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너의 특별한 관계 안에 성령이 들어왔다. 이제 너는 죽음에 대한 헌신에서 다른 이를 해방할 수 있고, 너 자신도 그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해방이 너에게 제공되었고, 네가 해방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는 아직 이런 이상한 헌신에 대해 더 많이 배워야 한다. 그 안에는 평화가 흘러 넘어가야 할 세 번째 장애물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한, 그 누구도 죽을 수 없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보이는 것은 실제로 죽음의 매력이다. 죄의식도 마찬가지로 두려움의 대상이며, 두렵다. 하지만 죄의식에 매력을 느끼고 찾아내는 자들을 제외하고는, 죄의식은 그 누구도 붙잡아둘 수 없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죽음은 에고가 만든 것이며,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는 살아있는 모든 것 위에 드리워져 있다. 에고는 생명의 "적"이기 때문이다.
78 하지만 그림자는 죽일 수 없다. 살아있는 자들에게 그림자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이 그저 통과해 걸어가기만 하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그러나 살지 않는 데 헌신하는 자들, 생명에서 그리도 끈질기게 물러나려 하고 사슬을 질질 끌면서 자신의 냉혹한 주인인 죽음의 주를 찬양하며 느릿느릿 행진하는 검은 옷의 "죄인들," 슬픔에 잠긴 에고의 합창단은 어떠한가? 그들 중 누구라도 용서의 온유한 손길로 만지고, 그의 사슬이 너의 사슬과 함께 풀려나가는 것을 보라. 그가 걸치고 있던 검은 옷을 자신의 장례식에 던져버리는 것을 보고, 죽음을 조롱하며 웃는 소리를 들어라. 너의 용서를 통해, 그는 죄가 부과하려는 형벌에서 벗어날 수 있다.
79 이것은 오만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다. 하느님의 뜻을 자신의 뜻으로 선택한 너에게 무엇이 불가능하겠는가? 너에게 죽음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너의 헌신 대상은 죽음도, 그 주인도 아니다. 에고의 목적 대신에 성령의 목적을 받아들였을 때, 너는 죽음을 포기하고 그 대신 생명을 받아들였다. 우리는 아이디어가 그 근원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생명이 하느님 생각의 결과인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죽음은 우리가 에고라고 부르는 생각의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