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기적은 단지 네가 성령의 구원 계획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그 계획을 따르려는 용의가 있다는 표시일 뿐이다. 성령의 일은 너의 기능이 아니며, 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너의 기능이 무엇인지 배울 수 없다. 기능의 혼동은 에고에게 아주 전형적이므로, 너는 이제 그것에 꽤 익숙할 것이다. 에고는 모든 기능이 자신에게 속한다고 믿는다. 비록 그 기능들이 정녕 무엇인지 짐작도 못하지만 말이다. 이것은 단순한 혼동 이상이다. 이것은 허세와 혼동을 특히 위험하게 짝지어 놓은 것으로서, 이로 인해 에고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누구든, 무엇이든 공격할 공산이 크다. 바로 이것이 정확하게 에고가 하고 있는 일이다. 에고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에고는 자신이 무엇을 지각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16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자가 얼마나 적절하게 반응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네가 그 반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든 상관없이, "그 반응을 보니,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려줄 안내자로서 에고가 좋은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해야 한다. 에고가 안내자 자격을 얻는 것은 몹시도 유감스러운 일이며, 에고를 구원의 교사로 선택한다면 그것은 아주 형편없는 선택임을 거듭 강조해야 하는 것은 터무니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다시피 터무니없는 이 질문은 사실 분리 판타지 전체에서 매우 결정적인 사안이다. 완전히 정신 이상인 안내자를 선택하는 자는 스스로가 완전히 정신 이상임에 틀림없다.
17 그 안내자가 정신 이상임을 네가 모른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너는 그것을 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나와 똑같은 기준으로 그 안내자를 이미 판단했다. 에고는 문자 그대로 빌려온 시간을 먹고 살며,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최후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말고, 반가이 맞이하라. 그리고 미루지 말라. 에고의 시간은 너의 영원에서 빌려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재림이다. 초림이 너를 위해 창조되었듯이, 재림도 너를 위해 만들어졌다. 재림은 단지 이치가 돌아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과연 두려울 수 있겠는가?
18 판타지 외에 무엇이 두려울 수 있겠는가? 실재에서 만족을 찾을 수 없다고 절망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판타지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결코 판타지에서 만족을 찾지 못할 것은 확실하며, 따라서 그의 유일한 희망은 실재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실재가 두렵다는 결정이 틀릴 경우에만, 하느님이 옳으실 수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하느님은 정녕 옳으시다. 그렇다면 네가 그동안 틀렸음에 기뻐하라. 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네가 참으로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것을 기억했다면, 하느님이 틀리실 수 없듯이 너도 틀릴 수 없었을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오로지 판타지 속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네가 만약 판타지 속에서 실재를 구한다면, 실재를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판타지의 상징들은 에고에서 나오는 것이며, 너는 그런 상징들을 많이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상징들에서 의미를 구하지는 말라. 상징들은 그것들을 엮어 만든 판타지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19 동화는 즐겁거나 두렵고, 예쁘거나 추할 수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사실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동화를 믿을 수 있으며, 따라서 아이들에게 동화는 잠시 사실이다. 하지만 실재가 분명해지면, 판타지는 사라진다. 그동안 실재는 사라졌던 것이 아니다. 재림은 실재를 자각하는 것이지 실재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보라, 나의 아이들아. 실재가 여기에 있다. 실재는 너희와 나, 그리고 하느님께 속하며, 우리 모두에게 지극히 만족스럽다. 오로지 이런 자각만이 치유한다. 그것은 진리에 대한 자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