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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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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31장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24분

제31장 구원의 단순성

Ⅶ. 구원자의 비전

68 배움은 변화다. 구원은 너의 사고방식과 너무 달라서 도움이 되지 않는 수단을 성급히 사용하려고 하지 않으며, 네가 인식할 수 없는 종류의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지각이 계속되는 한 개념은 필요하며, 개념을 바꾸는 것이 구원의 과제다. 구원이 다루어야 하는 것은 반대도 없고 변할 수도 없는 진리가 아닌, 대비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개념에서 죄 있는 자는 "악하고", "선한" 자는 순결하다. 그리고 이곳의 모든 이는 자신의 "악한 것"을 용서하기 위해 "선한 것"을 세는 자아 개념을 갖고 있다. 그들은 그 누구의 "선한 것"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악한 것"이 도사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개념은 배반을 강조하며, 따라서 신뢰가 불가능해진다. 네가 너의 내면에서 "악한 것"을 지각하는 한, 그 개념은 변할 수도 없다.

69 네가 공격에서 가치를 보는 한, 너의 "악한" 생각을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때로 그런 생각을 지각은 하겠지만, 그것이 무의미하다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그 생각은 내용을 계속 감춘 채 무시무시한 형식으로 나타나서, 너 자신에 대한 안쓰러운 개념을 뒤흔들고는 또 다른 "범죄"로 먹칠할 것이다. 너는 너 자신에게 너의 순결을 부여할 수 없다. 너는 너 자신에 대해 너무나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네가 단 한 명의 형제라도 온전히 용서받을 자격이 있다고 본다면, 너 자신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달라진다. 너의 "악한" 생각들은 그의 악한 생각들과 함께 용서받았다. 너는 그것들이 모두 너에게 영향을 끼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너는 네가 더 이상 그의 악과 죄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고 선택하지 않았다. 네가 그 형제 안의 선한 것을 신뢰하기로 했을 때, 네 안의 선한 것도 신뢰하기로 한 것이다.

70 개념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네가 네 형제를 단지 몸 이상으로 보는 것이다. 몸은 결코 선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몸의 행위가 너의 "저열한" 부분에서, 따라서 그의 "저열한" 부분에서 비롯된다고 지각한다. 네 형제 안의 선한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몸은 너의 시야에서 지속성이 점점 떨어지다가 마침내 선한 것 주위를 맴도는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보일 것이다. 네가 너의 눈만으로 볼 수 있는 모습 너머의 세상에 도달했을 때, 바로 이것이 너 자신에 대한 개념이 될 것이다. 그때 너는 하느님이 주신 도움 없이는 네가 보는 것을 해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도움의 시야에는, 정녕 다른 세상이 있다.

71 너는 이 세상과 마찬가지로 그 세상에도 산다. 두 세상은 모두 너 자신에 대한 개념들로서, 맞바꿀 수는 있어도 함께 가질 수는 없다. 그 대비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 너 자신에 대한 이러한 개념은 너 혼자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너는 그 개념을 사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개념은 너 자신이라고 지각되지 않는 어떤 형제에게 주는 선물로 태어나서, 너에게 주어졌다. 네가 그에게 베푼 용서가 이제 너희 둘 모두를 위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72 너와 함께 걷는 그 형제에게 믿음을 가져라. 그러면 너 자신에 대한 무시무시한 개념이 바뀔 것이다. 네 형제 안의 선한 것을 바라보라. 그럼으로써 너는 너의 "악한" 생각들 때문에 두려움에 떨지 않게 될 것이다. 그 생각들은 더 이상 네 형제를 보는 너의 시야를 흐리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이런 행복한 변화가 일어나게 하겠다는 너의 용의뿐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네가 지금 가진 자아 개념이 그 자취마다 너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기억하고, 너에게 주어진 반가운 대조물을 기꺼이 맞아들여라. 친절한 용서의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너의 손을 내밀어라. 그것은 너와 마찬가지로 용서의 선물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네가 주는 선물이다. 그리고 너 자신에 대한 잔인한 개념이 하느님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개념으로 바뀌게 하라.

