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성령을 반대하는 것은 곧 너 자신과 싸우는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성령은 너에게 단지 너의 뜻에 대해 말해줄 뿐이다. 성령은 너를 위해 말한다. 성령의 신성 안에는 단지 너의 신성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성령이 아는 모든 것은 단지 너의 앎으로서, 네가 성령을 통해 너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너를 위해 간직되었다. 하느님이 너에게 너의 뜻을 행하라고 청하신다. 하느님이 너와 결합하신다. 하느님은 당신의 왕국을 홀로 세우지 않으셨다. 천국 자체가 너의 뜻을 나타낼 뿐이며, 그곳에서 창조된 것들은 전부 너를 위한 것이다. 생명의 불꽃 중에 단 하나도 너의 흔쾌한 동의 없이, 네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창조된 것이 없다. 하느님이 이제껏 가지셨던 생각들 중에 단 하나도 너의 축복을 기다려 태어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느님은 너의 적이 아니시다. 하느님은 너에게 단지 당신을 "친구"라고 불러달라고 청하실 뿐이다.
34 너의 뜻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그것이 바로 자유다. 다른 어떤 것도 자유의 이름으로 불려야 할 만한 것이 없다. 네가 너의 뜻을 행하지 않는 한, 너는 자유롭지 않다. 하느님이 과연 당신의 아들을 그 스스로 선택한 것 없이 있게 하시겠는가? 당신의 완벽한 답을 너에게 주실 때, 하느님은 단지 네가 너의 뜻을 결코 잃지 않도록 확실히 해두셨을 뿐이다. 지금 그 답을 들어라. 그럼으로써 너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다시 일깨움을 받고, 너 자신의 뜻을 배울 수 있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스스로 원치 않는 것의 죄수가 되게 하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네가 자유롭기를 너와 함께 뜻하신다. 하느님께 반대하는 것은 너 자신에 반하는 선택을 내리는 것이며, 스스로 속박되어 있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35 너의 적을 다시 한번 바라보라. 그는 네가 사랑하는 대신에 증오하기로 선택한 자다. 그럼으로써 증오가 세상에 태어났고, 그럼으로써 세상에 두려움의 통치가 확립되었다. 이제 하느님의 음성이자 너의 음성이기도 한 성령을 통해, 증오심을 품고 두려움의 죄수가 되는 것, 죽음의 노예가 되는 것, 짧은 목숨을 가진 하찮은 존재가 되는 것은 너의 뜻이 아니라고 일깨워 주시는 하느님께 귀 기울여라. 너의 뜻은 한계가 없으며, 너의 뜻이 속박되는 것은 너의 뜻이 아니다. 네 안에 놓여있는 것은 모든 창조물이 탄생할 때 하느님과 결합했다. 너를 창조하셨고 너의 뜻을 통해 모든 것을 창조하신 하느님을 기억하라. 창조물 중에 단 하나도 너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들은 너의 뜻에 의해 태어났기 때문이다. 천국의 빛 중에 단 한 줄기도 너를 위해 빛나지 않는 빛이 없다. 그들은 너의 뜻에 의해 천국에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36 자유로워지기 위해 다만 너의 축복을 기다리는 세상에서, 네가 분노할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네가 만약 죄수라면, 하느님도 자유로우실 수 없으리라. 하느님이 그렇게도 사랑하시는 자에게 행해지는 것은 하느님께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너를 속박하기를 뜻하신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느님은 너를 당신과 더불어 우주의 공동 창조자로 만드셨다. 하느님은 단지 너의 뜻을 영원무궁토록 한계 없이 보존하려 하실 뿐이다.
37 이 세상은, 네가 스스로 자유롭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세상에 선사할 자유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너는 너에게 너의 뜻을 주신 분을 용서하기 전에는 세상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의 뜻에 의해 세상에 자유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그 거룩한 뜻을 너와 공유하시는 하느님과 떨어져서 자유로워질 수는 없다. 하느님이 너를 바라보시며 세상의 구원을 요청하신다. 너 자신의 구원에 의해, 세상이 치유되기 때문이다. 땅 위를 걷는 자라면 그 누구도 너의 결정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으로써 그는 죽음이 자신을 지배할 힘이 없음을 배운다. 그는 너의 뜻을 공유하듯이 너의 자유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를 치유하는 것은 정녕 너의 뜻이며, 그는 네가 그와 함께 결정했기 때문에 치유된다. 그리고 이제 하느님이 용서받으신다. 왜냐하면 네가 네 형제를 친구로 보겠다고 선택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