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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유성구 지족동로 124
106-1901 기적의 향기

acimstudy.miraclepub@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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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수업

서문
1장기적에 대한 안내
2장분리의 환상
3장마음의 재훈련
4장모든 악의 뿌리
5장치유와 온전성
6장공격과 두려움
7장왕국의 일관성
8장귀향
9장잘못의 교정
10장하느님, 그리고 에고
11장하느님의 구원 계획
12장죄의식 문제
13장지각에서 앎으로
14장환상을 진리로 가져오기
15장시간의 목적
16장환상을 용서하기
17장용서와 치유
18장꿈과 실재
19장몸 너머로
20장부활의 약속
21장내면의 그림
22장구원과 거룩한 관계
23장너 자신과의 전쟁
24장특별성과 분리
25장치료법
26장전이
27장몸과 꿈
28장두려움의 무효화
29장깨어나기
30장새로운 출발
31장구원의 단순성
기적수업
오늘의 텍스트📖 텍스트✏️ 워크북📚 교사용 지침서
0%· 약 15분

Ⅹ. 용서하는 꿈

61 우상의 노예는 자발적인 노예다. 그는 자발적으로 생명이 없는 것을 숭배하여 절하고, 힘없는 것에서 힘을 구하는 존재가 된다. 다음과 같은 것이 하느님 아들의 소망이 될 수 있다니,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그는 자신을 땅 위의 돌멩이 아래로 낮추고는 우상이 자신을 일으켜 주리라고 기대한다. 그렇다면 네가 만든 꿈속에서 너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네가 그것이 꿈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라. 하느님이 당신 자신처럼 완벽하게 창조하신 마음 안으로 판단의 꿈이 들어왔다. 그 꿈속에서 천국이 지옥으로 바뀌었고, 하느님이 당신 아들의 적이 되셨다.

62 하느님의 아들은 꿈에서 어떻게 깨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판단의 꿈이다. 그러니 그는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깨어날 것이다. 그가 꿈의 일부인 동안, 꿈은 계속되는 듯이 보일 것이다. 판단하지 말라. 판단하는 자는 판단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막아줄 우상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자신이 정죄한 자아를 알 수도 없다. 판단하지 말라. 그것은 너 자신을 악몽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꿈속에서 우상은 너의 "진짜" 정체며, 네가 공포와 죄의식 속에서 너 자신에게 내린 판단에서 구원해 주는 자다.

63 꿈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너를 꿈에서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우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꿈의 일부다. 그러므로 우상은 꿈을 생생하고 무시무시하게 유지해 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공포와 절망 속에 있지 않는 한 그 누가 우상을 원할 수 있겠는가? 우상은 바로 이것을 나타내며, 따라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곧 절망과 공포, 그리고 그것들을 낳은 꿈을 숭배하는 것이다. 판단은 하느님의 아들에 대한 불의며, 그를 판단하는 자는 자신이 만든 꿈속에서 자신에게 부과한 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 곧 정의가 된다. 하느님은 처벌이 아닌 정의에 대해 아신다. 그러나 판단의 꿈속에서 너는 공격하고 정죄받으며, 너의 판단과 그 판단이 초래하는 처벌 사이에 놓인 우상의 노예가 되기를 소망한다.

64 네가 꾸는 대로의 꿈에는 구원이 있을 수 없다. 네가 성취했다고 믿는 것, 너 자신을 유죄로 만들고 내면의 빛을 꺼버리기 위해 행했다고 믿는 것에서 너를 구하려면, 우상들은 꿈의 일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아, 빛은 너희 내면에 있단다. 너희는 다만 꿈꾸고 있을 뿐이며, 우상은 너희가 가지고 논다고 꿈꾸는 장난감이란다. 아이들 외에 그 누가 장난감을 필요로 하겠는가? 아이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흉내를 내면서, 돌아다니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자신을 대변할 힘을 장난감에 부여한다. 하지만 장난감이 행하는 듯한 모든 것은 장난감을 갖고 노는 아이들의 마음 안에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장난감이 실제인 꿈을 스스로 지어냈다는 것을 잊기를 열망하며, 장난감이 바라는 것은 곧 자신이 바라는 것임을 인식하지 못한다.