73 네가 지금 가진 자아 개념은 이곳에서 너의 기능을 영원히 성취하지도, 완수하지도 못하게 보장할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너를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우울과 허무감에 빠트린다. 하지만 네가 그 개념을 변화의 가망 없이 붙잡고 있으면서 마음 안에 꿈쩍도 하지 못하게 감춰두기로 선택하지 않는 한, 그것을 고칠 필요는 없다. 대신에 그것을 성령께 드려라. 네가 그 개념의 도움으로 너에게 주어진 기능을 이행하여 평화를 얻고, 그럼으로써 다른 이에게 평화를 선사하여 평화를 너 자신의 것으로 가지려면, 그것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성령은 이해한다. 그에 대한 대안들은 네가 사용할 수 있도록 너의 마음 안에 있다. 그리고 너는 너 자신을 다른 식으로 볼 수 있다. 너 자신을 구원의 적으로 보는 대신에, 세상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존재로 보지 않으려는가?

74 자아 개념은 바리케이드나 방패처럼 진리 앞을 조용히 막고 서서, 너의 시야로부터 진리를 감춘다. 네가 보는 모든 것은 이미지들이다. 너는 그것들을 너의 시야를 흐리고 비전을 왜곡하는 장벽을 통해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는 아무것도 분명하게 보지 못한다. 네가 보는 모든 것에 빛이 차단되었다. 잘해봤자 너는 그 너머에 있는 것의 그림자를 얼핏 볼 뿐이다. 최악의 경우 단지 어둠을 바라보고는, 두려움에서 태어난 죄의 생각들과 개념들이 일으키는 겁에 질린 상상물들을 지각한다. 그리고 네가 보는 것은 정녕 지옥이다. 두려움은 곧 지옥이기 때문이다. 너에게 주어진 것은 모두 해방을 위한 것이다. 시각과 비전, 내면의 안내자가 모두, 그들과 더불어 네 곁의 사랑하는 이들도,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우주도, 너를 지옥에서 벗어나도록 인도한다.

75 우주 안에서 네가 맡은 역할을 보라! 사랑과 생명의 주님은 진정한 창조물의 각각의 부분에게 지옥의 참상에서 구원하는 일 전체를 맡기셨다. 그리고 각각의 부분에게, 그가 보살피도록 특별히 맡기신 거룩한 자들의 구원자가 되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는 먼저 한 형제를 자기 자신을 보듯이 바라보고, 그 형제의 내면에서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볼 때 이것을 배운다. 이런 식으로 그는 그 자신에 대한 개념을 내려놓게 된다. 그의 시각과 그가 바라보는 것 사이에, 그가 보는 것을 판단할 것이 아무것도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 유일한 비전 속에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이 이 하나를 보듯이 모든 이를 바라본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전에 어둠이 있던 곳에 빛이 있고, 이제 그의 시야에서 장막이 거두어졌기 때문이다.

