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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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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0분

영혼들

98 이미 말했듯이, 사람이 두려움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는 이유는 그 자신이 두려움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은 정의상 두려움을 그의 통제 밖에 있는 것으로 만드는 듯하다. 하지만 기본 갈등을 두려움의 정복 이라는 개념을 통해 해결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의미하다. 사실 이런 시도는 두려움이 정복될 필요가 있다는 단순한 가정으로 두려움의 힘을 옹호한다. 근본적인 해결은 전적으로 사랑의 통달 에 달려있다. 그동안은 갈등의 느낌이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기묘하게 비논리적인 입장에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힘을 믿는다.

99 "무"와 "모든 것"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념이다. 둘 중 하나를 얼마나 믿든, 다른 하나는 이미 부정된 것이다. 기본 갈등에서 두려움은 실제로 무이고, 사랑은 모든 것이다. 빛이 어둠 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어둠은 폐지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그가 믿는 것이 참이다. 이런 의미에서 분리는 정녕 일어났으며, 이에 대한 부정은 단지 부정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에 집중하는 것은 단지 방어기제를 한층 더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교정 절차는 잘못을 일시적으로 인식하되, 즉각적인 교정이 필수적이라는 지표로서만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속죄를 지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상태를 확립한다.

100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과 무 사이에는 어떤 절충안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시간은 본래 이런 면에서 모든 절충안을 포기하도록 돕는 도구다. 시간은 서서히 폐지되는 듯이 보이는데, 그 이유는 단지 시간 자체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간격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를 그릇되게 사용함으로써, 교정 도구로서 이런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이 낳은 유일한 아들을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이 전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한 부분만 살짝 고치면 된다. 즉, 이 문장은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이 낳은 유일한 아들에게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는...."라고 읽어야 한다.

101 하느님께는 오로지 한 아들만 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들이 정녕 그분의 아들들이라면, 각각의 영혼은 분명 온아들 전체의 필수적인 부분일 것이다. 너는 전체가 그것의 부분들보다 크다는 개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따라서 이를 이해하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102 하나인 상태에 있는 온아들은 실로 자신의 부분들의 합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중 어떤 부분이라도 빠져 있는 한, 이 사실은 가려진다. 그러므로 온아들의 모든 부분들이 돌아오기 전에는 기본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들이 모두 돌아왔을 때, 온전성의 진정한 의미가 비로소 완전히 이해될 수 있다.

103 온아들 중 어떤 부분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기에 따라 잘못이나 불완전성을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한다면, 무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이런 잘못에 대한 교정이 곧 속죄다. 우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음에 대해 간략하게 말했지만, 여기서 도움이 되는 요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준비되어 있음은 성취를 위한 전제 조건에 불과하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준비되어 있음의 상태가 일어나자마자 대개는 성취하려는 뜻이 어느 정도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갈라지지 않은 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상태는 뜻의 전환을 위한 잠재력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104 통달을 성취하기 전에는 확신을 완전히 개발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두려움을 정복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잘못을 교정하려고 했고, 오로지 사랑에만 통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너희는 단지 준비되어 있음만 입증했을 뿐이다. 사랑의 통달에는 너희 둘이 이제껏 도달한 확신보다 훨씬 더 완전한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준비되어 있음은 최소한 너희가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지표다. 그것은 확신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준비되어 있음과 통달 사이에 엄청난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해할 경우에 대비해, 시간과 공간은 나의 통제 아래에 있음을 다시 일깨워 주고자 한다.

105 마법과 기적 사이의 혼동을 교정할 수 있는 주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될 때 이것을 잊기 쉬우며, 그러면 어떤 형식으로든 마법을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의 뜻은 그의 창조주께서 그에게 주신 것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창조물 안에 그와 똑같은 뜻을 표현하셨다. 창조 능력은 마음 안에 놓여있으므로, 사람이 창조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뜻의 문제다. 그리고 사람이 창조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가 보기에는 실제이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따른다. 이런 기본적인 구분은 우리를 최후의 심판의 진정한 의미로 곧장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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