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유혹이란 단지 지옥과 비참함에 머물겠다는 소망이 아니겠는가? 이런 소망이 낳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단지 비참해져서 지옥과 고통 속에 머물 수 있는 너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전부지 않겠는가? 자신의 형제를 이와 같지 않게 보는 법을 배운 자는 자기 자신을 구원한 것이며, 따라서 다른 모든 이들에게 구원자가 된다. 하느님은 각각의 모든 이에게 모든 이를 맡기셨다. 부분적인 구원자란 단지 부분적으로만 구원된 자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너희 각자에게 맡기셔서 구원하게 하신 거룩한 자들은 다음과 같다: 너희가 누구인지 모르면서 만나거나 바라보는 모든 이들, 잠시 보고 잊은 모든 이들, 오랫동안 알고 지낸 모든 이들, 앞으로 만날 모든 이들,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모든 이들. 하느님은 너에게 당신의 아들을 주셔서, 그가 이제껏 가진 모든 개념에서 구원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78 하지만 지옥에 머물기를 소망하는 한, 네가 어찌 하느님 아들의 구원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가 너의 거룩함과 떨어져 있다고 보는 한, 네가 어찌 그의 거룩함을 알겠는가? 거룩함이란, 내면에서 순결을 바라봄으로써 그것을 모든 곳에서 볼 것을 기대하는 거룩한 눈을 통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모든 이 안에서 순결을 불러일으켜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기대하는 자가 되게 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모든 것에서 자신의 순결을 보고, 또한 모든 곳에서 자신의 구원을 보는 것, 이것이 바로 구원자의 비전이다. 그의 고요하게 뜬 눈과 그가 보는 것 사이에는 그가 자신에 대해 붙잡고 있는 어떤 자아 개념도 없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것에 빛을 가져다주어, 그것을 실제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된다.
79 유혹이 어떤 형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든, 그것은 항상 네가 아닌 어떤 자아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반영할 뿐이다. 그 소망으로부터, 너는 정녕 네가 되기를 소망하는 그것이라고 가르치는 개념이 하나 일어난다. 그 개념은 그것을 낳은 소망을 더 이상 소중히 여기지 않을 때까지 너 자신에 대한 개념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 개념을 소중히 여기는 한, 너의 소망을 나타낸 이미지를 가진 자아와 네 형제가 닮았다고 볼 것이다. 비전은 창조할 힘이 없으므로, 어떤 소망을 나타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전은 사랑으로 볼 수도 있고 증오로 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오로지 네가 보는 대상과 결합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너 자신을 떼어놓고 분리하고자 하는지의 단순한 선택에만 달려있다.
80 구원자의 비전은 너 자신에 대한 모든 판단에서 자유롭듯이 네 형제의 정체에 의해서도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그러한 비전은 그 누구에게서도 과거를 보지 않는다. 따라서 그것은 낡은 개념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그리고 오로지 현재가 지닌 것만 바라볼 준비가 된 온전히 열린 마음을 섬긴다. 그것은 알지 못하므로,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서 단지, "내가 보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을 뿐이다. 그러면 답이 주어진다. 그리고 문이 열려서, 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비전에 맞서 너무도 오랫동안 소중히 지녀온 낡은 아이디어와 묵은 개념의 장막 너머를 보게 해달라고 순결하게 요청하는 자를, 그리스도의 얼굴이 비춰줄 수 있게 된다.
81 그렇다면 유혹이란 단지 너 자신을 네가 아닌 어떤 것으로 만들겠다는 무의미하고 미친 소망일 뿐임을 기억하면서, 유혹에 맞서 깨어있어라. 그 대신에 네가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 그것은 광기와 고통과 죽음에 시달리고, 배신과 암담한 절망에 시달리며, 이루어지지 않을 꿈을 꾸고, 죽어서 두려움의 꿈을 끝내는 것 외에는 남은 희망이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것이 유혹이다.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을 거슬러 선택하는 것이 과연 어려울 수 있겠는가? 유혹이 과연 무엇인지 잘 생각해 본 다음, 네가 선택하는 진짜 대안들을 보라. 대안은 정녕 둘밖에 없다. 많은 선택 대상들처럼 보이는 것에 속지 말라. 지옥이나 천국만 있을 뿐이며, 너는 둘 중에 단 하나만 선택한다.
82 너에게 주어진 세상의 빛을 세상에게 감추지 말라. 세상은 정녕 어둡기에, 그 빛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구원자의 비전을 받지 못해 절망에 빠져있으며, 그들이 바라보는 것은 죽음이다. 그들의 구원자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지지도 않은 채, 감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서있다. 그들의 구원자가 볼 수 있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그 자신의 용서로써 용서를 베풀 때까지, 그들은 볼 수 없다. 하느님이 너에게 "내 아들을 해방해 다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런 네가, 하느님이 바로 너를 위해 해방을 요청하신다는 것을 배우고 있거늘, 듣지 않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겠는가? 이 수업이 이것 외에 무엇을 가르치려 하겠는가? 그리고 이것 외에 네가 배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