65 악몽은 어린애 같은 유치한 꿈이다. 자신이 장난감을 실재화했다고 생각한 아이를, 장난감은 등졌다. 하지만 꿈이 공격할 수 있겠는가? 혹은 장난감이 크고 위험하고 사납고 거칠어질 수 있겠는가? 아이는 이것을 믿는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두려워하여, 대신에 그것을 장난감에게 주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난감의 실재가 아이 자신의 실재가 된다. 장난감은 아이를 자신의 생각에서 구해주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난감은 사실 아이의 생각을 생생하고 실재적으로 유지해 주며, 단지 아이 바깥에서 보일 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장난감은 아이의 배신을 이유로 아이를 등질 수 있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장난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자신의 생각이 실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는 무엇이든 장난감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자신의 세상을 계속 바깥에 남겨두고, 자신은 단지 그 세상의 일부인 놀이를 한다.

66 어린 시절이 지나가 영원히 떠나보내야 할 때가 있다. 아이들 장난감을 계속 간직하려 하지 말라. 그것들을 전부 치워버려라. 너는 더 이상 장난감이 필요 없다. 판단의 꿈은 아이가 힘은 세지만 지혜는 아이처럼 보잘것없는 아빠가 되는 게임이다. 그를 해치는 것은 파괴된다. 그를 돕는 것은 축복받는다. 유감스럽게도 그는 이것을, 무엇이 고통을 주고 무엇이 치유하는지 알지 못하는 아이처럼 판단한다. 나쁜 일들이 일어나는 듯하고, 그는 자신이 만든 법칙들이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혼란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실재세상은 그가 실제라고 생각하는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또한 그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해서 실재세상의 법칙들이 바뀐 적도 없다.

67 실재세상은 여전히 꿈일 뿐이다. 단, 등장인물들이 바뀌었다. 그들은 더 이상 배신하는 우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실재세상은 그 누구도 다른 무언가를 대체하기 위해 이용되거나, 마음이 품는 생각과 마음이 보는 것 사이에 개입되지 않는 꿈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이용되지 않는다. 유치한 것들이 전부 치워졌기 때문이다. 한때 판단의 꿈이었던 것이 이제는 모든 것이 기쁨인 꿈으로 바뀌었다. 그것이 바로 그 꿈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곳으로는 오로지 용서하는 꿈만이 들어올 수 있다. 시간은 거의 끝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꿈속으로 들어오는 형상들은 이제 판단이 아닌 사랑 속에서 형제들로 지각된다.

68 용서하는 꿈은 지속될 필요가 거의 없다. 그 꿈은 마음을 마음이 생각하는 것과 분리하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용서하는 꿈은 그 꿈이 다른 누군가에 의해 꾸어지는 꿈임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꿈속에서는 모든 이가 기억하는 멜로디가 들려온다. 비록 그들은 모든 시간이 시작되기 전 이후로는 그 멜로디를 들은 적이 없지만 말이다. 용서는 일단 완성되면 무시간성을 아주 가까이 데려오기에, 이제 천국의 노래가 들릴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들의 내면 깊은 곳에 영원히 머무는 제단을 결코 떠나지 않은 거룩함으로 듣는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면, 그가 그것을 듣지 않은 적은 결코 없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판단의 꿈을 치워버렸을 때, 시간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69 깊은 만족과 도움에 대한 확신, 천국이 너와 함께한다는 조용한 확신을 느끼지 못한다면, 너는 정녕 두려워하는 것이다. 어떤 형식으로든 두려움을 느낄 때마다, 네가 우상을 만들었고 그 우상이 너를 배신할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확실히 깨달아라. 우상이 너를 구원할 것이라는 희망 아래에는, 자기 배반과 불확실성으로 인한 죄의식과 고통이 있다. 그 고통은 너무도 깊고 격렬해서, 꿈은 너의 그 모든 절망의 느낌을 완전히 은폐할 수 없다. 너의 자기 배반은 두려움을 낳을 수밖에 없다. 두려움은 곧 판단으로서, 우상과 죽음에 대한 광적인 추구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70 용서하는 꿈은 네가 안전하게 살고 있으며, 너 자신을 공격하지 않았음을 일깨워 준다. 따라서 너의 유치한 공포는 슬며시 사라진다. 그리고 꿈은 네가 우상을 숭배하고 공격을 간직하려는 또 다른 시도가 아닌, 새로운 출발을 했다는 표시가 된다. 용서하는 꿈은 꿈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다. 따라서 용서하는 꿈은 꿈꾸는 자를 두려움의 꿈에서 완전히 해방한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그 누구도 판단하지 않았으며, 판단이 부과할 수밖에 없는 것을 판단을 통해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그는, 판단이야말로 자신을 판단의 처벌에서 구해줄 길이라고 여겼을 때 잊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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