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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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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31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5분

제31장 구원의 단순성

Ⅴ. 자아 개념과 진정한 자아

43 세상의 배움은 세상의 현실에 맞춰 조정된 자아 개념 위에 세워져 있다. 그 개념은 세상과 잘 맞는다. 그것은 그림자와 환상의 세상에 어울리는 이미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아 개념은 자신의 집에 있듯이 편히 걸어 다니며, 자아 개념이 보는 대상은 자아 개념과 하나다. 자아 개념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배움이 있는 이유다. 어떤 자아도 없이 와서 살아가면서 자아를 하나 만드는 것, 이것이 세상의 배움이 지향하는 목적이다. 그리고 너는 "성년"에 도달할 때까지 자아 개념을 완성해서, 세상의 요구와 하나가 되어 대등한 조건으로 세상을 만난다.

44 자아 개념은 네가 만든다. 그것은 너 자신을 전혀 닮지 않았다.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너의 실재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상이다. 세상이 가르치려는 자아 개념은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자아 개념은 두 가지 목적을 섬기려고 만들어지지만, 마음은 그중 하나만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목적은 순결한 얼굴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행동으로 드러나는 측면이다. 이 얼굴은 웃고 매력적이며 심지어 사랑하는 듯이 보인다. 그것은 동료들을 찾아다니고, 때로는 고통받는 자들을 동정심으로 바라보며, 어떤 때는 위로해 주기도 한다. 그 얼굴은 악한 세상에서 자신이 선하다고 믿는다.

45 이 측면은 점점 분노에 휩싸일 수 있다. 세상은 사악하며, 순결한 자가 받아 마땅한 사랑과 보호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얼굴은 관대하고 선하고 싶어 하는 자들을 세상이 부당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는 수시로 눈물에 젖는다. 이 측면은 결코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일 백 가지의 사소한 일들이 이 측면의 순결함을 자잘하게 공격하여 짜증스럽게 만들다가, 마침내 대놓고 모욕하고 욕설을 퍼붓게 만든다.

46 자아 개념이 너무도 자랑스럽게 뒤집어쓰고 있는 순결한 얼굴은 자기 방어를 위해 공격을 용인할 수도 있다. 세상이 무방비 상태의 순결함을 가혹하게 대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 아닌가? 자신에 대한 그림을 만드는 이는 누구나 이러한 얼굴을 결코 빠트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이러한 얼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측면은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세상의 배움이 겨냥하는 것은 바로 이 다른 측면이다. 바로 이곳에 세상의 "현실"이 자리잡고 있으면서 우상을 지속시키기 때문이다.

47 순결한 얼굴 아래에, 자아 개념이 가르치게 되어있는 레슨이 하나 있다. 그것은 끔찍한 전치와 두려움에 대한 레슨이다. 그 레슨은 너무도 파괴적이라서, 그 위에서 웃고 있는 얼굴은 자신이 감추는 배반을 지각하지 않도록 눈을 영원히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어야 한다. 그 레슨은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네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렸고, 그게 바로 나다. 너는 나를 바라볼 때 나의 정체 때문에 정죄받는다." 이러한 자아 개념에게 세상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준다. 그것은 세상의 길이 안전하게 보존되고, 그 길을 걷는 자들이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보장하기 때문이다.

48 바로 여기에 네 형제가 영원히 정죄받도록 보장하는 핵심적인 레슨이 있다. 이제 너의 정체는 그의 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용서도 가능하지 않다. 그가 무엇을 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너의 손가락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이 그를 집요하게 가리키며 고발하기 때문이다. 그 손가락은 너도 가리키지만, 이것은 순결한 얼굴 아래의 자욱한 안개 속에 훨씬 더 깊이 보관되어 있다. 이 가려진 지하 저장소에 그와 너의 모든 죄가 보존되어 어둠 속에 간직되어 있다. 빛은 분명 죄가 잘못임을 보여주겠지만, 어둠 속에서 죄는 잘못으로 지각될 수 없다. 너는 너의 정체 때문에 비난받을 수 없으며, 그것이 너에게 행하게 하는 것들을 바꿀 수도 없다. 그리고 너희 둘은 서로에게 지은 죄의 상징으로서, 자신이 가증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에 대해 자신의 형제를 조용히, 하지만 그칠 줄 모르는 집요함으로 정죄하고 있다.

