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믿는 것은 곧 치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너 스스로 속죄를 받아들였으며, 따라서 속죄를 공유하려 한다는 표시다. 믿음을 통해, 너는 과거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선물을 네 형제에게 준다. 그것은 곧 네가 받은 선물이다. 너는 네 형제가 과거에 행한 그 어떤 것도 지금 그를 정죄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다. 너는 그의 잘못을 간과하기로 흔쾌히 선택하며, 너의 자아와 그의 자아 사이에 놓인 모든 장벽을 지나쳐 그 둘을 하나라고 본다. 그 하나 안에서, 너는 너의 믿음이 충분히 정당하다는 것을 본다. 믿음 없음에는 정당한 근거가 전혀 없지만, 믿음은 항상 정당하다.
11 믿음은 두려움의 반대로서, 두려움이 공격의 일부듯 사랑의 일부다. 믿음은 연합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이를 지극히 자애로우신 아버지의 아들로 너그럽게 인정하는 것이며, 그들이 너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며, 따라서 너 자신처럼 너의 사랑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이야말로 너희를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위해, 너는 그 누구도 너의 사랑에서 떼어놓으려 하지 않는다. 각 사람은 거룩한 순간에 지각되는 것과 똑같이 나타나며, 죄의식에서 해방되기 위한 너의 목적 안에서 연합되어 있다. 너는 그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았으며, 그들은 치유되었다. 모든 이 안에서 믿음을 영원히 정당화하는 근거를, 네가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12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로서, 하느님이 네게 주신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것이다. 믿음 없음은 하느님의 아들을 보고는 그가 용서받을 자격이 없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통해 보면, 하느님의 아들은 이미 용서받아서 그 자신에게 부과한 모든 죄책에서 자유롭다. 믿음은 하느님의 아들을 오로지 지금 본다. 믿음은 그를 판단하기 위해 과거에 기대지 않으며, 오로지 네 안에서 보고자 하는 것만을 그 안에서 보고자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몸의 눈을 통해 보지 않으며, 믿음을 정당화할 근거를 몸이 제공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믿음은 새로운 지각의 메신저로서, 그것의 도래를 증언할 자들을 끌어모아 그들의 메시지를 너에게 되가져 오라고 파견된다. 믿음은 실재세상과 마찬가지로 쉽사리 앎과 맞바꿔진다. 믿음은 성령의 지각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네가 그 지각을 성령과 공유한다는 표시기 때문이다. 믿음은 네가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에게 제공하는 선물이며, 그는 물론 그의 아버지께도 아주 흡족한 선물이다. 따라서 그 선물은 너에게도 제공된다.
13 새로운 목적을 가진 너희의 거룩한 관계는 너희가 서로에게 줄 믿음을 너희에게 제공한다. 그동안 너희의 믿음 없음은 너희를 서로 떨어져 있도록 내몰았으며, 따라서 너희는 서로 안에서 구원을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믿음은 너희를 너희가 보는 거룩함 안에서 연합한다. 그 거룩함은 몸의 눈을 통해 보는 것이 아니라, 너희와 결합하였고 너희가 그 안에서 연합된 성령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다. 은혜는 몸이 아닌 마음에게 주어진다. 은혜를 받는 마음은 즉시 몸 너머로 눈을 돌려, 자신이 치유된 거룩한 곳을 본다. 그곳에 은혜가 주어진 제단이 있고, 그 안에 마음이 서있다. 그러니 서로에게 은혜와 축복을 베풀라. 너희는 두 사람 모두를 위한 은혜가 놓인 똑같은 제단에 서있기 때문이다. 은혜를 통해, 함께 치유받아라. 그럼으로써 너희는 다른 이들을 믿음을 통해 치유하게 된다.
14 거룩한 순간에, 너희는 하느님이 당신 자신과 너희 두 사람에게 바쳐 세우신 제단 앞에 서있다. 믿음 없음을 내려놓고, 함께 그 제단으로 가라. 그곳에서 너희는 믿음을 통해 다시 맺은 너희 관계의 기적을 보고, 믿음이 용서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을 것이다. 어떤 잘못도 믿음의 고요한 눈길을 방해할 수 없다. 그것은 그 모든 잘못에 치유의 기적을 똑같이 쉽게 가져다준다. 사랑의 메신저들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그들이 파견된 제단 앞에 함께 서있는 너희에게 그것이 이루어졌다는 기쁜 소식을 되돌려 주기 때문이다.
15 믿음 없음이 너희의 작은 왕국들을 불모의 외딴곳으로 남겨두듯, 믿음은 성령이 그 왕국을 가지고 만들 가장 거룩한 정원을 위한 땅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믿음은 평화를 가져다주며, 따라서 진리를 불러들여 이미 사랑스러워질 준비가 된 것을 사랑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진리는 믿음과 평화를 뒤따라와서, 그것들이 시작한 사랑스럽게 만드는 과정을 완성한다. 믿음은 여전히 배움의 목표로서, 레슨을 다 배우고 나면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는 영원히 남을 것이다.
16 그러니 너의 헌신을 영원한 것에 바치고, 그것을 방해하여 시간의 노예로 만들지 않을 방법을 배워라. 너는 네가 영원한 것에 행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너 자신에게 행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당신의 아들로 창조하신 자는 그 무엇의 노예도 아니다. 그는 그의 창조주와 더불어 만물의 주기 때문이다. 너는 몸을 노예로 만들 수 있지만, 아이디어는 여전히 자유로우므로, 아이디어를 생각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아이디어를 어떤 식으로든 감옥에 가두거나 제한할 수 없다. 아이디어는 여전히 자신의 근원과 결합되어 있으며, 그 근원은 아이디어가 자신의 목적으로 선택하는 것에 따라 아이디어의 간수가 되거나 해방자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