76 그리스도의 얼굴 앞에 드리운 장막, 하느님과 구원에 대한 두려움, 죄의식과 죽음에 대한 사랑, 이것들은 모두 단 하나의 잘못을 부르는 다른 이름들이다. 그 잘못은, 너와 네 형제 사이에 공간이 하나 있으며, 너희는 그를 너로부터 떼어놓고 너를 그로부터 떼어놓는 너 자신에 대한 환상에 의해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판단의 칼이란, 네 형제를 떼어놓는 공간을 사랑이 차지하지 못하도록 싸워달라고 너 자신에 대한 환상에게 쥐여주는 무기다. 하지만 네가 그 칼을 쥐고 있는 동안은, 몸을 너 자신으로 지각할 수밖에 없다. 네 형제는 그 자신의 정체를 다르게 보여주는, 그럼으로써 너의 정체를 다르게 보여주는 거울을 들고 있건만, 너는 그러한 형제의 모습으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77 유혹이란 단지 지옥과 비참함에 머물겠다는 소망이 아니겠는가? 이런 소망이 낳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비참해져서 지옥과 고통 속에 머물 수 있는 너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전부지 않겠는가? 자신의 형제를 이와 같지 않게 보는 법을 배운 자는 자기 자신을 구원한 것이며, 따라서 다른 모든 이들에게 구원자가 된다. 하느님은 각각의 모든 이에게 모든 이를 맡기셨다. 부분적인 구원자란 단지 부분적으로만 구원된 자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너희 각자에게 맡기셔서 구원하게 하신 거룩한 자들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만나거나 바라보는 모든 이들, 잠시 보고 잊은 모든 이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모든 이들, 앞으로 만날 모든 이들,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이들. 하느님은 너에게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그가 이제껏 가진 모든 개념에서 구원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78 하지만 지옥에 머물기를 소망하는 한, 네가 어찌 하느님 아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가 너의 거룩함과 떨어져 있다고 보는 한, 네가 어찌 그의 거룩함을 알겠는가? 거룩함이란, 내면에서 순결을 바라봄으로써 그것을 모든 곳에서 볼 것을 기대하는 거룩한 눈을 통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이 안에서 순결을 불러일으켜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기대하는 자가 되게 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에서 자신의 순결을 보고, 또한 모든 곳에서 자신의 구원을 보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자의 비전이다. 그의 고요하게 뜬 눈과 그가 보는 것 사이에는 그가 자신에 대해 붙잡고 있는 어떤 자아 개념도 없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빛을 가져다주어, 그것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79 유혹이 어떤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든, 그것은 항상 네가 아닌 어떤 자아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반영할 뿐이다. 그 소망으로부터, 너는 정녕 네가 되기를 소망하는 그것이라고 가르치는 개념이 하나 일어난다. 그 개념은 그것을 낳은 소망을 더 이상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까지 너 자신에 대한 개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 개념을 소중히 여기는 한, 너의 소망을 나타낸 이미지를 가진 자아와 네 형제가 닮았다고 볼 것이다. 비전은 창조할 힘이 없으므로, 어떤 소망을 나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전은 사랑으로 볼 수도 있고 증오로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네가 보는 대상과 결합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너 자신을 떼어놓고 분리하고자 하는지의 단순한 선택에만 달려있다.

80 구원자의 비전은 너 자신에 대한 모든 판단에서 자유롭듯이 네 형제의 정체에 의해서도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그러한 비전은 그 누구에게서도 과거를 보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낡은 개념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그리고 오로지 현재가 지닌 것만 바라볼 준비가 된 온전히 열린 마음을 섬긴다. 그것은 알지 못하므로,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서 단지, "내가 보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뿐이다. 그러면 답이 주어진다. 그리고 문이 열려서, 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비전에 맞서 너무도 오랫동안 소중히 지녀온 낡은 아이디어와 묵은 개념의 장막 너머를 보게 해달라고 순결하게 요청하는 자를, 그리스도의 얼굴이 비춰줄 수 있게 된다.

81 그렇다면 유혹이란 단지 너 자신을 네가 아닌 어떤 것으로 만들겠다는 무의미하고 미친 소망일 뿐임을 기억하면서, 유혹에 맞서 깨어있어라. 그 대신에 네가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 그것은 광기와 고통과 죽음에 시달리고, 배신과 암담한 절망에 시달리며,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꾸고, 죽어서 두려움의 꿈을 끝내는 것 외에는 남은 희망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유혹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을 거슬러 선택하는 것이 과연 어려울 수 있겠는가? 유혹이 과연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본 다음, 네가 선택하는 진짜 대안들을 보라. 대안은 정녕 둘밖에 없다. 많은 선택 대상들처럼 보이는 것에 속지 말라. 지옥이나 천국만 있을 뿐이며, 너는 둘 중에 단 하나만 선택한다.

82 너에게 주어진 세상의 빛을 세상에게 감추지 말라. 세상은 정녕 어둡기에, 그 빛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구원자의 비전을 받지 못해 절망에 빠져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죽음이다. 그들의 구원자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은 채, 감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서있다. 그들의 구원자가 볼 수 있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그 자신의 용서로써 용서를 베풀 때까지, 그들은 볼 수 없다. 하느님이 너에게 "내 아들을 해방해 다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네가, 하느님이 바로 너를 위해 해방을 요청하신다는 것을 배우고 있거늘, 듣지 않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겠는가? 이 수업이 이것 외에 무엇을 가르치려 하겠는가? 그리고 이것 외에 네가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제31장 구원의 단순성 - Ⅵ. 영을 인식하기제31장 구원의 단순성 - Ⅷ. 다시 한번 선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