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에게 떠나게 한 여정은 참으로 어리석지만, 아버지가 아들에게 떠나게 하시는 여정은 해방과 기쁨의 여정이다. 아버지는 잔인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아들은 자기 자신을 해칠 수 없다. 그가 두려움에 떨며 보는 보복은 결코 그를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비록 보복을 믿을지라도, 성령은 그것이 참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성령은 시간의 끝에 서있으며, 너도 분명 그곳에 있다. 성령은 너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아들에게 합당치 않은 모든 것을 항상 무효화해 왔다. 그것은 하느님이 성령에게 주신 사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시는 것은 항상 존재해 왔다.
93 하느님의 아들에게 죄가 없음을 배울 때, 너는 나를 볼 것이다. 그는 항상 자신의 죄 없음을 구해왔으며, 그것을 이미 발견했다. 누구나 자신이 만든 감옥에서 벗어나려고 하며, 해방을 찾을 길은 그에게 부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길은 그의 내면에 있기에, 그는 그것을 이미 발견했다. 그가 언제 그 길을 발견할 것인지는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지만, 시간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 하느님의 아들은 지금 죄가 없으며, 그의 눈부신 순수함은 손상되지 않고 하느님의 마음 안에서 영원히 빛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항상 그가 창조된 그대로일 것이다. 너의 세상을 부정하고, 그를 판단하지 말라. 그의 영원한 죄 없음은 아버지의 마음 안에 있으면서 그를 영원히 보호하기 때문이다.
94 네가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였을 때, 하느님의 아들 안에 죄란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오로지 죄 없다고 볼 때만, 너는 그의 하나인 상태를 이해할 수 있다. 죄라는 아이디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일으켜서, 통합 대신 분리를 투사하기 때문이다. 너는 오로지 너 자신만 정죄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너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 수 없게 된다. 하느님의 아들이 더없이 결백하다는 것은 그의 존재의 조건이지만, 너는 그동안 그것을 부정했다. 사랑으로부터 그가 창조되었고, 사랑 안에 그가 머물러 산다. 선과 자비가 항상 그와 동행한다. 그는 항상 아버지의 사랑을 확장해 왔기 때문이다.
95 너와 함께 여행하는 거룩한 동반자들을 지각할 때, 너는 여정이란 것은 없으며 오로지 깨어남만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은 잠들어 있지 않으며, 너를 위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왔다. 여행할 길도 없고, 여행에 걸리는 시간도 없다.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 없이 계시기를 영원히 뜻하지 않으시기에, 그를 시간 안에서 기다리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그러했다. 너의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죄의식의 구름을 하느님 아들의 거룩함이 밝혀 물리치게 하고, 그의 순수를 네 것으로 받아들여서, 그것이 정녕 너의 순수임을 그로부터 배워라.
96 너는 죄가 없기 때문에, 상처받을 수 없다. 너는 오로지 죄의식을 사용해서만 과거에 매달릴 수 있다. 죄의식은 네가 과거에 행한 것 때문에 처벌받을 것임을 입증하며, 따라서 과거에서 미래로 진행하는 일차원적인 시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믿는 자라면 그 누구도 항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죄의식은 너에게서 영원에 대한 이해를 앗아갈 수밖에 없다. 너는 영원하기 때문에 불멸이며, 항상은 지금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죄의식은 에고의 연속성을 보장하려고 너의 마음에 과거와 미래를 붙잡아두는 방법이다. 과거에 있던 것이 미래에 처벌받는다면, 에고의 연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너의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은 에고가 아닌 하느님이시다. 불멸은 시간의 반대다. 시간은 지나가 버리지만, 불멸은 끊임없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97 속죄를 받아들이는 것은 너에게 불멸이 정녕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너 자신의 죄 없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너는 과거가 존재한 적이 없으며, 따라서 미래도 불필요함을 배우기 때문이다. 시간 안에서 미래는 항상 죄 갚음과 관련되며, 오로지 죄의식만이 죄 갚음이 필요하다는 느낌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아들의 죄 없음을 네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하느님이 너에게 당신의 아들에 대해, 그리고 그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일깨워 주려고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하느님은 결코 당신의 아들을 정죄하지 않으셨으며, 그는 죄가 없기에 정녕 영원하다.
98 죄의식을 실재화한 다음에 속죄하는 방법으로는 죄의식을 물리칠 수 없다. 이것은 에고의 계획으로서, 에고는 죄의식을 물리치는 대신에 그런 계획을 제공한다. 에고는 공격이 곧 구원이라는 미친 개념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공격을 통한 속죄를 믿는다. 죄의식을 애지중지하는 너 또한 이것을 믿고 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에고와 동일시하지 않고서야 네가 원하지도 않는 것을 어찌 그리 소중히 여길 수 있겠는가?
99 에고는 네가 유죄며, 그러니 너 자신을 공격하라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것은 죄의식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죄의식은 공격의 결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고의 가르침에는 죄의식에서 탈출할 길이 전혀 없다. 공격은 죄의식을 실재화하며, 만약 죄의식이 실재한다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성령은 단지, 죄의식이 결코 존재한 적이 없다는 조용한 인식을 통해 죄의식을 물리친다. 성령은 하느님의 죄 없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진실임을 안다. 그리고 이것은 너에게 해당하는 진실이기에, 너는 너 자신을 공격할 수 없다. 죄의식이 없다면, 공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너는 정녕 구원되었다. 하느님의 아들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는 더없이 순수하기에, 정녕 상처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