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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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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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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희생 없는 속죄

11 기적과 관련해서 여전히 남아있을 수도 있는 어떤 두려움이든 전혀 근거가 없음을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아주 분명하게 해두어야 할 점이 있다. 십자가형은 속죄를 확립하지 않았다. 부활이 속죄를 확립했다. 이것은 아주 신실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한 점이다. 희소성 오류에서 자유로운 자라면 그 누구도 이런 실수를 할 수 없다. 십자가형을 위아래가 뒤집힌 관점으로 본다면, 하느님이 마치 당신의 아들들 가운데 하나를 선하다는 이유로 고통받도록 허용하시고, 심지어 조장하신 것처럼 보인다. 많은 목회자들이 매일 이렇게 설교한다.

12 이렇게 아주 유감스러운 해석은 나를 따르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그릇된 투사가 결합하여 생겨난 것으로서, 그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몹시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주 반종교적인 개념이 많은 종교 속으로 들어왔는데, 이것은 어쩌다 그런 것도 아니고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잠시 멈춰서, "이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하느님이 과연, 당신의 말씀을 통해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다고 분명히 밝히신 이런 종류의 생각을 하실 수 있겠는가?

13 최선의 방어는 늘 그렇듯이,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보호하는 것이다. 어떤 개념을 정당화하기 위해 준거틀 전체를 뒤집어야 한다면, 그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이런 과정이 작은 규모로 적용되면 고통스럽고, 대규모로 적용되면 실로 비극적이다. 흔한 결과로 박해가 일어나는데, 이것은 하느님이 구원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박해하셨다는, 지독하게 그릇된 지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다.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는 말 자체가 무의미하다.

14 이러한 잘못은 언제나 극복하기가 특히 어려웠다. 비록 이 잘못 자체는 다른 잘못들보다 극복하기가 더 어렵지는 않지만, 그 "도피" 가치가 아주 탁월하여 사람들이 기꺼이 포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벼운 형식으로는, 어떤 부모는 아이를 때릴 때 "이것은 너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한단다."라고 말함으로써 죄의식에서 벗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너는 아버지가 정말로 이런 식으로 생각하신다고 믿을 수 있겠는가? 이런 종류의 생각을 전부 물리쳐서 너의 마음에 전혀 남아있지 않도록 아주 확실히 해두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내가 처벌받은 것은 네가 나빠서가 아니다. 속죄가 어떤 식으로든 이런 종류의 왜곡으로 오염된다면, 속죄가 가르치는 지극히 자비로운 레슨이 상실된다.

15 "원수 갚는 것은 나의 일이라고 주가 말하노라."라는 말은 순전히 카르마적인 관점이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심각한 오지각으로서, 이것을 가지고 사람은 자신의 "사악한" 과거를 하느님께 떠넘긴다. 과거에서 온 "사악한 양심"은 하느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그분은 그것을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고집하지도 않으신다. 하느님은 카르마적 응보를 믿지 않으신다. 그분의 신성한 마음은 그런 식으로 창조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어떤 사람의 악행에 대해 그 당사자조차 책망하지 않으시거늘, 다른 사람의 악행에 대해 그 누구라도 책망하실 것 같은가?

16 이런 가정이 실제로 얼마나 완전히 불가능한지, 얼마나 전적으로 그릇된 투사에서 생겨나는지 아주 확실히 인식하라. 이런 종류의 잘못은 관련된 수많은 잘못에 책임이 있는데, 그 가운데는 하느님이 사람을 거부해서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다는 믿음이 있다. 그것은 또한 네가 이따금, 내가 너를 잘못 인도한다고 믿을 수 있다는 사실에도 책임이 있다. 그동안 나는 왜곡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말을 사용하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사람은 상징을 비틀어대는 데 관한 한 아주 독창적이다.

17   하느님은 상징이 아니시다. 하느님은 사실이시다. 속죄에도 상징이 전혀 없다. 속죄는 빛 가운데 존재하므로,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다. 용의가 없는 자들은 스스로 속죄에 다가갈 수 없다고 여기고, 용의가 부분적으로만 있는 자들은 속죄를 모호하다고 여기는데, 그 이유는 단지 사람이 속죄를 어둠으로 덮어버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속죄 자체는 진리만을 발산한다. 따라서 속죄는 무해함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며, 오로지 축복만을 흩뿌린다. 속죄가 완벽한 순결에서 생겨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순결은 곧 지혜다. 순결은 존재하지도 않는 악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결은, 참인 것은 모두 완벽하게 알아차린다.

18   부활은 그 무엇도 진리를 파괴할 수 없음을 입증했다. 선은 어떤 형식의 악이든 견뎌낼 수 있다. 빛은 모든 형식의 어둠을 폐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죄는 완벽한 레슨이다. 속죄는 내가 가르친 다른 모든 레슨이 참이라는 최종적인 증거다. 이것을 믿는다면, 모든 잘못에서 해방된다. 가르침의 연역적 접근법은 수많은 개별적 사례를 별도로 분석한 후에 일반론을 세우는 대신에, 모든 사례에 적용 가능한 일반론을 받아들인다. 네가 지금 이 유일한 일반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작은 레슨 여럿을 통해 배울 필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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