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도, 장소도, 상태도 없다.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느님의 온전성 안에서 간격을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아주 작고 좁은 간격이 나타내려는 절충안은 전혀 불가능하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 아주 약간이라도 증오의 기미를 품을 수 있고, 그분의 온유함이 때로 공격으로 바뀔 수 있으며, 그분의 영원한 인내가 때로 바닥날 수 있음을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네 형제와 너 자신 사이에서 간격을 지각할 때, 너는 정녕 이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가 어떻게 하느님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하느님은 분명 당신의 사랑을 속이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조심하라. 하느님이 너무 가까이 오시도록 허용하지 말고, 도망칠 필요가 있을 때 탈출할 수 있도록 그분의 사랑과 너 사이에 빠져나갈 간격을 남겨두어라.
2 여기서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분명하게 보인다.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이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고 본다. 두려움과 증오는 결코 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증오하는 자는 누구나 사랑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하느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그는 분명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 그는 사랑하기를 두려워하고 증오하기를 사랑하며, 따라서 사랑은 두려운 것이고 증오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좁은 간격을 소중히 여기고 그것이 자신의 구원이자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피할 수 없는 결과다.
3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 평화가 흘러 넘어가야 할 가장 큰 장애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나머지 장애물은 통과했지만, 이 하나는 여전히 남아서 너의 길을 가로막고, 빛으로 가는 길을 어둡고 무섭고 험난하고 암울해 보이게 만든다. 너는 네 형제가 적이라고 결정했다. 너희의 분리된 이해관계가 잠시 너희의 우정을 가능하게 한다면, 아마도 때로는 친구라고 결정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그가 다시 적으로 돌아설 것에 대비하여 너희 사이에 간격을 남겨두는 것은 잊지 않는다. [네가 다가갔을 때 그가 즉시 물러났듯이, 그가 가까이 오면 너는 펄쩍 뛰며 뒷걸음질쳤다.] 범위가 제한되고 양도 주의 깊게 한정된 조심스러운 우정이 네가 그와 맺은 협정이 되었다. 너희는 조건부 협약을 공유했는데, 거기서 두 사람 모두가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한 요점은 바로 분리 조항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위반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는 협정 파기라고 여겨졌다.
4 너희 사이의 간격은 분리된 두 몸들 사이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너희의 분리된 마음들을 갈라놓는 듯이 보일 뿐이다. 그 간격은 너희가 원할 때는 만나고, 둘 다 다시 만나기로 선택할 때까지는 분리되어 있기로 한 약속의 상징이다. 그리고는 너희의 몸들은 연락을 취하고 만날 장소를 알려주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너희는 언제든 각자의 길로 갈 수 있다. 너희는 분리할 수 있는 "권리"를 조건으로 때로는 만나고 분리의 기간 동안은 떨어져 있기로 합의할 것이며, 이는 너희를 사랑의 "희생"으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 몸이 너희를 구원한다. 몸은 총체적인 희생으로부터 빠져나와서, 너희가 만날 때 작아진다고 생각하는 분리된 자아들을 다시 구축할 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5 몸은 너희의 마음들을 분리할 수 없다. 네가 몸을, 너희 사이에 보이는 분리와 거리의 원인으로 만들기를 원하지 않는 한 말이다. 이렇게 너는 몸 자체에 없는 힘을 몸에 부여한다. 이로써 몸은 너를 지배할 힘을 갖게 된다. 이제 너는 몸이 너희가 언제 만날지 결정하고, 서로의 마음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능력을 제한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몸은 네가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네가 할 만한 일은 무엇이고 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인지 말해준다. 몸은 몸의 건강이 무엇을 견뎌낼 수 있는지, 무엇이 몸을 피곤하게 하고 아프게 할지 결정한다. 몸의 "타고난" 약함이 네가 하려는 것에 한계를 가하여, 너의 목적을 제한적이고 무력하게 유지한다.
6 네가 원한다면, 몸은 반드시 이것에 순응할 것이다. 몸은 단지 중간에 증오의 기간을 가지면서 "사랑"에 제한적으로 탐닉하는 것만을 허락할 것이다. 또한 몸은 언제 "사랑하고" 언제 더 안전하게 두려움 속으로 움츠러들지 명할 것이다. 그리고 몸은 아플 것이다. 너는 사랑하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는 분명 네가 만나는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을 오용하고, 그 안에서 너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볼 것이다.
7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러나 두려움은 사랑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두려움이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증오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랑은 반드시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단지 가끔씩만 존재하고 다른 때는 가버려야 한다. 그러므로 사랑은 쉽사리 배신하는 듯이 보인다. 사랑은 변덕스레 오가면서 너에게 아무런 안정감도 제공하지 않는 듯하기 때문이다. 너는 너의 충실성이 얼마나 제한되고 약한지, 네가 얼마나 자주 사랑에게 꺼져버리라고 저주했는지, 그래서 너를 "평화" 속에 조용히 혼자 있게 내버려 두라고 요구했는지 보지 못한다.
8 어떤 목표도 없는 몸은 네가 가진 변덕스러운 목표를 몸에게 강요하는 구실이 된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몸의 약함이 아니라, 몸에 약함도 강함도 없는 상태다. 그 무엇도 너희 사이를 가로막고 있지 않음을 인식하고 싶은가? 너희가 숨을 수 있는 간격은 정녕 없다는 것을 알고 싶은가? 자신의 구원자가 더 이상 적이 아님을 배우는 자들에게 오는 일종의 충격이 있다. 몸이 실제가 아님을 배움으로써 일어나는 일종의 경계심이 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행복한 메시지 주위에 감도는 두려움의 기미가 있다.
9 하지만 간격이 사라질 때 일어나는 것이라고는 영원한 평화가 전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 무엇이 너를 꾀어 그분을 저버리게 하겠는가? 간격 안에 있는 그 어떤 값싼 장난감이나 장신구가 너를 한순간이라도 그분의 사랑에서 물러나게 할 수 있겠는가? 네가 하느님을 발견하면 자아의 상실을 발견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너는 몸이 천국의 부름에 "아니오!"라고 말하도록 허락하겠는가? 그런데 너의 자아는 과연 발견됨으로써 상실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