49 개념은 학습된다. 개념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배움이 없다면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념은 본래 주어진 것이 아니며, 만들어져야 한다. 단 하나의 개념도 진짜가 아니며, 대부분의 개념은 두려움에서 태어난 증오와 왜곡으로 한껏 들뜬 상상물에서 나온다. 개념이란 단지 개념을 만드는 자가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는 생각이 아니겠는가? 개념이 세상을 유지한다. 그러나 개념을 사용하여 세상이 실제임을 입증할 수는 없다. 모든 개념은 세상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서, 세상의 그림자 안에서 태어나고, 세상의 방식대로 자라나서, 마침내 세상의 생각 안에서 "성숙"하기 때문이다. 개념은 우상이라는 아이디어로서, 그것은 진리를 나타내는 그림을 단 한 점도 그릴 수 없는 세상의 붓으로 칠한 것이다.

50 자아 개념은 무의미하다. 이곳의 그 누구도 자아 개념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으며, 따라서 그것이 과연 무엇인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인도하는 모든 배움은 너 자신에 대한 이런 개념을 가르쳐서, 네가 이 세상의 법칙을 따르고 결코 세상의 길을 벗어나거나 너 자신을 보는 법을 깨닫지 않겠다고 선택하게 만든다는 단 하나의 목적에서 시작되고 끝났다. 이제 성령은, 너에게 마음의 평화가 조금이라도 주어지려면 이 자아 개념이 무효화되어야 함을 볼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너는 네가 그 자아 개념이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가르쳐주는 레슨을 배우지 않고서는 그 개념을 탈학습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너에게 지금 믿는 자아를 포기하고 아무런 자아도 없이 있으라고 요구하는 셈이어서, 네 안에 더 큰 공포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51 그러므로 성령의 레슨 계획은 쉬운 단계들로 마련된다. 그러므로 간혹 약간의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네가 이미 배운 것에 대한 파괴는 없을 것이며, 단지 그것을 입증하는 증거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재해석만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네 형제가 너를 가지고 만든 것이 너라는 어떤 증거가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자. 너는 아직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지각하지는 못하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한다는 점을 이제 확실히 배웠기 때문이다. 네 형제가 너 대신에 반응하는가? 그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는가? 그가 너의 미래를 보고는, 모든 상황에서 미래가 오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해줄 수 있겠는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그러한 예지력이 있으려면, 그가 너는 물론 세상도 만들었어야 한다.

52 네 형제가 너를 가지고 만든 것이 바로 너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비록 그가 그렇게 했다 하더라도, 너에게 순결한 얼굴을 준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네가 기여한 부분인가? 그렇다면 그 얼굴을 만든 "너"는 누구인가? 그리고 누가 너의 그 모든 선량함에 속아서 그 얼굴을 그토록 공격하는가? 그 개념의 어리석음을 잊고, 단지 다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 네가 너 자신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는 두 부분이 있다. 그중 하나를 네 형제가 만들었다면, 누가 있어 다른 하나를 만들었는가? 그리고 과연 누구에게 무언가를 감춰야 하는가? 세상이 악하다 하더라도, 네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감출 필요는 전혀 없다. 누가 있어 그것을 볼 것인가? 게다가 공격받는 것 외에 과연 무엇이 방어를 필요로 하겠는가?

53 이 개념을 어둠 속에 감춰둬야 하는 이유는 아마도, 빛 속이라면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바로 너기 때문일 것이다. 네가 아는 세상을 떠받치는 모든 버팀목이 제거된다면, 그것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네가 세상에 대해 가진 개념은 자아에 대한 이러한 개념에 의존한다. 둘 중 어느 하나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둘 다 사라질 것이다. 성령은 너를 공황 상태에 빠트리려고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성령은 단지 작은 질문 하나를 제기해 보면 어떠냐고 물을 뿐이다.

54 너의 자아 개념에 대한 대안이 있다. 예를 들어 네가 네 형제의 모습이 되게 하려고 선택한 것이 너일 수 있다. 이것은 완전히 수동적인 자아 개념을 바꿔서, 능동적인 선택을 위한, 그리고 상호 작용이 일어났음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길을 열어준다. 여기서 너는, 네가 너희 둘 모두를 위해 선택했으며, 그가 나타내는 것에는 네가 부여한 의미가 들어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이것은 또한 네가 보는 것은 지각자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다는 지각의 법칙을 희미하게나마 보여준다. 하지만 누가 먼저 그런 선택을 내렸는가? 만약 네가 네 형제의 모습으로 선택한 것이 너라면, 거기에는 선택할 대안들이 있었을 것이며, 누군가 먼저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것들은 버렸을 것이다.

