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너는 왜 네가 자유롭다는 것을 배우는 것을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지각하지 않으려 하는가? 너는 왜 진리를 적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환호하며 맞아들이지 않으려 하는가? 너무도 확실히 표시되어 있어서 길을 잃기가 불가능한 쉬운 길이 왜 가시투성이에다 거칠고 멀어서 너무도 따라가기 힘들어 보이는가? 네가 그 길을 희생도 상실도 없는, 천국과 하느님 안에서 너 자신을 찾기 위한 단순한 길로 보는 대신에 지옥으로 가는 길로 보기 때문이 아닌가? 네가 그 무엇도 포기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을 때까지, 상실이란 정녕 없음을 이해할 때까지, 너는 네가 선택한 길에 대해 어느 정도 후회를 하고 그 선택이 제공한 수많은 이득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네가 보지 못하더라도, 이득은 거기에 있다. 이득의 원인이 작동되었고, 이득은 분명 그 원인이 들어온 곳에 존재할 것이다.
11 너는 치유의 원인을 받아들였으며, 따라서 분명 치유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이제 치유되었기에, 분명 치유하는 능력도 가졌을 것이다. 기적은 원인 없는 결과로서 갑작스레 일어나는 어떤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기적이 그 자체로 어떤 원인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적의 원인이 있는 곳에는 분명 기적도 있을 것이다. 지금, 기적이 야기되었다. 비록 아직 지각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기적의 결과들도, 비록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에 있다. 이제 내면을 보라. 그러면 너는 후회할 이유가 아닌, 크게 기뻐하고 평화의 희망을 품을 원인을 볼 것이다.
12 전쟁터에서 평화의 희망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정녕 절망적이었다. 죄와 고통을 보존하는 기능을 수행하라고 만들어진 것에게, 죄와 고통으로부터의 탈출을 요구하는 것은 정녕 헛된 일이었다. 증오와 두려움, 공격과 죄의식이 단지 하나의 환상이듯이, 고통과 죄도 하나의 환상이다. 고통과 죄의 원인이 없는 곳에는 그것들의 결과들이 사라져 버리고, 그것들이 없는 곳에는 어디든 사랑이 올 수밖에 없다. 왜 기뻐하지 않는가? 너는 고통과 병, 비참함과 상실, 증오와 공격의 모든 결과에서 자유롭다. 더 이상 고통은 너의 친구가 아니고, 죄의식은 너의 신이 아니다. 그리고 너는 사랑의 결과를 환영할 것이다.
13 너의 손님이 왔다. 네가 그에게 요청했고, 그가 왔다. 하지만 너는 그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너는 그를 전적으로 환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선물이 같이 왔다. 그는 너의 발밑에 선물을 내려놓고는, 이제 그것을 바라보고 네 것으로 가져가라고 청한다. 분리되어 혼자라고 믿으면서 따로 떨어져 걷는 모든 이에게 선물을 주려면, 그는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 네가 너의 선물을 받아들일 때, 그들이 치유될 것이다. 네가 서있고 그가 그들에게 주는 선물이 놓여있는 거룩한 땅에 발을 들여놓은 모든 이를, 너의 손님은 반가이 맞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14 너는 네가 받은 그 모든 것 덕분에 이제 얼마나 많이 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온 그는 다만 그를 초대해 들인 곳으로 네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가 머물러 살 집주인을 찾고, 그 집주인이 그를 만날 수 있는 다른 장소란 없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의 현존이 가져다주는 평화와 기쁨, 그 모든 행복이라는 선물을 얻을 수 없다. 그 선물은 그것을 가져와 네 것이 되게 한 바로 그가 있는 곳에 있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손님을 볼 수 없지만, 그가 가져온 선물은 볼 수 있다. 네가 그 선물을 바라볼 때, 그가 거기에 현존함을 믿을 것이다. 네가 지금 행할 수 있는 일은 그의 현존이 지닌 사랑과 은혜 없이는 행해질 수 없기 때문이다.
15 살아계신 하느님은 당신의 아들이 생명을 지녔고, 살아있는 것들은 전부 당신 아들의 일부며, 그 밖의 것에는 생명이 없다고 약속하셨다. 네가 "생명"을 준 그것은 살아있지 않다. 그것은 단지 죽음을 생명으로, 삶을 죽음으로 지각하면서 생명에서 떨어져 살아있고, 죽음 안에서 살아있으려는 너의 소망을 상징할 뿐이다. 여기에서 혼동이 혼동을 뒤따른다. 이 세상의 기반은 단지 혼동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기반은 변하지 않는다. 비록 끊임없이 변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혼동이 정말로 의미하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혼동에 빠진 자들에게 안정성은 무의미하며, 변동과 변화는 그들의 삶이 입각한 법칙이 된다.
16 몸은 변하지 않는다. 몸은 변화가 가능하다는 더 큰 꿈을 나타낸다. 변한다는 것은 네가 전에 있던 상태와는 다른 상태를 얻는 것이다. 불멸성에는 변화가 전혀 없고, 천국은 변화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여기 땅에서 변화는 이중의 목적을 가졌다. 그것은 상반된 것들을 가르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반된 것들은 그것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반영한다. 몸은 시간, 병과 건강, 몸을 달라지게 하는 사건에 따라 변하는 듯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몸의 목적에 대한 마음의 믿음이 변하지 않고 남아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17 병이란 몸에게 몸이 아닌 어떤 것이 되라는 요구다. 몸이 무라는 사실은 몸이 병들 수 없다는 보증서다. 몸이 그 이상이어야 한다는 너의 요구에 병이라는 아이디어가 놓여있다. 그것은 하느님께, 그분이 실제로 존재하는 그 모든 것보다 못한 것이 되시라고 요구한다. 그렇다면 너는 과연 무엇이 되겠는가? 그 희생은 바로 너에게 요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당신의 일부가 더 이상 당신께 속하지 않는다고 통보받으신다. 하느님은 너의 자아를 희생하셔야 하며, 그 희생으로 너는 더 커지고 하느님은 너를 잃어 더 작아지신다. 하느님이 잃으신 것은 너의 신이 되어서, 네가 하느님의 일부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
18 신이 될 것을 요구받는 몸은 공격받을 것이다. 그러한 요구는 몸이 무임을 인식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진 어떤 것으로 보인다. 무가 아닌 어떤 것으로서의 몸은 지각될 수 있으며, 느끼고 행동하고 너를 자신의 죄수로 잡아두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몸은 네가 요구한 것이 되는 데 실패할 수 있다. 너는 그 실패가 몸이 본래보다 더 나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네가 몸이 무임을 지각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임을 잊고는, 몸을 왜소하다고 증오할 것이다. 하지만 몸이 무라는 사실이 곧 너의 구원이다. 그런데 너는 그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19 몸을 "무가 아닌 어떤 것"으로 본다면, 몸에게 하느님의 적이 되어 그분의 정체를 왜소함과 한계와 절망으로 대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몸을 사랑하거나 증오하는 것으로 바라볼 때, 너는 하느님의 상실을 축하하는 것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의 총합이시므로, 그분 안에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분의 완성은 곧 몸이 무라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너의 구원자는 죽지 않았으며, 죽음에 바치는 사원으로 세워진 것 안에 머물러 살지도 않는다. 그는 하느님 안에서 살며, 그를 너의 구원자로 만들어주는 것은 오로지 이러한 사실이다. 그의 몸이 무라는 사실이 너의 몸을 병과 죽음에서 해방한다. 너의 것은 그의 것보다 더한 것도 덜한 것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