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너 자신의 밖에서 구하지 말라. 너는 실패할 것이며, 우상이 하나씩 무너질 때마다 울게 될 것이다. 천국이 없는 곳에서는 천국을 발견할 수 없고, 천국 외의 곳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다. 너는 하느님이 부르실 때 우상들을 숭배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하느님을 대신해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대체하는 어떤 응답도 하느님의 응답이 선사하는 행복을 찾게 해주지 않는다. 너 자신의 밖에서 구하지 말라. 너의 모든 고통은 단지, 네가 원하는 것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안다고 우기면서 그것을 헛되이 추구하는 데서 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거기에 없다면 어쩔 것인가? 너는 옳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행복이 어디에 깃들어 있는지 들은 것에 기뻐하고, 더 이상 다른 곳에서 구하지 말라. 너는 실패할 것이다. 그러나 이제 너는 진리를 알 수 있고, 너 자신의 밖에서 진리를 구하지 않을 수 있다.
44 이곳에 오는 자는 누구나, 자신에게 행복과 평화를 안겨줄 무언가가 자신의 바깥에 있다는 희망을, 혹은 얼마간의 남아있는 환상을, 혹은 얼마간의 꿈을 여전히 품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그의 내면에 있다면, 이것은 그럴 수 없다. 따라서 그는 이곳에 옴으로써 자신에 대한 진리를 부정하고 모든 것보다 더 많은 무언가를 구한다. 마치 모든 것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서 나머지 모두가 없는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 듯이 말이다. 그는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찾아내서 자신을 완성해 줄 것을 가져오라는 목적을 몸에 부여한다. 따라서 그는 자신이 자신의 정체가 아니라고 믿으면서, 발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구하여 정처 없이 떠돈다.
45 꾸물거리며 남아있는 환상은 그를 몰아붙여 천 개의 우상을 찾아내고도 그 뒤로 천 개를 더 구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우상이 그를 저버리겠지만, 예외가 하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죽을 것이며, 자신이 구하는 우상은 단지 자신의 죽음일 뿐임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상의 형식은 그 자신의 바깥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아들을 죽여서 자신이 그의 정복자임을 증명하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우상의 목적이다. 이것이 바로 우상에게 부여된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완수될 수 없는 역할이다.
46 몸의 개선이 주된 혜택으로 제시된 목표를 달성하려고 시도할 때마다, 너는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 그럴 때 너는 결핍에 시달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인데, 결핍은 곧 죽음이기 때문이다. 희생하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여 그것 없이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상실을 겪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포기를 통해, 생명이 포기된다. 너 자신의 밖에서 구하지 말라. 그러한 추구는 너의 내면이 온전하지 않으며, 네가 너의 참상을 바라보기 두려워서 너의 정체를 차라리 바깥에서 구하려 한다는 의미다.
47 우상들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그것들은 생명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명이 없는 것은 죽음의 표시다. 너는 죽으러 왔다. 그러니 네가 구하는 죽음의 표시를 지각하는 것 외에 무엇을 기대하고자 하는가? 모든 슬픔과 괴로움은 단지, 생명에 대한 서툰 모방품을 나타내는 우상을 발견했다는 메시지를 선포할 뿐이다. 생명이 없는 그것은 실제로는 죽음이지만, 실재한다고 여겨져서 살아있는 형식이 주어졌다. 하지만 모든 우상은 쇠약해지고 바스러지고 부패할 수밖에 없다. 죽음의 형식은 생명일 수 없으며, 희생된 것은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48 이 세상의 모든 우상은 내면의 진리가 네게 알려지지 못하게 하고, 네가 완성되고 행복해지려면 바깥에 있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꿈에 계속 충성을 바치게 하려고 만들어졌다. 평화를 찾겠다는 희망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하느님은 내면에 머물러 사시고, 너의 완성은 그분 안에 놓여있다. 어떤 우상도 하느님을 대신할 수 없다. 우상에게 기대지 말라. 너 자신의 밖에서 구하지 말라. 과거가 세상에 부여한 목적은 잊자. 그렇지 않으면 미래는 반드시 과거와 같을 것이며, 모든 우상이 차례로 너를 저버리고, 네가 모든 곳에서 죽음과 실망을 보는 일련의 우울한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9 이 모든 것을 바꿔서 끝없는 절망의 굴레처럼 보였던 것에 희망과 해방의 길을 열어젖히기 위해, 너는 단지 네가 세상의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결정하기만 하면 된다. 너는 세상에게 세상이 갖지 않은 목표를 부여하며, 그럼으로써 세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결정한다. 너는 내면에 있는 것과 우상들 사이에서 너의 정체를 갈라놓음으로써, 내면에 있는 것을 완성할 힘을 가진 우상들을 너의 바깥 장소, 세상 안에서 찾으려고 한다. 너는 정녕 너의 꿈들을 선택한다. 그것들은 너에게 주어진 것처럼 지각되지만, 사실 네가 소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의 우상들은 네가 시키는 것을 행하고, 네가 부여하는 힘을 갖는다. 그리고 너는 그 우상들의 힘을 네 것으로 갖기를 원하므로, 꿈속에서 그것들을 헛되이 좇는다.
50 하지만 잠든 마음속이 아니라면 과연 어디에 꿈이 있겠는가? 꿈이 과연 자신 밖으로 투사하는 그림을 실재화할 수 있겠는가? 나의 형제들이여, 시간을 절약하라. 시간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배워라. 너는 세상에서 우상들을 봄으로써 세상을 슬프고 병든 곳으로 만들었다. 이제 그러한 세상에서 우상의 종말을 재촉하라. 너희의 거룩한 마음은 하느님께 바치는 제단이며, 그분이 계시는 곳에는 어떤 우상도 머물러 살 수 없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다만 우상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뿐, 너의 실재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다. 그러나 너는 너의 실재를 가지고, 진리의 빛에 맞서 지켜야 하는 우상을 지어냈다. 그리고 온 세상은 이 우상을 보호하는 수단이 된다. 따라서 구원은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을 제공하는 듯이 보인다.
51 그렇지 않다. 구원은 죽음이란 없으며 오로지 생명만이 존재함을 증명하려 한다. 죽음을 희생하는 것은 아무것도 잃는 것이 아니다. 우상은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 하느님이 너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네게 일깨워 주시게 하고, 너 자신에 대한 우상들에게 바치는 깊은 절망의 노래로 하느님의 음성을 잠재우려 하지 말라. 너의 아버지 밖에서 너의 희망을 구하지 말라. 행복을 희망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