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앞에서 우리는, 상황을 온전히 진리에 바치면 평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평화의 달성은 네가 상황을 진리에 얼마나 온전히 바쳤는지를 안전하게 추측할 수 있는 기준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믿음 없이는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다고도 말했다. 진리를 유일한 목표로 삼아 진리에 바쳐진 것을 진리로 가져가는 것은 바로 믿음이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은 관련된 모든 이를 포함한다. 그럴 경우에만 너는 상황을 의미 있게, 전체로서 지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상황에는 모든 이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의 믿음은 제한되고, 너의 헌신은 불완전해진다.
2 제대로 지각된 모든 상황은 하느님의 아들을 치유하기 위한 기회가 된다. 그리고 그가 치유되는 이유는, 네가 그에게 믿음을 제공하여 그를 성령께 드리고, 너의 에고가 들이미는 모든 요구 사항에서 놓아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가 자유롭다는 것을 본다. 그리고 이러한 비전은 성령이 공유하는 것이다. 성령은 그러한 비전을 공유하기에 너에게 주었으며, 따라서 너를 통해 치유한다. 이렇게 성령과 함께 통합된 목적에 동참하는 것이야말로 그 목적을 실재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너는 그 목적을 온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정녕 치유다. 그러면 몸이 치유되는데, 왜냐하면 네가 몸 없이 와서 모든 치유가 놓여있는 마음과 결합했기 때문이다.
3 몸은 스스로 치유될 수 없다. 몸은 그 자신을 병들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은 치유가 필요 없다. 몸의 건강과 병은 전적으로 마음이 몸을 어떻게 지각하고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려 하는지에 달려있다. 마음의 한 조각이 스스로를 보편적인 목적과 분리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몸은 그 마음 조각의 무기가 되어서, 분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 목적에 반하여 사용된다. 이렇게 몸은 환상의 도구가 되어, 그에 따라 행동한다. 몸은 없는 것을 보고, 진리가 결코 말하지 않은 것을 들으며, 정신 나간 행동을 하고, 정신 이상에 의해 감금되어 있다.
4 앞에서 믿음 없음은 곧장 환상으로 이어진다고 했던 말을 간과하지 말라. 믿음 없음은 어떤 형제를 몸으로 지각하는 것인데, 몸은 연합의 목적을 위해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네 형제를 몸으로 본다면, 너는 그와의 연합이 불가능한 조건을 설정한 것이다. 그에 대한 믿음 없음은 너를 그로부터 분리하였으며, 두 사람 모두를 치유로부터 떼어놓았다. 따라서 너의 믿음 없음은 성령의 목적을 반대했고, 몸에 중심을 둔 환상을 가져와서 너희 사이에 세워두었다. 그러면 몸은 반드시 병든 것처럼 보일 것이다. 네가 몸을 치유의 "적"이자 진리의 반대편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5 믿음이 믿음 없음의 반대임을 깨닫는 것은 어려울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이 작동하는 방식의 차이는, 그것들의 정체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직접적으로 비롯됨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깨닫기가 어렵다. 믿음 없음은 항상 제한하고 공격하려 하며, 믿음은 제한을 전부 거두고 온전하게 만들려 한다. [믿음 없음은 파괴하고 분리하려 하며, 믿음은 연합하고 치유하려 한다.] 믿음 없음은 하느님의 아들과 그의 창조주 사이에 환상을 끼워넣으려 하며, 믿음은 그 둘 사이에 솟은 듯한 장애물을 전부 제거하려 한다. 믿음 없음은 전적으로 환상에 헌신하며, 믿음은 전적으로 진리에 헌신한다. 부분적인 헌신이란 불가능하다. 진리는 환상의 부재고, 환상은 진리의 부재다.
6 둘 다 함께 있을 수도 없고, 같은 곳에서 지각될 수도 없다. 둘 다에 헌신하는 것은 영원히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그 목표의 한 측면은 몸을 통해 추구되는데, 여기서 몸은 공격을 통해 실재를 구하는 수단이라고 간주되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측면은 치유하려 하며, 따라서 몸이 아닌 마음을 이끌어낸다. 이에 따른 불가피한 절충안은 바로, 마음이 아닌 몸이 치유되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렇게 갈라진 목표는 몸과 마음 둘 다에 동등한 실재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마음이 몸에 제한되어 있고, 각자 온전해 보이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 작은 부분들로 갈라져 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것은 몸을 해치지는 않겠지만, 마음 안에 반드시 망상적인 사고체계를 존속시킬 것이다.
7 그렇다면 바로 이곳이야말로 치유가 필요한 곳이며, 바로 이곳이야말로 치유가 있는 곳이다. 하느님은 병과 떨어진 곳에 치유를 주지 않으셨고, 병이 있을 수 없는 곳에 치료법을 확립하지도 않으셨다. 병과 치유는 같이 있다. 그리고 병과 치유를 함께 볼 때, 진리와 환상을 둘 다 (그것들이 있는) 마음 안에 간직하려는 일체의 시도는 환상에 대한 헌신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진리로 가져가면, 그 어떤 측면이나 방식으로도 진리와 양립할 수 없음을 보게 되어 포기하게 된다.
8 진리와 환상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그 둘을 아무리 연결해 보려 해도, 이것은 영원히 참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와 마찬가지로 환상들도 항상 연결되어 있다. 각각은 통합되고 완성된 사고체계지만, 서로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 겹치는 부분이 전혀 없는 곳에는 분리가 완전할 것이다. 이것을 지각하는 것은, 분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서 치유되어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결과는 결코 그 근원과 분리되지 않는다. 분리라는 아이디어가 몸을 만들어내고는 계속 몸에 연결되어 있으면서, 자신을 몸과 동일시함으로 몸을 병들게 만든다. 너는 이러한 연결을 감춤으로써 몸을 보호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은폐는 너의 정체를 진리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주는 듯하기 때문이다.
9 이런 이상한 은폐로 인해 너의 마음이 얼마나 심각하게 해를 입었고, 너의 정체에 대한 혼동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네가 이해할 수만 있다면! 너는 너의 믿음 없음이 얼마나 극심한 황폐화를 초래했는지 보지 못한다. 믿음 없음은 그 결과로 정당화되는 듯이 보이는 공격이다. 믿음을 거둬들임으로써, 너는 믿을 가치가 없는 것을 보고, 장벽 너머로 눈을 돌려 너와 결합된 것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