55 이 단계가 이득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근본적인 질문에는 접근하지 못한다. 이런 자아 개념들 이전에 분명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가 분명 그 개념들을 낳은 배움을 마쳤을 것이다. 이것은 둘 중 어느 관점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 첫 번째 관점에서 두 번째 관점으로 이동하는 것의 주된 이점은, 네가 어쨌든 스스로 결정해서 그런 선택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득은 거의 똑같은 상실을 대가로 치른다. 이제 너는 네 형제의 정체를 만든 죄로 비난받기 때문이다. 너는 그의 죄책을 공유해야 한다. 너는 너 자신의 이미지를 따라 네 형제를 위해 그의 모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전에는 단지 네 형제만 믿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이제는 너도 함께 정죄받아야 한다.

56 세상은 항상 자아 개념에 엄청나게 몰두해 왔다. 누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야 한다고 믿는다. 구원은 단지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구원은 마음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마음이 생각한다는 단순한 진술에만 관심이 있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선택권을 갖고 있으며, 다른 생각은 다른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볼 수 있다. 따라서 마음은, 자신의 모든 생각에는 자신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자신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느끼는 깊은 혼동이 반영되어 있음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마음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자아 개념이 어렴풋이 답해주는 듯하다.

57 너의 자아를 상징 속에서 구하지 말라. 너의 정체를 나타낼 수 있는 개념은 있을 수 없다. 악과 상호작용하고 사악한 것에 반응하는 자아를 지각하는 한, 네가 어떤 개념을 받아들이든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너 자신에 대한 개념은 계속해서 완전히 무의미하게 남아있을 것이며, 너는 단지 너 자신과만 상호 작용할 수 있음을 지각하지 못할 것이다. 죄 있는 세상을 본다는 것은 단지 그동안 너의 배움을 세상이 인도했다는 표시다. 그리고 너는 너 자신을 보듯이 세상을 본다. 자아 개념은 네가 바라보는 모든 것을 포함하며, 이런 지각의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네가 만약 무엇에든 상처받을 수 있다면, 너는 너 자신의 은밀한 소망을 그린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네가 어떤 고난을 겪든, 너는 그 속에서 너 자신의 감춰진 살해 욕구를 보고 있는 것이다.

58 너는 배움이 진행됨에 따라 많은 자아 개념을 만들 것이다. 각 개념은 너 자신에 대한 지각이 바뀜에 따라 너의 관계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줄 것이다. 자아 개념이 바뀔 때마다 어느 정도의 혼란이 있겠지만, 너의 마음을 틀어쥔 세상의 배움이 느슨해지고 있음에 감사하라. 그리고 마침내 세상이 사라지면서 너의 마음이 평화를 찾을 것임을 확신하고 기뻐하라. 도처에서 여러 형식으로 고발하는 자의 역할이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역할은 너를 고발하는 듯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무효화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지는 말라.

59 네가 배우기를 원하지 않는 한, 세상은 너에 대한 어떤 이미지도 가르쳐줄 수 없다. 모든 이미지가 사라져 버린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너 자신의 진정한 정체를 알지 못함을 깨달을 것이다. 바로 이렇게 봉인이 해제되어 열린 마음으로, 속박에서 풀려난 진리가 거침없이 돌아온다. 자아 개념을 내려놓은 곳에, 진리가 정확하게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모든 개념에 의문과 질문을 제기하여 그것들이 빛을 견뎌낼 가정에 근거하여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인식했을 때, 진리는 죄의식이 없는 자신의 깨끗한 성소에 자유로이 들어올 수 있게 된다. 다음의 말보다 세상이 더 듣기 두려워하는 것은 없다:

60 나는 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며,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하고 어디에 있는지,

혹은 세상이나 나 자신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61 하지만 이러한 배움 안에서 구원이 탄생한다. 그리고 너의 정체가 스스로 너에게 말해줄 것이다.

제31장 구원의 단순성 - Ⅳ. 진정한 대안제31장 구원의 단순성 - Ⅵ. 영을 인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