으로부터 너희가 순결하게 손잡고 있는 행복한 꿈이 일어난다. 그것은 고통의 꿈속에서 움켜쥔 손이 아니다. 그 손은 칼을 쥐고 있지 않다. 그 손은 세상의 헛된 환상을 전부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그 손은 비어있기에, 그 대신 형제의 손을 맞아들인다. 바로 그 안에 완전함이 놓여있다.
35 네가 만약 용서 너머에 놓여있는 영광스러운 목표를 안다면, 악의 손길이 아무리 가볍게 건드린 생각이라도 품고 있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을 축복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데려가도록 그 손을 인도할 수 있는 마음 안에 하느님이 주지 않으신 것을 품고 있는 대가가 얼마나 큰지, 너는 이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아버지가 당신의 집으로서 창조하신 그와 친구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하느님이 그를 당신께 합당한 자로 여기시거늘, 너는 그를 증오의 손으로 공격하려는가? 피로 물든 손으로 천국을 건드린 자가 천국의 평화를 찾기를 바랄 수 있겠는가? 네 형제는 자신이 죽음의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를 믿지 말라. 그 대신에, 단지 너의 손을 내어줌으로써 그를 해방할 수 있는 네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배워라.
36 네 형제가 너의 가증스러운 적이 아니라 구원자인 꿈이 너에게 주어졌다. 네가 그의 모든 죽음의 꿈을 용서한 꿈이 너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분리되어 꾸는 증오의 악몽 대신에 네가 그와 공유하는 희망의 꿈이다. 이 꿈을 공유하는 것이 왜 그리도 어려워 보이는가? 성령이 꿈에게 꿈의 기능을 부여하지 않는 한, 꿈은 증오를 위해 만들어져서 계속해서 죽음을 섬길 것이기 때문이다. 꿈이 취하는 모든 형식은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불러온다. 죽음의 군주를 섬기는 자들이 분리된 세상에서 그를 숭배하려고 왔다. 그들은 각자 죽겠다는 자신의 오랜 약속을 지키려고 작디작은 창과 녹슨 칼을 들고 있다.
37 이러한 것이 바로 모든 꿈에 내재하는 두려움의 핵심으로서, 그것은 꿈에서 다른 기능을 보는 성령이 사용하지 못하도록 따로 간직되었다. 꿈은 공유될 때 공격과 분리의 기능을 잃는다. 비록 모든 꿈은 공격과 분리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말이다. 하지만 꿈의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는 변화와 개선의 희망이 있다. 이곳은 변함없음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사실에 참으로 기뻐하고, 이 세상에서 영원한 것을 구하지 말자. 용서하는 꿈은 너 자신 바깥에 있는 세상을 꿈꾸는 것에서 물러나는 수단으로서, 마침내 모든 꿈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평화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