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실재세상이란 세상의 유일한 목적이 용서라고 보는 마음의 상태다. 두려움은 그 세상의 목표가 아니며,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세상의 목적이 된다. 용서의 가치가 지각되어 우상의 자리를 차지한다. 우상은 더 이상 추구되지 않는다. 우상이 주는 "선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규칙도 헛되이 정해지지 않으며,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왜곡돼서 두려움의 꿈에 맞춰 들어가라고 요구받지 않는다. 그 대신 창조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소망이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이해하려면 그것들을 먼저 용서해야 한다는 사실이 인식된다.
58 이곳에서는, 공격으로 이해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는, 공격으로 이해를 잃는다는 것이 분명하다. 죄의식을 목표로 추구하는 어리석음도 충분히 인식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우상을 원하지 않는다. 고통이 어떤 형식을 취하든 그 유일한 원인은 죄의식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죄의식의 헛된 매력에 유혹을 느끼지 않는다. 고통과 죽음을 더 이상 원하지도 않고 애써 추구하지도 않을 것으로 지각했기 때문이다. 자유의 가능성을 이해하고 환영했으며, 이제 자유를 얻을 수단을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은 희망의 전당이 된다. 세상의 유일한 목적은 행복의 희망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이러한 희망 바깥에 서있지 않다. 희망이 단순한 꿈 이상이 되려면 세상의 목적은 모든 이가 공유하는 목적이어야 한다는 믿음 안에서, 세상이 연합했기 때문이다.
59 천국은 아직 확실히 기억되지 않는다. 용서라는 목적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는 자신이 용서 너머로 갈 것이며, 그저 용서가 자신 안에서 완성될 때까지만 남아있는 것임을 확신한다. 그에게는 이것 외에 다른 어떤 소망도 없다. 그리고 두려움은 힘을 잃었다. 그는 목적에 있어서 자기 자신과 일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내면에 행복의 희망을 너무도 확실하고 한결같이 품고 있어서, 발을 가까스로 땅에 댄 채 잠시만 더 머물면서 기다릴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이가 손을 맞잡고 모든 가슴이 일어나 그와 같이 갈 준비가 될 때까지 기꺼이 기다린다. 그럼으로써 그는 모든 용서를 뒤로하고 떠날 단계를 위한 준비가 되기 때문이다.
60 마지막 단계는 하느님이 취하신다. 완벽한 아들을 창조하시고 그와 더불어 당신의 부성을 공유할 수 있던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천국 밖의 그 누구도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곧 천국 자체기 때문이다. 실재세상의 목적조차도 여전히 창조와 영원 아래에 있다. 하지만 두려움은 사라졌다. 실재세상의 목적은 우상 숭배가 아닌 용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국의 아들은 이제 자기 자신이 될 준비가 되었으며, 또한 하느님의 아들은 아버지가 이해하시는 모든 것을 알며 그것을 그분과 더불어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을 기억할 준비가 되었다.
61 실재세상은 여전히 이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것은 하느님 자신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목적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공유되고 완벽하게 성취된 것이다. 실재세상은 마음이 우상을 여전히 지각하기는 하지만 원하지는 않을 때 우상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 배운 상태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어디에도 없고, 아무런 목적도 없음을 이해했을 때, 마음은 기꺼이 우상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제야 비로소 죄의식과 죄를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2 이와 같이 실재세상의 목적이 부드럽게 의식으로 들어와, 죄와 죄의식이라는 목표를 대체한다. 그리고 너 자신에 대한 이미지와 너의 정체 사이에 서있던 모든 것을 용서가 기쁘게 씻어낸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자신의 것을 되찾게 하기 위해 아들을 다시 창조하실 필요가 없다. 네 형제와 너 자신 사이의 간격은 결코 거기에 없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은 자신이 창조될 때 알았던 것을 다시 알 것이다.
63 형제들이 두려움의 세상에서 하나의 목적으로 결합할 때, 그들은 이미 실재세상의 가장자리에 서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여전히 뒤를 돌아보면서 자신이 원하는 우상을 본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길은 우상에서 확실히 멀어져 실재를 향하게 되었다. 서로의 손을 잡았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의 손을 잡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손잡은 그리스도를 바라볼 것이다. 그리스도의 얼굴을 먼저 바라본 다음에야 아버지가 기억된다. 하느님의 아들이 용서를 넘어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기 전에는, 아버지는 기억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이 먼저 받아들여질 것이며, 이어서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하나라는 앎이 올 것이다.
64 네가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지 인식했을 때, 두려운 세상의 좁은 경계선을 건너가는 발걸음은 얼마나 가볍고 편안한지! 너의 손 안에, 네가 완벽한 확신 속에 두려움을 영원히 뒤로하고 곧장 걸어가 천국 문에 신속히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네가 손잡고 있는 그리스도는 다만 네가 그와 결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네가 왔거늘, 그가 과연 너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길을 보여주기를 미루겠는가? 아버지의 사랑이 그에게 머물 듯이 확실하게, 그의 축복은 너에게 머문다. 그리스도는 네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에게 감사하고 있다. 너는 그가 사슬을 떨치고 일어나 너와 함께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65 오랜 증오가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와 함께 모든 증오와 두려움이 사라진다. 더 이상 뒤돌아보지 말라. 네 앞에는 네가 항상 온 마음으로 원했던 모든 것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포기하라! 그러나 희생하려고 포기하지는 말라. 너는 결코 세상을 원하지 않았다. 네가 여기서 구한 행복 중에 너에게 고통을 안겨주지 않은 것이 있었는가? 어떤 만족한 순간이 괴로움의 동전으로 두려운 대가를 치르고 얻지 않은 것인가? 기쁨에는 대가가 없다. 기쁨은 너의 신성한 권리며, 값을 치르고 얻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정직하게 너의 길을 재촉하고, 네가 여기서 경험한 것을 돌이키며 속지 말라. 너의 경험은 혹독한 대가와 기쁨 없는 결과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66 정직하게 보지 않으려면 뒤돌아보지 말라. 우상이 유혹하거든, 다음에 대해 생각해 보라:
67 우상이 너에게 죄의식이라는 "선물" 외에
다른 것을 가져다준 적은 결코 없었다.
단 하나의 선물도 고통을 대가로 얻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그 대가를 너 혼자 치른 적도 없었다.
68 그러니 네 형제를 자비롭게 대하라. 그도 너와 마찬가지로 대가를 치를 것임을 기억하면서, 경솔하게 우상을 선택하지 말라. 네가 뒤돌아볼 때, 그가 지체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네가 그리스도의 자애로운 손을 잡고 있음을 지각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앞을 보라. 두려움 때문에 두근거리는 가슴이 아닌, 희망으로 고동치는 행복한 가슴으로 확신 속에 걸어라.
69 하느님의 뜻은 서로 손을 맞잡은 자들 안에 영원히 놓여있다. 서로 결합하기 전까지, 그들은 하느님을 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로 결합하여 하나의 목적을 공유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뜻이 하나임을 자유로이 배울 수 있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그들의 의식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하느님의 뜻은 단지 그들 자신의 뜻임을 오랫동안 잊고 있을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